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살다 방송에 나오다니
KBS 2 FM에서 황정민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매주 금요일 마다 책을 한 권 씩 소개하는 코너가 있다고 합니다.
북스타그램. 그 코너에 제 책이 소개되었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의 FM 전파는 화악산으로부터 옵니다.
그 전파에 KBS 2 FM은 없습니다. 수도권에 비해 지방에서 들을 수 있는 방송이 적거든요.
출판사에서 미리 방송 일정을 알려 주셔서 날짜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인터넷 방송(K플레이어)으로 들었습니다.
황 아나운서와 알라딘에서 일하는 박태근 MD(마케팅 디렉터?)가 제 책을 놓고 대화하는 형식이더군요.
아이고, 듣다보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얼마 전에 책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하고 알려드릴때처럼요.
전 이 분들과 만나 1학년 아이들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도 없지만
이 분들은 제 책 하나만 놓고 저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거지요.
마치 다른 세상에서 신선이 저에 대해 나누는 얘기를 듣는 현세의 기분이었달까요?
방송 속 저 분들이 제 이야기를 한다는 느낌이 잘 안 들었습니다.
저를 아는 사람들은 제가 선생인 것도 알지만 선생 이전에 찌질한 인간인 것도 압니다.
경찰이 없으면 빨간불에 쌩 지나가고 산에 가서도 누가 안 보면 아무데서나 오줌을 갈기고,
뭐 하나 먹기 시작하면 제일 늦게까지 깨작거리고 정리를 잘 못 하는데다 게으른 것도 알지요.
심지어 가끔 로또를 사는 사람인 것도 압니다.
제가 책을 하나 냈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절 괜찮은 선생이라고 의심없이 받아들이고
그들의 기대에 어울리게 전 또 적당히 괜찮은 선생인척을 하고
그런 가면을 쓰고 방송에도 나가고 인터뷰도 하고 있습니다. 원래의 저와 멀어지는 느낌입니다. 자초한 불편인셈이지요.
그 뒤로 저는 방송에 나오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방송에서 보여지는 모습 이면의 진면목을 상상해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근엄하게 정책을 설명하는 정부 관계자를 보면 그가 그의 아내에겐 어떻게 애교를 떨지 상상해 보고
서바이벌 오디션에서 떨어지고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오히려, 좋은 경험이었어요. 전 그걸 즐겼어요라고 인터뷰를 한 참가자를 보면
그녀가 집에 가서 엄마에겐 어떻게 속내를 말할까 하는 상상.
그런 상상을 하고 나면 그들도 저와 비슷한 사람일거라는 생각에 위안이 조금 되거든요.
미셀 푸코는 권력이란, 가진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게 아니라 그걸 부여해 준 타인들이 만들어 준 허상이라고 했는데
사람들이 저에게 부여하는 허상에 제가 덩달아 춤추는 꼴불견은 없어야지 생각합니다.
잘 소개해 준 황 아나운서님, 박 MD님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