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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 , 태국 도망기 21

남자 친구 없는 두 번째 날.

by Chiang khong

7.16. 토.


아침에 줄넘기를 무려 700개나 했다!


두발을 모아서 뛰면 무릎에 무리가 간다고 해서
뛰듯이 줄넘기를 했더니 덜 아프다.
나이를 생각해야 한다. 나이를...

(일주일 전 서른다섯이 되어버림)


몸이 놀랬는지 허벅지와 종아리 그리고 인생 최대의 숙제
뱃살이 부르부르 떨렸다.
근육이 생기는 건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올라와 샤워를 하니 거대한 허기가 몰려든다.


색깔이 강렬한 드래곤 플루츠 보라색 과일과 플레인 요구르트를 허겁지겁
먹고 나니 정말 할 일이 없다.
남자 친구가 있으면 같이 오토바이 타고 밥 먹고 시내를 누비거나
외곽으로 나갔을 시간인데
이 더운 날 돌아다니기는 싫고...


집에 동그마니 남겨졌다.


상쾌한 기분으로 돌아가고자 드림캐쳐를 만들기 시작했다.
집중해서 손으로 꼼지락 대니 금세 2개가 만들어졌다.
반짝 거리는 것은 언제나 기분을 풀어준다.

내 인생도 이토록 반짝이면 좋으련만...

2개를 만드니 이번엔 눈이 침침하고 허리가 아프다.
어깨도 제법 뭉친다.


역시나 700개는 무리였던가.
일부러 아침 먹기 전에 한 거였건만...
인터넷에선 숫자에 연연 말고 30분은 해야 체지방이 분해된다며
15분에 1000개가 적당하단다.


말도 안 되는 숫자이올시다!
본인은 줄넘기의 신이 아니옵니다.


암튼 시작했다는데 의의를 둔 채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덥다.
벌써부터 살이 노릿노릿 익는 것 같다.
집에서 찬찬히 걸어도 10분 거리인 탄닌에서 샐러드를 마구 주워 담고 나니
늘 그렇듯이 이런저런 먹거리들이 눈에 밟히기 시작한다.

정신을 차려보니 양배추를 넣고 튀긴, 기름에 자글자글 튀긴!!
스프링롤을 허겁지겁 먹고 있었다.


근데 무슨, 소금이 반인가!
짜도 너무 짜다.
요새 야채 위주로 먹어서 그런가 입맛이 조금 변했나.


팟타이 가게로 가 아삭아삭한 배 한팩을 10밧에 사 돌아오는데
날개가 풀썩 꺾인 비둘기 한 마리가 보였다.

회색 앵무새를 좋아하기 시작하면서 모든 새들이 덩달아 이뻐 보이기 시작했다.
비둘기 마저도!

허니비 빵집에서 12밧에 올망졸망 귀여운 오렌지향 머핀을 사서
훅 뿌려줬더니
순식간에 열댓 마리가 몰려들었다.
급하게 두 번째 머핀을 공수해 또 훅 뿌려줬더니
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듯 순식간에 없어졌다.


놀랍다.
펄펄 날뛰는 생명력이 놀랍기 그지없다!


바로 앞에 콘크리트 육교를
한번 건너가 볼까 해서 올라갔더니 기분 탓인가 조금 흔들흔들했다.
나무다리인가!


오늘 아주 큰마음먹고 라자밧 대학 근처 서식 한 달 8일 만에
처음으로 라자밧 대학에 들어가 봤다.
다행히 경비 아저씨도 별말 없고
토요일이라 조금 한갓진 대학을 걸었다.


우리 동네 놀이터에서 흔히 보던 여러 운동기구도 있고
작은 허니비 빵집에 도서관까지.
남자친구가 라오스에서 돌아오는 대로 다시 와봐야겠다.


천천히 걷다가 노란 부리를 가진 까만 새 두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한 마리는 크고 다른 놈은 조막 한데 부리를 벌리고 꽥꽥 대는 걸 보니
새끼인가 보다.

육아에 시달리는 어미새가 불쌍해

옛다 하고 남은 머핀을 후루룩 뿌려주니
이놈의 새끼 새는 계속 입만 벌리고 삐약삐약 거리고
어미새는 부지런히 새끼 입에 머핀을 넣어주는 게 아닌가.


아.
육아는 역시 힘들구나.
한국에서는 밖에서 일해 돈 벌어와
집안일에 시댁일에 육아까지
그 모든 일들을 감당해야 하니 정말 힘들겠구나.

서른다섯이나 된 나는 어쩐지 무리일 것만 같다.
그냥 지금 남자 친구와 쭉 알콩달콩 연애하며 살았으면 좋으련만...


근처 문구점에 들려 12밧에 강력 접착제를 사들고 돌아와
예전에 만든 드림캐쳐에 오색찬란 반짝이들을 부치려는데
이게 잘 안 붙는다.

초강력이라며?

손에만 잔뜩 묻어서 손이 실리콘 장갑 낀 것처럼 미끄덩미끄덩
아주 망해 버렸다.


그렇게 인터넷도 하고 텔레비전도 보며 소일하다가
배가 너무 고파 아까 26밧 한 푸대 사온 야채에 참깨 드레싱 넣고
마구 비벼 순식간에 해치웠다.


야채는 살이 안 찌니까.
참깨 드레싱이 좀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서도..
그래도 야채는.....


남자친구는 라오스 루앙남타에서 허벌 사우나도 가고
국수도 먹었다고 자랑질이다.
하지만 역시나 라오스 비싸단다.
그래. 이상하게 여행자 물가는 비싸단 말이야.


저녁 줄넘기도 힘내서 150개 하고 누워 또 인터넷 질이다.


남자친구 없는 두 번째 날이 이렇게 가고 있다.


돈도 적게 쓰고 아침 9시에 일어나는 기적(요 근래 거의 11시 기상)도 이루고
방귀도 마음껏 뀌고 인터넷 속도도 빠르고 화장실 볼일도 문 열고 싸고


그런데 마음이 너무너무 허전하다.


온지구에 나 홀로 남겨진 것처럼 외롭다.

어서 돌아오소, 남자 친구이여!!!


현재 태국 시각 10시 59분...
지금쯤이면 토요 마켓 한창 보고 편하게 오토바이 타고 돌아와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노닥거릴 시간이건만...

ㅠ.ㅠ.....



7.16. 토-----------------67.3kg

냠냠
-플레인 요구르트, 드래곤 플루츠 보라색
-작은 오렌지향 빵 2개, 캐비지 스프링롤 하나, 배 작은 팩으로 하나
-4:43 참깨 드레싱과 야채 한 봉지
-20시 플레인 요구르트 하나



-야채 26, 스프링롤 10, 파일 15, 배 10, 오렌지 빵 2개 24, 본드 15
100



운동
-아침 줄넘기 700개
-탄닌 걷기
-저녁 줄넘기 150


23.jpg

내가 기다리고 있어요, 남친님아!!!

-사진은 마야 쇼핑몰~ 에어컨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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