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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zi Apr 20. 2022

004. 영어와 스페인어, 7년 동안의 고독

쉽지 않은 언어 배움의 까미노(Camino)

영어를 잘해보려고 노력했던 적이 있다. 16년 1, 2월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와서 제대로 폼푸질 당한 나는 그 뒤로 영어를 잘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서툰 언어이나마 소통했던 경험이 가슴에 크게 박힌 터였다.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그해 여름 홍대에 3개월 수강으로 영어 습관을 만들어 주는 <벼랑 영어>에 등록해서 정말 본업 이상으로 열심히 커리큘럼을 따랐다. 매번 페이퍼 과제를 제출하고, 스피킹 라인을 녹음해서 메일로 보내고, 원서를 사서 1권 읽기도 했다. 다시 돌아봐도 그때의 나는 열정 그 자체였다. 영어를 열심히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보고자 하는 나의 바람은 코이카로 연결되었다. 그해 가을에는 코이카에 지원했고 콜롬비아 지역 해외봉사단원으로 합격했다. 17년 1, 2월 국내 교육을 거쳐 그곳에서 영어와 현지어를 잠시 공부했다. 마음에 품었던 것들이 현실 속에서 하나씩 이뤄지는 것 같았다. 기분 좋은 긴장과 설렘이 주변 가득했다.


준비를 끝내고 17년 3월, 콜롬비아에 갔다. 여행이 아닌 일상을 살기 위해 디뎠던 첫 발걸음이었다. 의욕적인 스페인어 공부가 시작되었다. 보고타에 있는 사립 대학교 <세르히오 아르볼레다 Sergio Arboleda>에서 운영 중인 외국어 학원 같은 곳에서 2달가량 기초 스페인어를 배웠다. 처음 외국어 연수를 받는 경험인데 하루하루가 너무 좋았다. 힘들기도 했지만 무언가 더 젊고 어렸을 때 하지 못했던 경험을 보상한다는 기분이 더 커서 고됨보다는 감사함이 더 컸던 것 같다.


보고타에서의 현지 적응 훈련이 끝나고, 주요 활동 지역인 아르메니아(Armenia)로 갔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나만의 외국 생활이 펼쳐졌다. 학원 안에서 보호받았던 내 스페인어가 현장에서 부딪혔을 때, 나는 쫄았다. 물론 겉으로는 씩씩해 보였다. 그렇지만 말 한마디를 자신감 있게 뱉어내기 위해서 속으로 수만 가지 단어 조합을 떠올리기도 했고 때로는 두려움과 떨림을 뚫어 내야 하기도 했다. 말을 못 하지는 않았다. 물론 하고 싶은 모든 말을 다 하지는 못했다. 필요한 말들은 더듬더듬했고, 못하는 말들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혼자 곱씹어 생각해보거나 했다. 오전에 학교만 다녀와도 기가 너무 빨렸다. 아이들은 내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 안다면 정말 나를 도와주기 위해서, 그리고 모른다면 내가 너무 반가워서 다가와 무작정 반복되는 혹은 처음 들어보는 질문들을 던지곤 자기들끼리 까르르 웃었다. 학교 선생님들 역시 친절하고 따뜻하게 나를 대해주고 배려해주며 천천히 쉬운 단어를 섞어가면서 대화를 유도해주셨다. 쇼핑도 하고, 이민국 가서 비자도 갱신하고, 대중교통도 타고, 은행도 가고, 핸드폰 요금도 내고, 병원도 가며 일상을 살았다. 때로는 성공적인 대화를 한 적도 있었다. 그렇지 않은 날은 더 많았다. 많은 이해를 받았지만, 또한 정말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끼기도 했다. 언어의 세계에 포함되기도 하고 소외되기도 하면서 점점 지쳐가는 나를 보았다. 그래서 오후에는 혼자 e-book으로 구매한 스페인어 공부책을 꾸준히 공부했다. 밖에 나가 마주치는 무수한 상황들에 대응하는 생활이 마치 태평양 바다 한가운데에서 기본 영법을 배운 초보자가 허우적거리며 헤엄치는 모습과 유사하다면, 집에서 혼자 하는 스페인어 공부는 발이 닿는 안전한 풀장에서 기초 동작을 부지런히 반복하며 연습하는 모양과 비슷하다. 언어 공부를 위해서는 둘 다 필요하다. 콜롬비아에서 다양한 경험도 많이 했었지만 그 밑바닥에는 언제나 언어에 대한 부담과 스트레스가 그림자처럼 드리워졌었다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다.


그래서 스페인어, 어디까지 했니? 하하하. 한국에 돌아오기 전, 남는 것이 없을 것 같아 스페인어 능력시험인 델레(Dele) B1 시험을 신청해서 합격하고 왔다. 여기까지만 한 건 좀 아쉬워서 귀국 길에 멕시코에 1달가량 머물렀을 때, 멕시코 어학원에서 진행하는 B2레벨 시험을 신청해서 보기도 했다. 정말 아까운 점수로 합격하지 못했다. 아마 항의서 같은 것들을 냈다면 잘하면 통과했을지도 모르겠다(그랬다는 이야기들을 이전에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떨어진 게 안타까워 한국에 귀국하고 나서는 한동안 B2 스터디에 가입해서 시험 준비를 하기도 했고, 주말마다 있었던 스페인어 스터디에 참여하여 꾸준히 노력해보기도 했다. 넷플릭스에서는 멕시코 드라마를 스페인어 자막 틀어놓고 보기도 하고, 출퇴근 시간 앱으로 보고타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눈과 귀를 스페인어로 기름칠하려 노력했다. 힘들 때도 있었지만 이걸 계속한다는 것 자체에는 여전히 설렘이 있었다. 그러나 오래가지는 못했다. 내 생활에 변화가 생기고, 코로나가 터지면서 이 모든 것들은 중단되었다. 지금 현재 스페인어는 아주 가끔씩 왓츠앱(Whatsapp)을 통해 콜롬비아 친구들과 대화할 때, 구글 번역기를 거쳐 다듬어질 때 만 사용된다. 다시 시작해야 되는데 싶지만 몸이 안 따라주고 있다.


영어 또한 마음에 안고 있는 또 다른 숙제다. 콜롬비아에 갔을 때, 때로는 영어를 써야 할 때도 있었다. 처음에는 영어가 스페인어보다 조금 더 나았는데 스페인어 환경이 계속되면서 영어가 서툴러졌다. 정확히 말하면 원래도 서툴렀던 것들이 좀 더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것이겠지? 한국에 돌아와 스페인어 공부를 할 때 영어공부도 같이 했다. 여하튼 남미를 벗어나면 스페인어보다는 영어가 공용어이니 말이다. 영어공부에 가장 집중하게 만들었던 <벼랑 영어> 홈페이지에서 수료자들을 위해 스피킹 과정만 운영한다는 것을 읽었다. 바로 신청했다. 과제는 총 10개 정도 제공이 되는데 10주간 스피킹을 해서 보내주면 이전처럼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의욕적으로 시작했다. 때마침 미국 교포인 지금의 남편과 소개팅을 하고 썸을 타고 있었는데 앞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일단 이것도 열심히 해놔야 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과제를 10번 모두 제출하지는 못했고 초반 2번 정도만 완성해서 제출했다(그래도 그 2번 중에는 아빠가 중요한 수술 중일 때도 포함이 되어 있어서 내가 얼마나 절박한 마음으로 과제에 매달렸었는지를 알 수 있다). 벼랑 영어의 스피킹 과제 채점 방식은 형용사로 가늠된다. Good, Very good, Asome 같은 단어들이 적히게 되는데 재학 중일 때도 나는 Asome까지 받아봤던 것 같다. 그랬던 내가 마지막으로 제출했던 과제에서 ‘Beautiful’이란 평가를 받았다. 이건 되게 잘했다는 거 같은데? 싶어 뿌듯했다. 아, 이때 계속 밀고 갔어야 했는데… 그 뒤로는 연애와 내 생활에 빠져 영어, 그리고 앞서 말한 스페인어까지 모두 순위 밖이 되어버렸다. ;;;;


그럼 여기서 잠깐. 미국 교포 남자 친구를 사귀면서 영어를 하면 되잖아?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나도 처음에는 그랬다. 하지만 남편은 중학교 때 이민을 가서 한국어 사용에 어려움이 없었고, 내가 영어나 관련 문화를 생각하는 마음보다 남편이 모국을 생각하는, 아니 사랑하는 마음이 훠얼~~~~ 씬 컸다. 나와 연애하며 남편의 한국어 실력은(원래도 문제없었으나) 일취월장하기 시작했고, 드라마를 통해 배운 온갖 MZ세대 용어들도 내게 사용해 가면서 나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나도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가끔씩은 영어를 써보기도 했고 특히 벼랑 영어에서 사우스 파크(South Park)를 통해 알게 된 속어들이나 표현들을 들려주며 이런 것도 안다며 으스대 보기도 했다. 오래가지는 못했다. 남편은 한국에서 영어 쓰려니 기분이 좀 이상하다고 했고 나도 한국어로 얘기했을 때 가장 즐겁고 신나게 대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둘 사이에 영어는 그렇게 어색한 무언가가 되어버렸다.


둘 사이 형성된 이 문화는 미국에서 와서까지 계속되고 있다. 특히 남편은 자기 사람을 잘 돌보고 감싸주는 좋은 성품을 갖고 있다. 내가 헤매고 어려워하는 것에 앞서 먼저 부지런히 나서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기본 매너로 장착되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생활은 남편을 통해서 이뤄지고 있다. 외국에서 이렇게 편해 본 적은 없어서 황송하면서도 참 좋기는 한데, 부딪혀야 하는 상황에서 계속 보호되고 있다는 면에서는 좋은 것만은 아니다. 가족 중 형님과 남편은 영어로만 대화를 하는데 형님도 한국어를 곧 잘하시기 때문에 이 관계에서도 한국어를 쓰고 있다. 남편 조카 조나(Jonah)는 영어만 쓰기 때문에 쉬운 영어를 섞어 쓰고는 있다(그러나 조나 역시 한국어는 곧 잘 알아 들어서..ㅎㅎ;;). 잔잔하게 일상이 흘러가는 와중에 계속 이렇게만 되면 안 될 텐데 하는 불안감이 조금씩 고개를 들려고 한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스트레스받지 말고 마음껏 남편에게 의지하자 싶었는데 그 날짜도 점점 다가오고 있다. 내 상상 속 긴장되는 상황은 이런 거다. 미국에 있게 되었을 때 얘도 놀이터에서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싶어 할 텐데, 내가 상황이 부담스러워서 계속 피하면 어떡해 하지? 하는 남모를 염려와 기죽음이 내 안에 있다.


콜롬비아에서 스페인어를 공부하며 나름대로 터득하게 된 외국어 학습의 비결은 꾸준한 노력이다. 홀로 도를 닦는 듯한 고독함에 직면하며, 평생 하겠다는 마음으로 실수를 포용하고 조금씩 나아지는 자신을 격려하며 세워나가는 과정이 바로 언어 학습의 까미노(Camino)였다. 그토록 스스로 만들어 주고 싶었던 외국어 하는 최적의 환경이 만들어졌건만 나는 지금 왜 이리 퇴행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걸까. 매서운 질책이 다독거림에 앞선다. 그래서 그런가? 오랫동안 쉬었던 걸음을 다시 내딛으려고 하니 편안함을 알고 난 뒤라 마음의 저항도 더 심하다. 설렘과 호기심이 사그라든 늙은 마음을 가진 나. 이 관성을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을까?


운전대 보다는 조수석이 더 좋다



혹시나 관심 있으신 분들을 위하여

3개월 동안 영어를 습관으로 만들어 주는, 벼랑 영어 홈페이지

https://cliffenglis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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