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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zi Apr 26. 2022

017. 우리 집 강아지 골든 리트리버, 누렁이

삶의 반려자를 만나자 반려견도 따라왔다

닭과 함께 이 집에 함께 사는 동물이 있다. 반려견 누렁이다. 누렁이는 골든 리트리버 암캐다. 털이 누런 색이라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품종명엔 황금색이라고 되어 있지만 한국적인 관점에서 보면 누런 색도 맞다. 이 집에 전에 살던 2마리의 개 이름도 동일한 이유에서 누렁이었다. 3번째 강아지가 집에 도착했고, 이 친구도 마침 털 색이 그러하여 다른 선택지 없이, 누렁이가 되었다.


누렁이는 4살 된 골든 리트리버다. 황금색 털은 누렁색으로 읽혀져 이름이 누렁이가 되었다.

누렁이는 생후 1달, 형님에 의해 이 집으로 입양되었다. 그즈음 키우던 2대 누렁이가 나이가 들어 하늘나라로 돌아갔고, 형님은 새 강아지를 분양을 받아 어머니께 크리스마스 선물로 드렸다. 그것이 지금의 누렁이다. 처음에 왔을 때는 작은 개구쟁이 강아지였다. 그래서 먼저 형님 댁에 살고 있던 시추와 다른 견종 혼종 플러피(Fluffy, 얘도 우리말로 하면 ‘복실이’ 정도 되는 이름이다)와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둘은 사이가 매우 좋았다. 그러나 곧 누렁이의 몸집이 하루가 다르게 불기 시작했다. 곧 몸이 커진 누렁이의 장난이 플러피에게 위협이 되었고, 관계를 리드하던 플러피의 견생은 극적으로 바꿨다. 자기 몸이 커졌다는 걸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지금 누렁이는 30킬로그램 정도 된다)  누렁이는 플러피를 만나면 여전히 플러피에게 달려든다. 그러면 플러피는 누렁이의 몸 아래에서 끙끙거린다. 이제 옛 깐부는 서로 뭔가 어색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누렁이는 족보 있는 개다. 엄마는 몰리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개였다. 개들 중에는 도그 쇼(Dog Show)에 나가는 개가 있다. 협회에서 정한 기준을 만족시키는 순종에, 성격이나 태도 등도 이에 맞게 잘 훈련되어 있는 개여야 그 자격을 얻게 되는데, 몰리가 그랬다. 그 딸이니 누렁이도 모전여전이다. 이름은 좀 촌스러워도 순종 증명서도 있고, 얼굴과 표정도 꽤 예쁘고, 매너도 (사람에겐) 온화하다. 산책을 나가면 햇살에 부서지는 금색 털들이 나부끼는데 그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 때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보고, 개가 너무 예쁘다, 혹시 쇼독이냐며 말을 건네기도 한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입꼬리를 바짝 올리며 다가오는 사람들을 맞이하니 아이부터 어른, 노인까지 좋아할 수밖에. 실내 매너, 화장실 훈련도 잘 되어 있다. 집안에서는 절대로 짖지 않고, 만지지 말라는 것은 NO! 하면 바로 놓는다. 입질도 없다. 어디에 앉으라고 하면 앉고, 오지 말라고 하면 그 자리에서 딱 멈춘다(물론 눈치를 슬금슬금 보면서 조금씩 우리 가까이 오기도 하지만^^). 소변이나 대변을 실수하는 법도 없다. 잘 참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건 계속 신경을 써줘야 한다. 중간중간 밖으로 나가서 급한 일을 보고 올 수 있도록 우리도 문을 열고 시간을 줘야 한다. 남편 말로는 누가 가르친 적도 없다고 하는데 어디서 이런 걸 배웠을까 싶다. 우리랑 살기에 너무 훌륭한 누렁이.  


누렁이는 사람을 너무너무 좋아한다. 사람을 만나면 미친 듯 꼬리를 흔들고 미소를 띠며 쳐다보고 다가가려고 한다. 그리고 주둥이를 쭉 사람 쪽으로 내민다. 손으로 쓰다듬어 주는 것을 광적으로 좋아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만히 있을 때도 주둥이로 손을 탁탁 치며 만져달라고 격하게 표현한다. 이 모습이 때론 주책맞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만큼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정직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니, 그럴 수 있는 것이 때론 부럽기도 하다. 아, 사람을 좋아한다고 했지만 아무에게나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이전에 어떤 분이 말을 거셨는데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나는 그분에게 좀 거북하고 부담스러운 감정을 느꼈다. 그분은 자기가 골든 리트리버를 키워봐서 안다며 자랑을 했는데 희한하게 누렁이는 평소와 달리 그분에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쳐다보지도 않았고, 미소를 짓지도, 꼬리를 흔들지도 않았다. 얘가 이런 애가 아닌데, 뭔지 몰라도 누렁이도 나랑 비슷한 것을 느꼈던 걸까? 싶었다. 개도 사람의 기운을 읽는 걸까?


어느 새 다가와서 다리를 베고 쓰다듬어 달라고 기댄다. 불이켜져 있으면 눈 쪽만 침대 안으로 넣어 마치 빛을 피해 잠을 청하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동시에 누렁이는 다른 개들에게는 좀 공격적, 아니 정확하게는 방어적이라는 반전 모습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가까운 도그 파크(Dog Park)에 가면 온갖 개들을 만난다. 다른 개들은 서로 만나 냄새를 맡고 서로 같이 다니며 사교 활동을 즐기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 누렁이는 공과 자기에게 주어진 놀이 이외에는 관심이 없다. 다른 개들이 다가오면 잠깐은 긴장하며 냄새를 맡는 듯 하지만, 이내 상체를 바닥에 붙이고 공격할 태세를 취하며 웡웡! 저리 가버리라고 무섭게 짖는다. 집 안에 우리와 함께 있을 때는 한 번도 보이지 않는 무서운 모습이다. 혹시 사회성이 부족해서 그런가 싶어 수의사 검진 때 물어봤다. 수의사는 웃으며 그런 것보다는 얘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우선이라 다른 여유가 없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그러니 다른 개 주인들에게는 ‘우리 개는 지금은 좀 바빠요’ 이 정도로만 얘기해줘도 될 것이라고 했다. 부족하고 모자란 것이 아니라 입장과 상황을 먼저 헤아리는 것이 우선인 것은 개나 사람이나 똑같았다. 이후 자세히 관찰해봤다. 모든 개들한테 그런 것들은 아니더라. 자기와 비슷한 암캐들이 다가왔을 때는 조금 긴장은 하지만 짓거나 위협하지는 않고 비교적 평화롭게 지나치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지금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찾아보니 리트리버종은 사냥해서 잡은 동물들을 가지고 오는 개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누렁이도 공(혹은 프리즈비) 던지고 받아오기 같은 활동에 미친다. 수십 번을 해도 흥분한다. 인형이나 공 같은 입에 물 수 있는 장난감 같은 것도 좋아한다. 마음에 들면 하루 종일 물고 다닌다. 바다나 물도 좋아한다. 흐르는 파도나 물살도 무서워하지 않고 거침없이 들어가 털을 다 적시고 나온다. 풀도 좋아한다. 마음에 드는 풀밭에서는 말 그대로 미친개가 되어 발랑 드러누워 온 몸을 비빈다. 털을 빗어주는 것도 좋아한다. 그리고, 나도 좋아해 준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내가 뭐라고 엉덩이가 빠질 정도로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인사하고, 행동 하나하나를 주시하며 뒤를 졸졸 따라오는 걸까? 침대 아래서 잠을 자고 있다가 아침에 일어나는 기척이 들리자마자 반갑다며 꼬리를 바닥에 탁탁 치고, 곧 장 주둥이를 침대 위로 가져와 아침 인사를 한다. 이런 집중과 관심을 어디서 내가 받아보았나?

옆에서 기척이 들리면 바로 일어나 확인한다. 방심마라. 어디서나 보고이따아~~!

반려견과 함께 사는 건 나로선 난생처음이다. 처음엔 많이 낯설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털이 온 집안에 풀풀 날리고,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더러워져있고, 여기저기 냄새도 나고 그래서 초반엔 신경이 무척 쓰였다. 하지만 지금은 익숙해졌다. 털은 청소를 매일 하면 되고, 더러워진 발이나 배도 수건으로 닦아주면 되고, 주기적으로 잘 씻겨주면 된다. 아침, 저녁밥과 물을 챙겨주고, 배변 텀을 확인하고, 산책을 대리고 나가고, 밖에서 싼 응가도 확인하는(혹시 너무 딱딱하거나 무르지는 않은지, 이상한 걸 먹은 건 아닌지 등;;) 일은 이제 일상이다. 이 일들이 때론 성가시고 귀찮지만, 누렁이와 함께 살며 경험하는 사랑과 신뢰, 소소한 즐거움과 감동이 그보다 크고 깊기에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사라지는 순간들이겠지만, 그렇기에 같이 있는 시간의 가치를 충분히 느끼고 세기며 서로에게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가 되고 싶다.


춘사월 누렁양은 봄이 너무 좋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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