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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zi Apr 20. 2022

003.임신 28주, 피부 두드러기 때문에 병원을 가다

가려움과 두드러기로 인해 삶이 고단하고 피로해졌다

미국에 도착했을 때가 임신 21주 정도 되었을 때였다. 그때 왼쪽 무릎 뒤 접히는 곳에 조그마한 두드러기가 나 있었는데 무척 간지러웠다. 하지만 범위가 작고, 이전에도 그랬던 적이 있었어서 이러다 없어지겠지 하며 있었다. 그리고 한 주 정도는 괜찮았다.


약간 심각해지기 시작했을 때는 2주가 지난, 23주 차에 접어들 때였다. 간지러움이 심해지고, 피부 위에 돋아나는 두드러기도 요철이 심해지고 커졌다. 범위도 넓어졌는데 긁지 않으면 간지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무릎 뒤뿐만 아니라 배와 온몸 구석구석이 간지럽기 시작했다. 눈으로 보면 빨간 작은 점들이 긁은 곳을 따라 생겨나 있었다. 다행히 미국 도착하자마자 보험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어 병원에 연락을 취했다. 사전 문진을 상세히, 그리고 여러 번 거친 뒤 24주 차가 되었을 때 병원에 가서 산부인과 전문의를 만날 수 있었다. 아이가 잘 있는지, 지금 주 수에 조심해야 하고 알아야 할 것, 그리고 앞으로 진행될 것들에 알려주면서 두드러기도 함께 봐주었다. 괜찮을 거라고 하면서 몇 개 약을 알려줬다. 하나는 칼라민 로션(Calamine Lotion)이라고, 어린아이들 수두 날 때도 잘 발라주는 약 같았다. 이건 누구에게나 쓸 수 있는 안전한 약이라고 했다. 또 한 가지는 약한 수준의 스테로이드 연고인 하이드로 코티존 10 플러스(Hydrocortizone 10 plus)였다. 스테로이드는 듣자마자 부담이 되었다. 일단은 형님께 칼라민 로션을 받아 바르기 시작했다. 무릎 뒤가 계속 심해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자기 전에, 혹은 간지러움이 올라올 때마다 로션을 발랐다. 허옇게 밀가루를 바른 것처럼 무릎 뒤가 뿌옇게 되면서 간지러움은 곧 잡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간지러웠던 몸의 다른 부위들도 더 이상 심각해지지 않았다. 잠시 그랬던 거구나 다독이며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며칠이 지났다.


하지만 다시 피부가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약을 발라 괜찮아지고 있다고 믿었던 무릎 뒤가, 약 기운이 가시면 다시 간지러워 긁게 되고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색도 검어져 보기에 흉했다. 뿐만 아니라 오른쪽 무릎 뒤도 간지럽기 시작했고, 팔꿈치 접히는 곳, 배, 옆구리, 겨드랑이, 속옷 라인 등등이 간지럽기 시작했다. 긁으면 붉게 부어오르며 두드러기가 올라오고, 끝까지 긁어도 시원해지지 않고 오히려 묘하게 감정이 상하고 나빠지는 상태가 되었다. 그제야 살짝 코티존을 무릎 뒤에 발라봤는데 바르니 좀 나아진 것 같았다. 내가 느끼는 증상도, 남들 보기에도 상태가 좀 심각해지는 것 같아 급하게 다시 산부인과 약속을 잡았다. 다행히 25주 경에 초음파를 보러 병원에 갈 일이 있어서 증상을 설명하고 산부인과 진료를 예약했다. 같은 과에 새로운 의사 선생님이 봐주셨고, 코티존 정도는 발라도 아무 이상이 없으며, 산모가 이 상태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 수 없기에 적극적으로 발라서 증상을 경감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나 싶으니 피검사를 통해 더 심각한 증상은 아닌지 정밀하게 보자고 했다. 그리고 일단 심각한 곳들을 사진을 찍어 피부과에 물어보고 혹시 피부과 진료가 필요하다면 알려주겠다고 했다. 이미 넓게 시꺼멓게 변한 왼쪽 무릎 뒤와 빨간 발진 자국이 모여있는 팔목 사진을 찍고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뒤, 피검사는 정상이라는 말과 함께 피부과 의사를 만나는 게 좋다는 소견이 이메일로 도착했다. 운이 좋게 그다음 주 포틀랜드 병원으로 예약을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피부과에서, 선생님은 내 온몸 구석구석 돋아난 두드러기를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은 첫 임신인 사람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피부 증상인  Polymorphic Eruption of Pregnancy라고 설명해줬다. 출산 후에는 거의 다 없어진다고 했다. 변해버린 피부 색깔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온다고 했다. 심각한 건 아니라고 누차 이야기를 해줬다. 코티존을 써도 되지만, 지금 증상이 심하니 자신은 조금 더 강한 약을 쓸 거라고 했다. 온몸에 발라야 하니 단지에 들어있는 대용량으로 줄 건데, 이건 배에 발라도 아이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했다. 의사의 처방에 알겠다고 하고 약국에서 약을 사 가지고 집으로 왔다. 괜찮아질 거다라는 말에 크게 안심했다.

미국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갈 수록 센 약이다


그렇지만 두드러기와의 전쟁은 그 이후부터 더 처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나는 피부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무릎 뒤 쪽에 잠시 발랐을 뿐, 그 이후에는 바르지 않았다. 인터넷에 찾아 약의 성분과 주의사항 등등을 찾아보곤 마음이 무거워지고 무서워졌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 때문에 일단은 참아보자 싶었고, 약 외에 다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를 찾기 시작했다. 마침 시어머니 자신도 그러셨다며 그때 오이를 썰어 붙였다고 하셔서 오이를 사서 얇게 썰어 냉장고에 두고 간지러울 때마다 붙이거나 문질렀다. 또 알로에도 피부 진정에 좋다고 해서 집에 잘 자라고 있던 알로에 가지 두 개를 꺾어 마찬가지로 사용해보기도 했다. 형님은 보습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예전에 오빠 조카가 피부발진이 났을 때 사용했던 시어버터크림을 주셨고, 오트밀 목욕법을 알려주시기도 했다. 남편이 사 온 유기농 오트밀을 믹서기에 갈아 욕조에 물을 받고는 한 그릇 타서 15분~30분 정도 미지근한 물에 아침저녁 몸을 담갔다. 이런 유사한 증상들을 ‘임신 소양증’이라고 하는 것 같아서 관련 블로그들을 모두 찾아보고 보습과 자연적인 방식 등을 소개한 글들을 통해 내가 하는 노력들에 대한 위로를 받았다. 임산부가 되면 함부로 약을 바르거나 쓸 수 없고, 마음이 꺼려지고, 힘들어진다는 것, 내가 힘들지만 버텨야 한다는 것 등등의 공감대 위에 나도 서 있게 되었다.


절절한 노력에 하늘이 감동해서 피부가 괜찮아지면 좋았으련만 야속하게 두드러기는 괜찮아지는 듯 보이다가도 더 심해졌다. 두드러기가 한 번 올라왔던 부분은 검게 착색이 되고, 그 옆으로 새로운 두드러기가 돋아나며 간지러움이 더 심해졌다. 이게 참 희한한 게, 긁으면 긁을수록 이상한 정서가 올라오면서 기분이 몹시 나빠지고 힘들어졌다. 임신 초반에 겪은 입덧은 생의 모든 즐거움을 차단하며 나를 피폐하게 만들더니, 중후 반경 찾아온 이 두드러기는 삶을 피로하고 비참하게 만들었다. 긁으면 마치 모기 물린 마냥 넓게 부풀어 올라 피가 날 때까지 긁게 만들었고, 그럼에도 간지럼이 사그라들지 않아 괴로웠다. 잔인하고 무지막지하게 남의 땅을 공격하는 저 러시아의 독재자처럼 두드러기는 내 몸 구석구석을 점령해갔다. 말 그대로 몸의 접히는 부분들은, 항문을 포함하여(ㅠㅠ) 모두 그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밤이 되면 더 심해져 잠을 푹 잘 수 없었다. 남편은 걱정이 돼서 새벽에 오이를 날라주거나, 혹시 긁다 덧날까 봐 내 손을 붙잡고 자거나했다. 어느 날은 너무 힘들고 화가 나서 남편에게 말 한마디 걸지 않고 수동 공격 대포를 새벽부터 쏴버리기도 했다. 출산 전까지 이렇게 될 수도 있고, 출산하고 난 뒤에도 어떤 엄마들은 소양증을 달고 산다는데… 불안과 걱정, 짜증과 분노, 창피함과 수치심 그리고 비참함 등등. 고운 마음으로 태교에 힘써도 모자랄 판에 마음은 어둡고 황폐해져 갔다.


도저히 이렇게는 살 수 없다 싶었다. 내가 살아야겠다. 왜 의사를 믿지 못할까. 의사가 괜찮다고 하지 않았나??! 스테로이드제를 쓰면 치료는 되지 않지만 단번에 증상은 잡을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수십 번 구글에 검색하고 또 검색했다. 그리고 마음이 정리되었을 때, 최후의 보루로 남겨 두었던 하이드로 코티존을 지난 주말부터 조금씩 썼다. 더 이상 넓어지고 확장되는 이 증상은 일단 잡아야겠다 싶었다. 몸에 바르던 여러 가지 보습제와 아기 전용 샤워젤도 오히려 이런 것들이 반응들을 더 키우고 자극할까 싶어 쓰지 않기로 했다. 샴푸도 아비노에서 나온 아기 전용으로 바꾸고, 오트밀 목욕도 2일에 1번 정도로 생각날 때 만 했다. 자기 전에 두드러기가 활성화된 곳에 아주 얇게, 하이드로 코티존을 발랐다. 밀가루 등 식생활도 조절하려고 노력해봤다. 그렇게 한 2일, 3일 정도 바르자 증상이 좀 잠잠해지는 것 앗다. 이후에는 발진이 심한 곳들만 발랐다. 모두 합해서 스테로이드제를 4~5번 정도 발랐던 것 같다.


결국 4~5번 정도 발랐던 하이드로 코티존 10 플러스


정말 다행히 신기하게도 그 뒤로 증상이 좀 사그라들었다. 여전히 간지럽기는 한데, 긁어도 이전처럼 두드러기가 심하게 올라오지는 않고 그냥 긁고 끝난다는 것이 달라져 있었다. 울퉁불퉁 흉하게 올라오는 것이 없으니 긁어도 조금 안심이 되었다. 색깔도 아주 천천히 회복되어 가는 것 같았다. 검은색이 약간씩 옅어지면서 다시 붉은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기세가 수그러지자 2~3일 전부터는 약을 쓰지도 않고 그냥 물로 샤워만 하고 가볍게 몸을 닦고 자고 있다. 간지러움이 여전 하지만 새벽에 급하게 오이를 찾아 얹거나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그렇게 힘들어지면 또 약을 얇게 바르면 되지 하는 마음의 여유도 조금 생겼다.


지금 28주 차에 접어든 내 몸은 맹렬히 불타 올랐던 불길이 잡힌 뒤, 약간의 잔불 혹은 연기들이 피어오르는 산불 이후의 상태같이 보인다. 정강이와 발등에 긁어서 생긴 피딱지가 생기기도 했고, 여전히 민망한 곳들을 몇 분 동안 긁적이고 다니고 있지만, 한창때 침대에 누워 울며 긁었던 시간들에 비해서는 훨씬 살만하다. 이대로 유지되었다가 괜찮아졌으면 좋겠다. 제발. 임신 참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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