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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zi Apr 24. 2022

016. 새벽, 닭이 운다

닭은 생각보다 강한 동물인 것 같다

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팔았던 때가 있다. 엄마가 작은 동물을 무서워해서 난 한 번도 사본 적이 없다. 어떤 친구들은 병아리 장사가 올 때마다 사서 부지런히 키우고 죽이길 반복했다. 어떤 친구들은 병아리가 닭이 되는 기적 같은(이렇게 산 병아리가 닭이 되는 건 정말 그런 일이다) 경험을 목도하기도 했다. 친구 집에 놀러 가면 병아리들이 귀엽기도 하고, 징그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동물과 함께 사는 삶은 나에게는 낯선 일이다.


그런데 미국 집에는 닭이 산다. 수탉 1마리, 암탉 3마리가 있다. 아무래도 시골 주택이니 마당이 있고, 마당이 있으니 텃밭도 내고 닭장도 만들 수 있는 것 같다. 닭들은 닭장 속에서 대게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종종 문을 열어주면 밖으로 나와 마당 흙이나 밭에 있는 벌레나 알 수 없는 무엇들을 쪼아 먹으며 다닌다. 때로는 문을 열어주지도 않았는데, 반려견 누렁이 공간이나 밖으로 나와 유유자적하는 경우도 있다. 철사로 만들어진 펜스 틈새를 찾아 도망 나온 것이다. 나 같으면 그렇게 혼자 나와서 다니기 무서울 것 같은데, 목과 머리를 꼿꼿이 들고 여기저기 자유로운 히피처럼 쏘다닌다. 그 모습이 참 당당하다.


닭들은 정말 다양한 걸 먹고 산다. 전문 사료부터 시작해서 땅 속 지렁이, 벌레들 뿐만 아니라 집에서 먹다 남은 과자나 음식 같은 신선한 음식물 쓰레기(?)도 가져다주면 콕콕 다 쪼아 먹는다. 신선한 음식물 쓰레기를 좀 더 설명하면, 방금 깎은 사과껍질, 불려놓고 다 먹지 못한 누룽지, 야채를 다듬고 나온 껍질이나 자투리 등등을 말한다. 식성은 정말 왕성해서 주는 족족 거의 다 먹는다. 아닌 것들은 안 먹고 가리겠으나 대부분은 먹는 것 같다. 어차피 우리도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주는 것이니 얘네들에게도 크게 문제 될 건 없을 것 같다. 오랫동안 저렇게 멀쩡이 살아 뛰고 날아다니는 쟤네를 보면 말이다.


그동안 비가 많이 와서 닭장 속 흙이 질퍽해졌다. 시어머니가 그 사이 낳은 달걀 하나를 조심스럽게 꺼내놓으셨다.


그러기에 무섭다. 올해 미국에 왔을 때 누렁이 집을 보고 깜짝 놀랐다. 디아블로 2를 해보면 베리얼 그라운드(Burial Ground)로 가는 황량하고 피폐한 넓은 광야가 나온다. 누렁이 집 안이 딱 그랬다. 작년엔 잡초들이 너무 무성해서 내가 직접 잔디를 깎아주고 정리를 해줬어야 했는데, 그 땅 위에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누렁이는 풀을 좋아하는데 검은 흙색으로 가득한 그 공간이 이상했다. 물어봤다. 혹시 풀 관리가 힘드셔서 다 뽑아버리셨나요? 아니.  범인은 닭들이었다. 어느 날 닭들을 누렁이 집에 풀어줬단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는데 걔네가 다 쪼아 먹어서 풀도, 뭐도 남아난 것이 없게 되었다고 한다. 잔반 처리반 닭들 덕분에 친환경 생활을 할 수 있지만 방심하면 모든 걸 다 박멸시켜버리는 무서운 군단이 되기도 하는 게 함께 살고 있는 저들의 실체였다. 난 처음에 누렁이가 왜 자기 집에 들어오는 닭들을 쫒지 않고 그냥 두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젠 좀 알겠다. 누렁이도 병아리 정도야 제압하겠지만 다 큰 닭은 부담되고 무서운 것 같다. 몸집이 3배 정도 크면서도 쟤네가 맘먹고 덤벼들면 저 순둥 한 누렁이는 이길 재간이 없는 것 아닐까?


닭은 알을 낳는다. 배불리 먹이고 돌봐주면, 암탉들은 알들로 우리에게 풍요를 준다. 겨울에는 암탉 한 마리 당 하루에 1알씩, 날이 따뜻해지면 3알씩 평균적으로 낳는단다. 고맙다. 금방 낳은 신선한 달걀은 노른자도 탱글한 것 같다. 무항생제, 유기농, 자연방목, 산지직송 등등으로 불릴 수 있는 계란인 만큼 말해 뭐하겠는가? 하지만 알을 가지러 닭장에 들어갈 때는 조심해야 된다. 예민한 닭이 손을 쪼아버릴 수도 있다. 무서움에 나는 아직 해보지 못했다.


닭들은 정말 새벽에 운다. 새벽 4시 즈음이 되면 갑자기 밖에서 깍까 두르두르두~~!!! 하는 소리가 들린다(꼬끼 오는 소리의 우렁참과 길이를 담기 부족하다). 수탉이 울기 시작하는 것이다.  소리가 너무 커서 닭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목을 약간 묶어 놓았는데, 소용없다. 좁아진 소리통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아침 알람  소리. 마치 누군가에게 소명을 받은 듯, 닭발 끝에서 부터 머리 벼슬까지 있는 있는 기운을 모두 모아 힘차게 하루를 깨운다. 청각이 예민한 남편은 이마를 찌푸리며 말없이 이어 플러그를 꼽고 베개에 얼굴을 묻는다. 나와 누렁이는 쟤 또 저런다 하며 무시하고 또 잠을 잔다. 그러든 말든 오늘도 수탉홀로 새벽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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