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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Mar 07. 2016

다시, 입학식

3.2일.

학교 뒤편 그늘에 며칠 전 내린 눈이 그대로 남아 있고

교실 앞 화단 단풍나무는 새싹 돋을 기미도 없던 날.

새로운 입학식이 있었다.


 

동네 방앗간에서 전교생이 먹고 남을 큰 떡이 오고

언제나처럼 입학한 아이들보다 축하를 위해 오신 가족의 수가 더 많았다.

역시 언제나처럼 새로 입학한 아이들은 더 앳되었다.

저 앳된 얼굴에서 젖살이 빠져가는 과정이 성장이라 불리기까지 또 얼마나 많은 일들을 저 아이들은 견뎌낼지.

입을 앙다문 아이의 표정을 보자니 귀엽기 이전에 애잔하다.

 


입학식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2학년 교실에 가 보았다.

작년에 내가 1학년을 가르친 아이들이 새롭게 올라간 곳이다.

오늘 아침, 저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1학년 교실로 들어오다가,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하다가,

작년 자기 자리에 앉을 뻔하다가,

바뀐 책상 모습에 멈칫하다가,

아, 내가 2학년이지 하며 다시 가방을 주섬주섬 들고 옆 2학년 교실로 갔다.

교실을 나가면서 아이들이 나를 향해 지었던 알듯 모를듯한 표정은 헤어짐의 정리(定離).   


새 담임을 맞은 2학년이 된 아이들에게 물었다.

니네 2학년 되니까 어때?

한 아이가 말했다. 어색해요.

또 한 아이가 말했다. 불길해요.

그러자 한 아이가 지청구를 했다. 야, 너 불길한 게 뭔지 알기나 하냐.

그 말을 들은 아이가 주억거린다. 아, 나 2학년 안 되고 싶었단 말이야.

그러자 다른 아이도 표정으로 슬쩍 동조를 한다. 그러더니 바로 표정을 바꿔 마치 자신에게 다짐하듯 말한다.

야, 니네 2학년 안 될라면 다시 유치원 가야 돼. 어떻게 1학년을 두 번 하냐.


나도 저 나이 때 저런 마음이었다.

해마다 새롭게 학년이 올라가는 게 썩 내키지 않았다.

성장, 자라남, 앞으로 나아감, 퇴행 아닌 성장... 난 어린 마음에도 이런 걸 두려웠다.

사실 난 지금도 그렇다.

나이 들면서 새롭게 받아들여야 하는 삶의 장면을 자꾸 피하려는 나를 발견한다.

어떤 땐 나도 모르게 마치 자동으로 그러는 것처럼 피한다.

그리고 그 상황에 적당히 묻어가려고 내 색깔을 은근히 바꾸려고 한다.

내가 어릴 때, 새 학년으로 올라갈지 그 학년에 그대로 머물러 있을지를 결정할 수 있었다면, 난 주저 없이 꽤 오랫동안 그 자리에 머물렀을 텐데.


"니네는 저절로 2학년이 되지만, 2학년 되기 싫으면 그냥 1학년에 있어도 돼."

루소(J. J. Rousseau, 1712년-1778년)처럼, 이런 말을 해주는 선생이 되고 싶다. 

자라던 시기에, 나는 어서 시간이 빨리 지나 다음 학년으로 껑충 뛰어 올라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난 그저 이 사회에서 정해 놓은 방식대로 시간이 지나면 다음 학년으로 올라가며 자랐다.

마지막 학년이 끝나면 상급 학교로 갔다. 그 학교 가기 위해 시험공부를 해야 하면 순순히 따랐다.

그렇게 시간에 의해 떠 밀리듯 자란 내가 지금에 와서 아이들에게 새 학년 대신 기존 학년에 머무를 수 있다고 사상가 루소처럼 말하는 상상을 하자니. 가증스럽다.


아이들에게, 야, 니네 2학년 때 재미있는 게 얼마나 많을 텐데 그래. 이렇게 말을 해 줄까 하다가 슬며시 문을 닫고 나왔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느라 내가 나가는 줄도 모르는 것 같았다.아이들은 그렇게 자기 삶에 당면한 문제를 받아들이나 보다. 별 흔들림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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