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다는 것에 대하여

by 송단아

늘 당연히 곁에 있을 것만 같던 사랑이 마침표를 찍고 나서야, 우리는 그 빈자리의 소중함을 뒤늦게 알게 된다. 건강도 참 닮았다. 몸에서 소중하지 않은 곳이 어디 단 한 군데라도 있겠냐만은, 오늘 살아 숨 쉬고 움직일 수 있다는 감사는 너무나 쉽게 잊고 산다. 어디가 고장 나고 불편해져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걸 보면, 사랑과 건강은 정말이지 닮은 구석이 많다.


100세 시대에 자신의 나이에서 17을 빼야 한다는 어느 강연자의 얘기가 있지만, 몸의 노화를 체감할 수밖에 없는 나이가 되었다. 2년 전엔 오른쪽 새끼발가락을 방문에 찧어 가로로 부러뜨렸고, 지난 11월엔 집 안에서 서두르다 책상 다리에 부딪혀 왼쪽 새끼발가락이 세로로 골절됐다. 가로 한 번, 세로 한 번.


새끼발가락 골절이 뭐 그리 대수인가 싶었던 나의 생각은 큰 착각이었다. 고작 2cm 남짓한 작은 뼈 하나 금 갔다고 삶이 흔들리겠냐 싶겠지만, 혹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분이 있다면 큰 오산이라 말하고 싶다. 몸의 가장 끝자락에 있는 이 작은 녀석이 드러눕자마자 내 일상은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가장 먼저 찾아온 건 ‘상실감’이다. 런데이 앱과 함께 막 재미를 붙이려던 걷기와 달리기가 올 스톱됐다. 움직임이 줄어드니 살은 다시 붙기 시작했고, 거울 속엔 운동 부족으로 출렁이는 뱃살만 남았다.


더 큰 문제는 다리 근육이다. 힘을 못 주니 근육이 빠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다리의 중심을 잡아주던 무릎과 고관절에까지 심하게 무리가 왔다. 깁스 신발을 신고 발을 질질 끌며 걷는 내 모습을 볼 때마다 말로 다 못 할 속상함이 밀려왔다. 발에 힘을 주어 디뎌서도 안 되고, 구부리는 동작은 아예 할 수 없으니 보행의 리듬은 깨진 지 오래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발끝에서부터 전해오는 통증은 괴롭기까지 하다. 신호등 앞에서 마음은 이미 건너편에 가 있는데, 정작 발은 뛸 수가 없어 속수무책으로 서 있을 때의 그 막막함이란. 새끼발가락 하나가 지탱해온 ‘균형’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매 순간 뼈저리게 느낀다.


벌써 6주가 지났는데도 뼈가 아물지 않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슬슬 걱정이 된다. 녀석은 대체 왜 이렇게 뻔뻔할 정도로 회복이 더딘 걸까. 나에게 존재감을 제대로 보여주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말이다. 이 작은 고집 덕분에 간절히 기대했던 두 번의 패션쇼 무대 기회도 날아가 버렸다.


답답한 마음에 이것저것 찾아보다 발가락마다 의미가 있다는 글을 읽었다. 오른발은 '미래'를, 왼발은 '내면'을 상징한다는 이야기. 2년 전 내 미래가 흔들릴 때 오른쪽이, 그리고 지금 내 안의 오류를 돌아보라는 듯 왼쪽이 부러진 게 단순한 우연일까 싶어 마음이 복잡해졌다.


사실 그동안 나는 내 발을 소중히 대해주지 못했다. 앞코가 좁고 높은 구두 속에 억지로 발을 구겨 넣으며 살았다. 최근 블랙핑크 제니가 신어 유명해진 ‘베어풋 슈즈’ 한 켤레를 구매할 생각이다. 발가락 모양이 그대로 드러나고 발 볼이 넓어 조금은 우스꽝스러워 보이지만, 발은 참 신나할 것 같다. 나는 왜 그동안 발을 감옥 같은 신발 속에 가둬왔을까 후회가 남는다. 발가락이 자유로워야 몸 전체의 아치가 살아나고 건강해진다는 당연한 사실을 이제야 배운다.


부주의 탓도 있겠지만, 영양제도 잘 챙겨 먹지 않았던 터라 비타민 D 수치도 많이 부족했다. 결국 며칠 전 주사까지 맞고 돌아왔다. 뼈가 빨리 붙고 일상을 회복하려면 이제 칼슘제도 꼬박 챙겨 먹어야겠다. 사고 이후 순환이 안 되는지 발이 너무 차가워 따뜻한 물에 소금을 풀고 족욕을 한다. 뜨끈한 물에 발을 담그고 앉아 가만히 생각에 잠겨 본다. 평생 이 무거운 몸을 지탱해주던 녀석의 고생이 비로소 보였다. 족욕 후에는 발바닥을 지긋이 지압해준다. 미안함과 고마움을 담아서.


발 건강은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다. 우리 몸의 척추까지 지탱해주는 이 작은 지지대가 무너지면, 당연하게도 마음까지 함께 흔들린다는 걸 이번 골절을 통해 배운다. 예쁜 구두나 패션도 좋지만, 보다 중요한 건 내 발과 발가락이 건강하게 숨 쉴 수 있는 자유를 주는 것이다.


하루빨리 발가락이 제자리를 찾기를 바란다. 다시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고 지면을 힘차게 움켜쥐며 걸을 수 있는 그날이, 그 평범한 시작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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