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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zi Apr 23. 2022

015. 빗물이 새고 수도가 고장이 났을 때

웬만한 것들은 직접 수리하고 보수하며 산다

지금은 결혼을 해서 남편과 오래된 양옥 주택에 살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대부분 오피스텔이나 아파트에서 살았다. 살다가 문제가 생기면 관리 사무실에 연락하면 되는 곳. 간단한 문제는 대부분 해결해준다. 윗집에서 물이 새는 것 같은 경우는 전문적으로 수리하시는 분들께 직접 연락해 부탁하기도 했다. 집의 구조와 소재, 기타 원리들을 아는 것은 내 몫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막힌 하수구나 변기, 혹은 간단한 인테리어 외에는 집에 내 손이 미치는 일은 많지 않았다.


반면 지금 한국과 미국에서 사는 집은 둘 다 오래된 주택이다. 특히 지금 머물고 있는 미국 집은 나무로 만들었다. 어느 벽이나 치면 콩콩 하고 나무판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창문도 한국에 비해서는 얇은 편인데 계절이 조금 달라 그런지 버틸 만하다. 이렇게 되면 바깥 소음도 더 많이 들릴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집 바깥으로 도로가 나 있기는 하지만 한국에 비하면 차량 소통이 그리 많지 않고, 동네 분위기 상 크게 소리 날 일도 없어서 그렇다. 오히려 층간 소음이 없고 위, 아래, 그리고 공용 공간 등을 신경 쓰지 않아도 돼서 상대적으로 삶이 자유롭고 한적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곳 역시 (당연하지만) 나름대로 바쁜 삶의 모습이 있다. 특히 집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렇다. 비가 오는 날이면 천정에서 가끔 물방울이 똑똑 떨어진다. 지붕에서 물이 새는 것이다. 나는 천정에 물이 고여 곰팡이가 슬고 벽지가 떨어진 것들은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빗물이 바닥에 직접 떨어지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임시방편으로 대책을 마련한다. 바닥이 흥건해지기 전에 집에 있는 통들을 바닥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지점에 정확히 가져다 놓는다. 몇 시간 뒤 강수량에 비례해 천정을 통과해 색이 변한 갈색 물이 통에 담긴다. 그런 뒤 가까운 철물점에 간다. 한국 철물점을 생각하면 작지만 알차게 물건들이 들어선 어느 골목 가게의 정겨운 형상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이곳 철물점은 대형 창고형 마트다. 빗자루부터 시작해 문짝, 지붕, 나무 벽 같이 부피를 크게 차지하는 물건들이나 혹은 그 세부를 이루는 작은 부품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물건들을 판매한다. 이곳에 가서 지붕 땜질용 점토(혹은 페인트)를 사 온다. 날이 좋은 날, 집에 있는 사다리를 타고 지붕으로 올라가 새는 부분을 확인하고 사 온 것을 바른다. 그러면 지붕 보수는 끝이다.

간 밤에 내린 비로 빗물이 모였다. 지붕에 올라가 땜 질을 한다.

지붕은 좀 단순하다. 그러면 이번에는 싱크대 수도다. 얼마 전 남편이 싱크대 아래 장을 열어보다가 깜짝 놀랐다. 물이 흥건히 젖어있고 곰팡이도 많이 슬어 있었다. 맥가이버 형부를 모셨다. 샅샅이 싱크대 위아래를 확인하시던 형부는 금방 문제를 진단하시고 코스트코에 가 새 수도 연결관을 사 오셨다. 몇 시간 걸려 뚝딱 문제가 해결되었다. 하루 썼는데 새로 바꾼 수도꼭지에서 뜨거운 물이 잘 나오지 않았다. 형부를 또 모셨다. 잠깐 확인하시더니 제품이 불량이란다. 새 제품을 사 와서 다시 수도를 연결하고 불량품은 반품했다. 주방이 업그레이드되어 편안하고 안전해졌다.


지난번에는 도로에 차가 선 일도 있었다. 바로 서비스 센터에 연락해 차를 견인해가서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확인하려고 했다. 그런데 형부가 오셔서 일단 배터리를 충전해주셨고 집까지 가보자고 했다. 후드를 열고 믿을 만한 유튜버 채널을 보시더니 냉큼 나가서 뭔가 작은 부품을 사 오셔서 바꾸셨는데 차가 금방 쌩쌩해졌다. 어떻게 아셨냐고 물었더니, 친한 분들 중에 자동차 수리소를 하는 분이 계셔서 평소 많은 걸 듣고 배우기도 했고, 원래도 직접 확인하고 수리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좋아하신다고 했다. 다음 날 서비스 센터에 가니, 차에 드는 비용이 푼 돈으로 절감되어 있었다. 바쁜 와중에 피곤하고 성가실 수도 있는데 이런 일이 재미로 느껴지신단다. 그래서 그런지 형부네 가면 담장도, 놀이터도, 창고도 모두 직접 만드신 것들이 많다.


남편은 가족 중에서 이런 일에 제일 서툰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도 머리에 헤드라이트를 끼고 다니며 집안 이곳저곳을 서성이는 모습을 자주 본다. 전기 문제를 해결하거나, 집안 곳곳을 살펴 곰팡이를 말끔히 떼어내거나, 펜스를 고치거나 하는 자잘한(?) 일들은 직접 한다. 작년에 왔을 때는 어디서 변기를 사 와서 직접 바꾸려는 것을 보고 내가 기겁을 했던 적도 있었다(결국 이것도 우리가 한국에 돌아간 뒤에 형부가 하시기는 했지만 ㅎㅎ). 물론 이곳에서도 크고 중요한 공사나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들은 외부 전문가들에게 맡기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왜 그런지 문제를 이해하고, 자료를 찾아보고, 일단 먼저 직접 해결하려는 마음과 태도가 기본적으로 탑재해있는 것 같다. 그래서 생활에서 자주 마주치는 설비들의 기본 원리들에 대한 상식도 풍부하다.


내가 사는 집에 늘 주위를 기울이고, 관심을 갖고,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삶. 어떻게 보면 주인이 자기 집을 관리하는 것은 당연한 모습일 텐데, 나는 이런 것을 시간 낭비이니 남의 일로 미뤄두거나 돈으로 해결할 일이라고만 생각하며 살았다. 물론 이런 내가 크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내가 사는 공간의 관리사무소장은 남보다는 내가 우선이 되는 게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이라 할 지라도 잘 보고 다녀야겠다. 자격은 남이 주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스스로 부여하는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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