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마름
밀리언 피쉬라는 별명답게 구피는 끊임없이 새끼를 낳는다.
임신에서 출산 주기는 채 4주가 안된다.
암컷뒤를 24시간 졸졸 따라다니며 구애의 삐꺽삐꺽 댄스를 선보이던 수컷들은 고노포지움이라는 생식기로 빵야빵야(?) 사랑의 총알을 쏴서 암컷의 알배에 가득찬 알들을 수정 시킨다.
그리고 암컷은 깊은밤 조용히 아기 구피들을 퐁퐁퐁 낳고 호로록 호로록 잡순다.
그 대학살의 순간에서 운좋게 살아 남은 아이들은 수초뒤로 여과기 사이로 숨어들고 구피들의 입에 들어가지 않을만큼 자란뒤에야 목숨을 보장 받는다.
보통 구피수를 늘리고 싶은 사람들은 구피를 부화통에 넣어서 치어(아기구피)를 안전하게 어미와 격리 시키고 수고한 어미 구피에게 먹이를 듬뿍 준다. 그렇게 기력을 회복한 암컷들은 그러나 격리에서 풀려나자 마자 또 사랑의 총알을 쏘고 싶은 수컷들에게 둘러 싸인채 쫒기게 되고 다시 4주가 흐른뒤......
이 과정에서 운나쁜 암컷들에게 배마름이란게 찾아온다.
원래는 늘 불룩해야할 암컷들의 배가 일직선으로 자른듯이 삐쩍 마르는 것이다.
(물론 건강상태가 안좋은 수컷들에게도 찾아온다)
특별한 치료법이 없고 먹이를 많이 주는 방법밖에는 없다는데 나는 이 배마름으로 암컷 몇마리를 잃었다.
배마름이 오면 먹이를 잘 못먹는다.
기운도 없어서 어항의 위 아래를 오르락 내리락 하다가 끝내는 구석에서 꼼짝도 안한다.
지금 내 어항에도 3마리의 암컷이 출산을 앞두고 있지만 얼마전에 출산한 암컷 한마리는 배가 바싹 마른채 기운없이 헤엄치고 있다.
한번은 기적적으로 배마름이 나은 적도 있다.
바로 다른 암컷이 낳은 치어들을 호로록 호로록 밤새 잡수시고 기력을 회복한 것이다.
치어들은 오렌지색 난황이 포도알처럼 탐스럽게 달려 있어 고단백의(?) 영양가 있는 몸이다.
그 아이들을 거의 모두 먹고 나서 다시 배가 통통해졌던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암컷은 죽는다.
다음날 안시,애플스네일,뾰족달팽이,새우에 의해 먹히고 뼈만 남은채 발견된 암컷들을 뜰채로 건질때면 나는 잠시 이상한 기분이 든다.
무엇을 위해 이리도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려고 애쓰는 것일까 하고.
내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기를 포기한 나로써는 이 작은 물고기들의 용기와 본능이 무모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한편으론 부럽게도 느껴진다.
잘생긴 우리 안시 쭙쭙이. 어젯밤 추워진 날씨때문에 뾰족달팽이들과 합사를 시키자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그리고 수초에 몰래 숨어 있던 새우 한마리를 발견해 새우는 본래대로 2마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