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 태국 도망기 20

탄 조비 그리고 로또.

by Chiang khong

7.1. 금.


왕짱이 물고기 춤을 추고 있다.

(일본어로 강아지를 귀엽게 부르는 말)
저 멀리에서 부리나케 달려 나온다.
이처럼 격렬한 환영은 처음이다.
흡사 점박이 물고기 같다.

이 모든 게 삼겹살 덕분이로다.


오늘은 남자 친구의 생일.
처음으로 같이 맞는 생일이다.


(8일 후면 내 생일)


뭐가 갖고 싶은지 집요하게 물어도 언제나 돌아오는 대답은
-삼겹살과 케이크.
나는 이쁜 속옷(?)을 사주고 싶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필요 옵소.
뿐이다.


그래. 니 소원대로 삼겹살을 아주 배 터지게 먹게 해주마.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도이수텝과 도이 뿌이 후에 삼겹살 뷔페
명동 무까따에 가기로 했다.


사실 도이수텝과 도이 뿌이 가는 길이 좀 험하다.
구비구비 커브길도 많고 산이라 오르막 내리막도 심하며
날씨도 오락가락 바람도 세다.


그래도 본인이 저토록 가고 싶어 하니까
그럼 난 엑스포에 (란나 엑스포 6/30~7/6일까지 컨벤션 센터에서 열림) 내려다 주고
니 혼자 다녀오세요 했더니
무척이나 서운해하는 것이다.


같이 가기로 했다.

울창한 숲길을 따라 올라가는 남자 친구는 의기양양 하며
-거봐! 오토바이 잘 달리지?
으쓱 댄다.


지난번 매림에 다녀온 뒤 오토바이가 헐떡 댄다며 도이수텝과 도이 뿌이는 무리가 아닐까
했더니 그게 내내 마음에 걸렸나 보다.
-응응! 최고야!

얼씨구나 장단을 맞춰줬더니 가솔린을 펑펑 쓰며
더 힘차게 속도를 올린다.
무서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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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중턱에는 쉬워가는 코너가 있었다.

타이 티나 한잔 마실까 해서 들어갔더니
개들이 우글우글했다.
내가 개띠라 개를 참 좋아라 한다.
남자 친구는 고양이 19년 집사 경력이라 동물이라면 덮어놓고 좋아라 한다.

(가끔씩 나와 고양이를 헷갈려 한다)


우리는 개들과 뒹굴뒹굴 대며 놀아났다.

시켰던 타이티와 후렌치 프라이는 먹는 둥 마는 둥
오는 길 편의점에서 샀던 콘 치즈맛 도조 과자의 대부분을
유난히 식탐이 강한 털북숭이 개한테 공물로 바쳤다.


이놈의 개는 먹이 주는 고마운 손을
덥석 덥석 물어대는 배은망덕을 저질렀지만
걸레자루 같은 푸실푸실한 털이 참 귀요미였다.

모기도 3마리나 죽여대며
털북숭이가 과자를 실컷 먹어대고 근처 연못을 따라 네 발을 조심조심 옮기며
후룩후룩 물을 마셔대는 쇼 도 느긋이 구경했다.

그렇게 시간을 때우다가 문득 하늘의 구름이 심상치 않음을 느껴
가던 길을 재촉했다.


한참을 시커먼 매연 뿜어대는 썽태우의 꼬리를 쫓아 달리다 보니


어느덧 도이쑤텝!

오토바이를 세우고 기념품 가게를 슬슬 구경하며 올라가다
찐뜩찐뜩한 날개를 퍼덕이며 눈이 벌게라 먹이를 찾는 비둘기를 발견했다.


아아. 불쌍하여라.

내가 또 새라면 환장한다.
남은 도조 과자를 부셔 뿌려줬더니
저 멀리 도이수텝 계단에서 구걸하던 둘기들까지 근방 모든 둘기들이
삽시간에 모여들었다.


살짝 뒷걸음질이 쳐졌다.

그래도 남은 과자를 모두 뿌려대고 도이수텝 계단에 올랐다.


도이수텝은 언제나 좋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만 없다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중국어 덕분에
내가 태국에 있는지 헷갈릴 지경이다.
단체 관광버스를 대절해 무리 지어 올라와
요란스럽게 사진을 찍고 부르고 만지고 돌아다니고
정신이 좀 없다.


남자 친구가 싫어라 한다.


종종걸음으로 내려오니
계단 끝자락에 펼쳐진 기념품 가게에서
중국 아가씨 3명이 열심히 스카프를 흥정하고 있는 게 보였다.

나도 덩달아 끼어 살펴보니
오! 가격도 180이면 저렴하고 스카프 질도 썩 좋아 보인다!

얼마 전부터 남자 친구가 엄마 사다 준다며 스카프를 눈여겨보는 게 기억나
부리나케 남자 친구를 불러댔다.


마음이 이미 도이 뿌이에 가있는 남자 친구가 어기적 어기적 걸어온다.

-이거다! 이게 네가 찾던 바로 그 스카프로다!

포실포실한 원단에 잔잔한 꽃무늬가 도장 찍히듯 쾅쾅 수 놓인 스카프는
하양, 분홍, 하늘색으로 색도 곱디 고왔다.
그게 싫다면 이 코끼리나 부엉이 무늬는 어떠한가
아님 요래 조금 두꺼운 듯 하지만 번떡번떡한 금실이 박힌 것은 어떠한가

한참을 스카프를 들었다 놨다 했는데
남자 친구의 반응이 영 시덥지 않다.


주인은 방금 중국 아가씨들에게 마진을 톡톡히 남겼던지
(그들은 큰손이므로 한 번에 3~5개씩 마구 사간다
치앙마이는 중국인 여행객들이 먹여 살린다....)

내게는 인심 쓰며 30밧 깎아서 150에 해주겠단다.


여봐라!
주인장이 깎아준단다.

아무리 속살대도 뜨뜻 미지근.
주인장은 이것저것 계속 꺼내 대고
이미 빠져나가기엔 민망한 단계에 이르렀음에 나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든다.


좋다!
내 생일선물로 사다오!


인도며 네팔이며 태국에서까지
참으로 많은 스카프를 수도 없이 사 날랐던 내게
오늘 스카프 한 장이 더 추가되었다.

하지만 여타 스카프와 출신성분부터가 다르다.


무려 남자 친구에게서 받은 것이다!

그것도 남자 친구 생일날!


내가 제일 좋아라 하는 연분홍에
포실포실한 꽃가라들이 도장처럼 쾅쾅!

내 인생템으로 간직해야겠다.


남자 친구는 작은 주머니를 두 개
나는 반짝이 코끼리가 수 놓인 주머니를 두 개 더 사들고 도이 뿌이로 향했다.


뿌삥 궁전까지는 길이 반반하니 참 좋은데
궁전을 벗어나기가 무섭게 길 곳곳이 패이고 옆은 낭떠러지라 무시무시했다.
더군다나 바람은 어찌나 매섭게 불어 대는지...
우릉우릉 하늘이 울어대 스산한 숲길을 부지런히 달려
이윽고 도착한 도이 뿌이.
시간은 벌써 4시 40분이 다 되었다.

즉슨 잽싸게 둘러보고 떠나야 한다는 거다.


도이 뿌이는 고산족들이 사는 마을인데
마을의 반절이 기념품 가게이고
곳곳에는 이쁘장한 꽃들이 무리무리 피어있는 정원이 있다.

10밧을 내면 마을의 박물관을 관람할 수도 있다.


우리가 좋아라 하는 곳은 산 정상에 있는 작은 카페로
이곳 핫 초콜릿과 그린티를 마시며

바라보는 구비구비 산들이 정말
좋다.
그냥 좋은 게 아니라

아..... 한두어 시간은 그냥 잡아먹을 정도로
정말 좋은 것이다.


그러나.
올라오는 길 남자 친구 어머님 드릴 가방을 사고
(150이었는데 관광객이 별로 없어 장사가 안되는지 100으로 훌떡 깎아줬다.
길이 험해 이곳엔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별로 없다)
나 또한 이리저리 구경해댄지라 날은 벌써 어둑어둑 해졌다.
거기다 천둥번개까지 장단을 맞춰대고 있었다.


가자!
삼겹살집으로!


후드득후드득 내리는 비와
세차게 불어 대는 바람과
자전거 타는 사람들, 걷는 사람들,
커다란 관광버스, 시커먼 매연의 썽태우들,
마구 질주하는 오토바이들을 헤치고 헤쳐


명동 무까따 삼겹살 뷔페에 도착했다!!


1인당 가격이 165밧이었나..
페트병 물 하나에 30, 아이스 20, 콜라 병 두 개에 30

이렇게 주문하고 내가 시원하게 한 방 쏘기로 했다.
처음 맞이하는 생일이니까.


(내 생일이 8일 후다)


명동 무까따는 한국인 남자와 태국인 여자분께서 열었다는 식당인데
태국인들 사이에 아주 유명한 곳인지 정말 사람이 꽉꽉 차있었다.
여기저기서 고기를 구워대는 연기 때문에 흡사

주지육림 무릉도원 같았다.


나는 뷔페만 가면 앞서 나가는 식탐 때문에 정신줄을 놓고서는
마구 갖다 나른다.
먹다 먹다 정말 목구멍 끝까지 채워도 남은 게 아까워 먹는다.
미련 곰탱이처럼.


남자 친구는 딱. 먹을 만큼만 조금씩 조금씩 야금야금 먹어댄다.


역시나 우리는 천생연분!!


하지만 오늘은 남자 친구의 생일이므로
그가 원하는 대로 나도 답답스럽지만 조금씩 음식을 나르기로 했다.


일단 어디서 본 대로 고기 기름덩이를 하나 팬에 슬슬 바르고 나서
남자 친구가 좋아하는 삼겹살들과 내가 좋아하는 야채
사이드 메뉴로 남자 친구의 후렌치 프라이와 내 양념치킨!


먹고 먹고 또 먹어대는 우리는 참으로 말이 없었다.


그 귀한 새우는 5마리밖에 못 구했는데 버스 타고 오느라 진이 다 빠졌는지
푸석푸석하기만 했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예전에 갔던 님만 근처의 뷔페는 밀가루를 붉게 물들여 만든 가짜 새우를 내놨었는데....
잊을 수 없는 가짜 새우의 추억...


역시 한국인인지라
남들보다 하나라도 더 먹어야지, 어떻게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꼬
특유의 경쟁심리 때문에 끊임없이 두리번 댔다.


그에 비해 남자 친구는 유유자적 필요한 고기를 하나씩 구어대며 앙앙 맛나게 먹었다.


작은 체리가 루비처럼 박힌 조그마한 케이크를 건네고
-생일 축하해. 탄 조비 오모데또!
하트를 날렸더니
그것도 예의 앙앙 먹어 버렸다.


보라색과 하얀색 아이스크림을 끝으로 먹방을 마쳤다.
걷기가 불편할 정도로 먹어댔다.
이렇게 먹어대고도 겨우 413밧!


여기 물가로는 좀 비싸지만 어딜 가서 이렇듯 싱싱한 삼겹살과 야채
양념치킨과 과일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k pop 아이돌의 뮤직 비디오를 대형 티브이로 보면서!


그저 고개 숙여 감사할 뿐이다, 얼굴도 모르는 주인장님께.
그리고 빠릿빠릿한 직원들과 계산기 없이 순식간에 암산으로 결제를 마친 직원에게도.


그렇게 토할 때까지 먹어대고 집으로 돌아와 2시간여를 와이파이에게 놀아난 뒤
운동장 걷기 50분을 힘겹게 끝내고 돌아와

우리가 한 일은 바로바로!


로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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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와로롯에서 급하게 구입한 로또 당첨일이 바로바로 오늘인 것이다!

두근두근 대며 인터넷으로 접속하니
( http://www.glo.or.th/main.php?filename=index___EN )


일단은~ 1등은 물 건너가셨다.

0으로 시작하는데 우린 6 아니면 3이었다.

눈 빠른 남자 친구는 이미 확인이 끝났지만 나는 하나하나 되짚어가며
맞춰봤다.

아무리 맞춰봐도 없다.


타임머신이라도 타야 하나...
아니지.
우리나라 로또와 다르게 그냥 정해진 번호를 사야 하므로
타임머신으로 될 것도 아니다....


80밧 날아갔다.
남자 친구도 80밧. 나도 80밧.
둘이 합쳐 160밧.
1시간 마사지 받을 수 있는 돈이거늘...


허무했다.
남자 친구는 허허허 웃으며 재밌었으니까 되었다 했지만
나는 곱게 복권을 접어 보관하며
미련을 씹어 삼켰다.


아까운 내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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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친구의 머리 마사지로 오늘 하루가 끝났다.


다음 생일에도 함께 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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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친 덕분에 갔던 도이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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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을 들었다 놨다 했던 요물, 태국 정부 복권....

쌍으로 80밧인데 마진을 붙여 100밧에 팔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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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 뷔페 후 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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