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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zi Apr 20. 2022

002. 나의 하루를 생각하다

불편한 생각이 계속 찾아올 때

어제는 날씨가 좋은 하루였다. 비가 그치고, 파란 하늘이 나왔다. 온도도 올라가서 평일인데도 가족단위 소풍을 나온 사람들로 해변도시들은 북적였다. 오랜만에 썰물 때라 우리 가족은 조개를 잡으로 아침 일찍부터 바다로 향했다. 이런 문화가 낯설었는데, 미국 식구들은 한 달 동안의 바다 높이를 확인해서 뻘이 충분히 드러나는 어느 날이면 조개를 잡으러, 미역과 함초를 뜯으러 시간을 맞춰 나가곤 한다. 말 그대로 자연이 ‘광활한’ 이곳 오리건 주 사람들의 일상 풍경 중 하나인 것 같다.

오랜만에 갯벌이 넓게 드러났다


그동안 내린 비로 나무들도 한 껏 물을 머금었다. 대부분 오래된 나무들로 두께도 굵고 키도 크다. 중간에 우연히 들린 작은 공원은 앞으로는 아이들 놀이터가, 뒤로는 얕은 개울을 너머 어둑한 숲 길이 연결되어 있었던 곳이었다. 해가 드러난 곳으로 가면 등이 따가웠고, 그늘로 가면 몸이 으슬했다. 흐르는 개울물이 몹시 차가워 함께 데리고 간 누렁이도 몇 분 들어가다가 얼른 밖으로 나오고 싶어 했다. 기분 좋은 바닷바람이 덤으로 불었던 어제는 황홀하고 감사한 것들이 많은 하루였다.


그런 하루를 보냈음에도 마음에 찌꺼기처럼 남아 있었던 불편함이 있었다. 피크닉을 통해 만나게 된 분과의 대화에서 ‘내가 좀 너무 그런 척을 했었나?’ 하며 내 말과 행동을 스스로 불편하게 생각하는 불필요한 반추가 첫 번째 원인이었다. 나 괜찮은 사람인데?라는 걸 은연중에 심어주고 싶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 이야기를 하는 내 입가에 김치 자욱이 묻어있었다. 그게 나인 것 같아 창피했다. ‘아, 어쩌지? 역시 난…’ 하는 생각에 이어 ‘어이, 뭘 그런 걸 가지고! 괜찮아!” 위로하는 마음의 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이 이어지는 상태가 오히려 불편함을 더 키우고 있었다. 두 번째 이유는 단체사진이었다. 정성껏 차린 야외 점심 상에서 내가 셀카 모드로 단체 사진을 찍었는데, 돌아오는 차 안에서 확인해 보니 시어머니가 빠져있었다. 두 장 모두 말이다. 한 번 더 확인할 걸 후회하며 언제 또 이렇게 사진을 찍을 수 있으려나, 좋은 기회 놓쳤네 하는 생각이 이어져 속이 좀 상했다.


이런 상황이 한 편으로는 참 재밌다. 그렇게 기분 좋은, 풍요로운 하루를 보냈으면서 좋았던 것들에 주목하지 않고 살다 보면 완벽하지 못할 수도 있는 그런 일들에 오히려 생각과 감정을 쉽게 빼앗긴다는 것 말이다. 요즘 짬짬이 읽고 있는 책이 있는데, 이 책에는 이와 같이 강박적으로 생각을 키워내는 현상에 대해서 ‘생각에 관한 잘못된 생각 아홉 가지’를 정리해 소개하고 있다.


오해 1. 나의 생각은 내가 통제할 수 있다

오해 2. 나의 생각은 나의 인격을 드러낸다

오해 3. 생각은 내면의 나를 반영한다

오해 4. 무의식은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오해 5. 무언가를 생각하면 그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오해 6. 무언가를 생각하면 그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줄어든다.

오해 7. 괴상한 생각은 정신이 혼란한 사람에게만 일어난다.

오해 8. 모든 생각은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

오해 9. 자꾸 떠오르는 생각은 중요한 생각이다.


샐리 M. 윈스턴, 마틴 N. 세이프, 정지인 역, <자꾸 이상한 생각이 달라붙어요>, 교양인(2021).


하루에도 원치 않는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지금 이 상황이 이상해진 것은, 그 생각과 상태를 지나치게 심각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생각의 내용을 그대로 ‘나 자신에 대한 중요한 어떤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한다. 생각은 그저 생각일 뿐, 어제 하루를 만들어 주었던 여러 가지 요소 중에 하나이다. 하늘, 바람, 햇빛, 따뜻한 온도, 반려견의 행복한 흥분, 남편의 배려와 사랑, 새벽 2시에 일어나셔서 빵과 속재료 모두 만드셨던 100% 수제 샌드위치의 촉촉한 맛, 서로를 향한 가족들의 마음, 성가심을 너머 소풍을 소풍답게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 형님의 성실함과 넉넉한 마음, 뻘에서 주워 올린 아이 주먹만 한 조개와 개가 주는 신기함, 입가에 묻은 김치의 창피함, 모두가 나오지 못한 사진에 대한 아쉬움, 한 번 더 확인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잠깐 마주친 할머니에게서 맡았던 마리화나 냄새, 새로운 사람에 대한 호기심, 내 상황에 대한 감사함, 남편 조카의 사랑스러운 안김, 삼겹살과 잘 익은 김치의 감칠맛 나는 입 속에서의 섞임, 거센 파도로 인해 안개처럼 부서져 해변 도시 인근을 자욱하게 만들었던 파도 안개, 긴 머리를 곱창 밴드로 묶고 매우 친절하게 응대했던 스타벅스 직원의 넘쳐난 서비스 응대와 디카페인 아이스 라테의 고소하고 시원함, 말하기 어려운 몸 구석구석의 여전한 가려움으로 인한 속상함과 좌절감 그리고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런 식으로 스쳐 지나갔던 것들… 이렇게 수많은 것들이 바로 나의 하루를 만들어 주었다.


불편한 생각들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이다. 내가 생각을 선택할 수 있는 여유가 있을 때는 그날 경험한 혹은 이전에 경험한 여러 가지 것들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들을 선택하고, 홀로 곱씹으며 그 만족감과 행복감에 다시 젖는 시간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어제 만난 나무처럼 말이다.


https://youtu.be/19J3IjTdLY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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