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둘 다 중남미 음식을 좋아한다. 나는 콜롬비아에서부터 때론 담백하고, 때론 육덕진 남미 음식들에 빠지게 되었다. 덕분에 임신하고 나서는 잠시 그때 즐겨 먹던 치즈 아레빠(Arepa con Queso)가 너무 먹고 싶기도 했었다. 남편의 경우는 코스타리카와 멕시코에 서핑을 다니며 입덕을 하게 된 것 같다. 음식에 대한 구체적인 경험들은 조금씩 서로 다르지만, 이견 없는 음식이 있었으니 바로 멕시칸 음식들이다. 남편과 나 모두 타코(Taco), 퀘사디야(Quesadilla), 엔칠라다(Enchilada) 등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그중 제1은, 타코다.
우리는 한국에 있었을 때도 종종 멕시칸 음식을 찾아 먹었다. 서울에는 멕시칸 레스토랑이 꽤 많다. 우리가 자주 갔던 곳들은 성수동과 이태원이었는데, 물론 맛있었지만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남편의 가장 큰 불만은 왜 토르티야(Tortilla)를 한 장만 깔아 주고, 라임 조각을 조금만 주는가이다. 멕시코 타코는 부드러운 토르티야의 경우, 2장씩 깔아 준다. 라임도 즙이 충분히 뿌려질 수 있을 만큼 툭툭 잘라 접시에 무심히 얹어준다. 이에 반해 한국 타코는 뭔가 좀 아끼는 게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는 것 같다. 나 같은 경우는 한국의 고급진(?) 타코가 낯설다. 나에게 타코는 떡볶이나 순대처럼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서서 사 먹던 길거리 음식이다. 보는 앞에서 고기를 숭덩숭덩 썰어 토르티야 위에 얹어주면 가판대 위에 펼쳐진 다양한 소스들과 토핑들을 입맛대로 뿌려서 한입 푸짐하게 먹는다. 이때만큼은 입과 손가락에 고기와 소스 국물이 철철 흐르는 야만인이 된다. 더군다나 가격도 무척 저렴한 편! 반면 한국에서는 대부분 분위기 좋은 멕시칸 레스토랑에서 먹게 된다. 물론 그것도 외식 분위기가 나서 좋다. 하지만 뭔가 특별한 날 돈을 쓰며 먹는 음식 같이 되어버린 것이 안타깝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에 오면 항상 멕시칸 음식을 찾아 부지런히 먹는다. 물론 현지의 맛보다는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멕시코 이민자들이 꽤 많이 늘었기 때문에 가격이나 맛이 괜찮은 편이다. 타코 트럭을 찾거나 멕시칸 레스토랑을 찾는 것은 너무 쉽다. 길에서 만나는 푸드트럭의 60-70%는 타케리아(Taqueria)로 볼 수 있고, 프랜차이즈도 잘 알려진 타코벨(Taco Bell) 뿐만 아니라 치폴레(Chipotle), 타코 델 마르(Taco del Mar), 델 타코(Del Taco), 퀘도바(Quedoba), 빅토리코스(Victoricos) 등 너무 많다. 우리는 이 많은 선택지에서 행복한 고민을 시작한다.
그러 던 중 발견한 성스럽고 거룩한 그 이름, 라 과달루파나(La Guadalupana). 몇 주 전 차를 타고 가는데, 그리 크지 않은 가게 주차장에 멕시코의 유명 가톨릭 성지인 과달루페 성당과 성모가 그려진 푸드트럭을 발견했다. 차가 큰길을 등지고 있었는데 일단 호기심에 차를 세웠다. 멕시코 분들이 끊임없이 계속 차 앞쪽으로 가는 것이 보였다. 느낌이 왔다. 차 앞에서 우리는 깜짝 놀랐다. 적당한 야외 테이블 시설에, 푸드트럭 한 켠에서는 각종 살사와 양파, 순무, 고수 등의 야채들이 샐러드 바 형식으로 아낌없이 제공되고 있었다. 가장 놀랐던 것은 주문하고 기다리는 손님들이 모두 멕시코 분들이었다는 것! 이렇게 현지인들이 몰린다면 맛은 두말없이 Perfecto 아니겠는가! 당장 사 먹으려고 했는데 현금만 받는다고 했다. 타코 하나에 2달러. 우리 돈으로 2,400원 정도 하니 한국보다는 싼 편이다. 아쉽게도 그날은 현금이 하나도 없었다. 흩어지는 음식 냄새를 코로 잡아 흡입하며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 크지 않은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멕시칸 푸드 트럭, 라 과달루파나
남편은 차곡차곡 현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대부분 카드를 쓰니 생각보다 현금 보기가 쉽지는 않았다. 빈 플라스틱 병이나 공병 등을 반납하고 받은 현금, 오며 가다 주운 현금들을 일단 알뜰히 모았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수중에 20달러 약간 넘는 현금을 갖게 되었다. 타코 10개를 먹을 수 있는 금액. 지난주 토요일, 차를 타고 도로를 달려 과달루페의 성모가 계신 곳으로 갔다. 설레는 봄 날씨가 우리를 보호하사 축복해주었다.
다시 찾은 과달루파나는 여전히 바빴다. 점심시간을 맞아 혼자 혹은 가족단위로 온 멕시코 분들이 끊이지 않았다. 우리는 그중 유일한 외국인이자 동양인이었다. 벼르고 온 만큼 남편과 신중하게 메뉴를 골랐다. 5개의 타코를 각각 2개씩 시켰다 ; 아사도(Asado), 파스토르(Pastor), 초리소(Chorizo), 비리아(Birria) 그리고 트리파(Tripa). 아사도는 구운 소고기, 파스토르는 양념된 돼지고기, 초리조는 소시지, 비리아는 원래는 염소 고기로도 하는 것 같은데 이 집은 푹 익힌 양념 소고기를 결대로 찢어 주고 있었다. 마지막 트리파는 남편이 구글에 추천해 준 것을 보고 시켰다고 했는데, 나중에 보니 곱창이었다. VALE, LISTO! 당당하게 그동안 살뜰하게 모은 현금을 지불하고 기다렸다. 그리고 타코를… 받았다! 많이 시켜서 그런지 구운 할라피뇨도 서비스로 같이 나왔다. 당연히 토르티야는 2장씩, 그리고 고기들이 정말 말도 안 되게 수북이 덮혀져 나왔다. YA VAMOS! 우리는 샐러드 바에 가서 살사와 토핑을 원 없이, 넉넉히 얹고 경건한 자세로 과달루페의 성모가 선사하는 타코의 기적을 즐길 준비를 마쳤다.
메뉴와 샐러드바. 벌써 많은 사람들이 왔다가서 어수선한 모습이었다
살사를 뿌리기 전 기본으로 나온 개당 2달러의 타코들. 살사와 토핑을 뿌리면 오른쪽 처럼 더욱 푸짐해진다
한 입, 앙~!! 고기에서 나온 육즙과 충분히 두른 살사들, 그리고 라임에서 나온 맛있는 채즙, 과즙들이 손가락 마디마디를 타고 주욱 흘렀다. 와… 맛있구나, 입안 가득 꽉 차는구나, 푸짐하구나! 현지와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면 오히려 고기를 더 많이 준다는 것! 어쩌면 이 혜자스러운 멋과 맛이 고국에 대한 이민자들의 향수와 수고로움을 품고 위로하는 방식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현지 분들도 이곳을 계속 찾아오는 것이겠지? 3개 정도 먹으니 배가 불러왔다. 그래도 꾹꾹, 각기 다른 고기의 맛을 음미하며 두 그릇 가득한 타코를 남편과 함께 모두 먹어 치웠다. 5가지 중 다음번에 올 때는 아사도, 초리소 그리고 트리파 3개만 시키면 될 것 같았다. 특히 초리소와 트리파가 너무 맛있었다. 양념이 잘 된 소시지와 바싹 구운 곱창. 뭐가 더 필요하겠는가?!
미국은 나에게 개성과 재미가 그리 크지 않은 나라 중 하나였다. 독특하고 특색 있는 음식도 없고, (원주민을 빼고는) 유구한 역사도 없고, 오래된 유적들도 별로 없는 곳. 그렇지만 조금씩 알면 알수록, 이민자들이 모여 만들고 창조한 그들만의 문화가 흥미로워 보인다. 미국을 즐기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겠지만 이렇게 이민자들의 문화를 즐기는 것도 큰 재미 중의 하나일 것 같다. 우리 앞에 나타난 과달루페 성모처럼, 우리 가족의 모습 역시 누군가에게 한국에 대한 호기심과 갈증을 약간이나마 해소해 줄 수 있는 행복한 만남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