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정했어요, 걷기로.
7.20. 수. 브런치
마음 편안히 잘 자고 10시 즈음에야 일어났다.
어제 오토바이 렌트하겠다는 남자 친구를 말려서 오늘은 하루 종일 걷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었다.
몸은 살짝 피곤했지만...
일단은 아침을 먹어야겠다고 길을 나섰다.
평소라면 오토바이 타고 맨날 가던 곳으로 가 먹었겠지만
오늘은 새로운 길로 슬쩍 들어가 봤다.
가정집을 개조해 할머니 할아버지 두 어르신이 재미 삼아 열어놓은 듯한
식당이 보였다.
마침 간판에 팟카파오가 있길래 시켰더니
계란 후라이 하나에 5밧씩 ,팟카파오 한 접시에 30밧으로 가격이 참 이뻤다.
고추 넣지 말아달라는 주문도 찰떡같이 알아들으시고는
하나도 안 넣어서 정말 입에 맞았다.
(태국 고추는 나와 일본 남자 친구에게 너무 맵다.
아무리 고추 넣지 말아달라고 해도 절반 정도는 항상 고추를 넣어준다.
그리고 그날은 둘 다 매운 똥을 싼다. ㅎㅎ)
앞으로 완전 단골 삼아야겠다고 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역시 대학교 근처에 방얻길 잘했다.
한숨 돌리고 어제 실패했던 공공 썽태우를 타러 스테디움 앞으로 갔다.
이번엔 시간을 잘 맞췄다고 했는데 역시나 10분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정류소에 있는 안내도를 눈치껏 요리조리 뜯어봤지만
온통 태국어로 되어있고
인터넷에도 태국어로 되어 있어 도무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더운 날씨에 남자 친구는 슬슬 표정이 바뀌고
그때 마침.
사설 썽태우 아저씨가 딱. 멈춰 섰다.
-우린 공공 썽태우를 기다려요!
내가 번호 2번을 가리키자 아저씨는 크게 엑스자를 그리며
-없어 없어!!
하신다.
속이시는 걸까.
-둘이 합쳐서 40밧!
어차피 공공 썽태우도 둘이 합쳐 30밧이니 그냥 10밧 더 내고 가기로 한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와로롯.
타케루는 칫솔을 사고 나는 누가 인터넷으로 수건 삼아 쓰기 좋다는
소창 기저귀천을 끊으러 왔다.
내가 태국에 가져온 수건은 분홍색인데 예전에 태국 치마랑 함께 세탁하는 바람에
불그죽죽한 무늬가 생기고
아무리 빨아도 빨아도 구렁 내가 난다.
실컷 샤워하고 구렁 내 나는 수건으로 몸을 닦으면 기분이 참...
아무래도 섬유에 구렁 내 입자가 단단히 박혔나 보다.
우리는 일단 15밧짜리 타이티를 흡입한 뒤
타케루의 칫솔을 사고 내 천을 끊었다.
하얗고 보실보실한 천에 파란색 고양이가 귀엽게 박혔다.
과연 수건 노릇을 똑똑히 해줄 터인가.
어제 세븐일레븐에서 딸랑 4조각 들어있던 말린 망고가 참으로 아쉬워
말린 망고도 샀다.
허접스런 망고 열 몇 개 들어있는 게 다들 100밧이 훌쩍 넘는다.
차라리 생망고가 더 싸겠다.
설탕 안 넣은 좀 시큼 달달한 망고는 색깔이 시커매 보기엔 좀 그렇지만
확실히 싸다.
한 봉지에 50밧.
엄청 쫀득쫀득 하다. 캬라멜 처럼.
가는 길 태국 왕을 기리는 왕궁 마크 티셔츠가 보여 고것도 사버렸다.
라지는 150, 스몰과 미디엄은 100이라길래
미디엄은 들어가겠지 하는 마음에 그냥 미디엄..
입어보니 그럭저럭 맞는다.
간단히 쇼핑을 마치고 이제 걸어가는 일만 남았다.
썽태우도 안 타고 걷기로 했는데 매연 뿜어내는 시끄러운 도로가로 걷기 싫어
작은 골목을 산책하듯 걷기로 했다.
과연.
작은 골목은 어찌나 소박하고 정겹던지.
태국 전통가옥도 이쁘고 길에 퍼질러 자는 개도 이쁘고.
한 카페에는 튀긴 아이스크림이 판다길래
요런 거 그냥 못 지나가는 미식가 남자 친구에 이끌러 한번 주문해봤다.
귀여운 그릇에 동그란 도넛 모양의 아이스크림이 나왔는데
준비되는 동안 튀기는 소리가 정말인지 우렁찼다.
30밧.
그냥 아이스크림과 도넛 사다가 먹으면 딱 이맛이겠다.
다시 걷고 걸어 큰 나무를 만났다.
아!
나무 위에 집 짓고 살아도 될 만큼 큰 나무였다.
람뿐 가는 길에도 이렇게 큰 나무가 위로 쭉쭉 시원하게 뻗어 있어
참 좋아라 하는데
이 나무는 옆으로 우산처럼 퍼져 정말인지 멋들어졌다.
평소엔 그냥 지나쳤던 사찰에도 들어가 봤다.
왓 짜이 스리 품.
1519년에 지어졌단다.
거의 500년 되었잖아!
관리를 아주 잘해 모든 게 번쩍번쩍하다.
정원도 새초롬하게 잘 꾸며놨고
본당이며 모든 게 참 정갈하다.
역시 태국인들의 부처님 사랑이란 대단하다!
길가다가 가끔 부처 상을 집 인테리어로 쓰지 말라는 포스터를 만나곤 한다.
태국인에게 부처는 함부로 할 수 없는 귀중한 존재다.
해서 인터넷에 부처 위에 올라가 장난을 치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나 또한 분노를 느낀다.
그곳엔 얼룩무늬 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는데
태국 대부분의 고양이가 그러하듯 겁내지 않고 슬슬 다가와 부비부비 하더니
폴짝 뛰어올라 우리 옆에 자리했다.
(사실 내가 끌어 안아 옆에 뒀다. ㅎㅎ)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다는 집사 경력 19년의 남자 친구와
동물이라면 무조건 손부터 갖다 대는 우리는 한참을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앉아 있었다.
그때.
-고양이 똥구멍에서 뭐가 나와!
응?
설사하는 거란다.
순간 흠칫 손이 자동으로 거둬졌다.
남자 친구는 개의치 않고 고양이를 능숙하게 다루며 데리고 논다.
다시 걸어 중고마켓을 만났다.
중고 옷, 신발, 가방, 인형을 파는데 우리가 옷 수거함에 넣는 옷들이
이곳에 오는 눈치다.
일단 들어서면 오오!! 냄새가 장난 아니다.
쾌쾌한 곰팡내가 코를 찌른다.
이런 중고샵이 치앙마이에도 많고 람뿐(치앙마이 근방 도시)에도 많다.
보면 얼룩 투성이에 막 찢긴 옷조차도 10밧 우리도 330원 정도에도 판다.
걸레로 써도 찝찝할 수준의 옷부터
제법 모양새가 그럴듯한 옷까지.
중국 치파오나 한국 한복, 일본 기모노도 팔고
일본 사랑이 지극한 태국인들을 겨냥한 듯 일본 기모노 인형들도 많이 판다.
이번에 라오스에서 받아온 한 달 비자가 끝나는 대로 뉴질랜드로 가는 남자 친구는
워킹 신발을 찾고
나는 이쁜 드레스를 찾았다.
없다.
쓸만한 옷이 없다.
그냥 옆에서 덤핑으로 우비를 하나에 20밧에 팔길래 친구 오면 주려고 냉큼 사 왔다.
중고마켓을 나와 집으로 가려는데
건너편에 거위 3마리와 오리 한 마리가 뒤뚱뒤뚱 걸어 나오는 게 아닌가!
뭐야, 도로를 건너려는 거야?
도로를 건너봤자 중고 가게뿐인데!
그들은 도로에 괴인 물도 마시고 쌩쌩 신나게 달리는 차와 오토바이도 구경한다.
나는 가지고 있던 빵을 던졌다.
냉큼 받아먹다가 오토바이를 보고 화들짝 놀라 마구 도망간다.
안 되겠다.
건너가서 줘야지 싶어 도로를 건너가자마자
모두들 경기를 일으키며 날개를 푸드덕 마구 도망가 버린다.
주택가 중에는 바로 옆에 생활 오수가 흘러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공기가 안 좋은 곳도 있었다.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살 수 있지?
아주 시커먼 썩은 물이 그대로 흐르고
코를 찌르는 악취 때문에 구토가 올라올 지경이다.
난 돈 줘도 못살겠다 싶다.
오래 살면 적응이 되는 건가 아니면 포기하는 건가.
걷다가 창푸악 벤츠 전시장 뒤에 웬 카페가 있길래 들어가 봤다.
카페 운영에 필요한 모든 것을 팔았다.
원두 볶고 갈고 내리는 기계서부터 계량컵, 원두, 차 티백,
플라스틱 컵과 음료까지.
만약 치앙마이에 와서 커피를 사 가고 싶다면 여기서 사가면 참 좋겠다.
커피를 못 마시는 나는 리치 맛 바질 음료를 사 가지고 나왔는데 20밧에
아주 달달해서 만족스러웠다.
스테디움을 지나 집에 돌아와 계산해보니
12시 40분에 집에 나서서 5시에 돌아왔으니
무려 4시간을 걸어 다녔다.
대단하다, 우리는!
나는 몸에 가득 쌓인 오늘의 먼지를 정신없이 닦아내고
아까 사 온 기저귀 천을 뽀득뽀득 빨아 대는데
남자 친구는 기절한듯 잔다.
혼자라면 결코 걷지 않았을 오늘의 산책.
살 좀 빠졌으려나. ㅎㅎ
이녀석 몸이 낯설지가 않다. ㅎㅎ
그래도 폴짝 오토바이 안장위로 뛰어 오르는 걸 보니 고양이는 고양이다.
프라이드 아이스크림.
맛은.... 30밧이니 한번 먹어볼만은 하다.
벼르고 벼르던 왕궁 티셔츠 드디어 삼.
왕이시여 만수 무강 하시옵소서.
서민을 위한 지도자는 충분히 존경받을 만 하다.
와로롯 100밧.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아름드리 나무! 정말 좋아!!!
하늘을 뒤덮은 가지들.
우리나라에도 이런 나무들이 많으면 참말로 살맛 날듯.
왓 짜이 시리 품 사원의 잘 가꿔진 정원.
스님 한분이 잡초 제거 중이셨다.
태국인들은 말이나 새 고양이등의 동물 조각상으로 집 꾸미기를 좋아한다.
작은 풍선 모양의 등이나 도자기로 만든 모빌도 많이 걸어둔다.
한마디로 내 취양. ㅎㅎ
똥구멍으로 맑은 액체를 흘려 나의 손을 거둔 아이.
4마리의 거대견들과 함께 살고 있다.
좀 더 큰 얼룩 고양이도 한마리 더 있음.
태국 사원은 언제나 새,개,고양이로 넘쳐난다.
길거리도 마찬가지~
어떻게 주택가 바로 옆으로 이런 생활 오수들이 흐른단 말인가.
정말 안타까웠다.
중고마켓 빽빽한 옷들.
남친은 고개부터 절레 절레 흔든다.
한번은 옷공장을 멈춰야 한다고 분노한적도 있다.
사실 세상에는 옷,신발,가방들이 너무 많다.
커피매장에서 구입한 리치맛 바질 음료.
정말 맛도 다양 색깔도 이쁘다.
한국에도 들어 왔는데 뚜껑따기가 너무 힘들다.
바질 씨가 꼭 개구리 알 처럼 생겼다.
근데 섬유질이라 배 채워 준다더니 왜 배고프지?
아.... 이놈의 배는.....
규모가 제법 크다.
창푸악 벤츠 전시장 근처 골목으로 쑥 들어가면 있음.
HILLKOFF.
집집마다 화분을 잔뜩 내놨다.
거리가 온통 푸르다.
오늘 구입한 왕궁 티셔츠,우비,기저귀 천.

우리 남친님 상태.
30분만 자겠다더니 2시간째 쌔근쌔근 중.
나는 팔팔하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