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두 살, 세상이 멈추던 날
21살까지는 그저 외향적이고 기분파인 학생
나는 평범했다.
그저 사람들 앞에 서는 걸 좋아하고, 감정이 풍부한, 외향적인 학생이었다.
그땐 ‘평범하게 산다’는 말이 얼마나 어렵고 소중한 의미인지 몰랐다.
공부를 아주 잘하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는 잘했고 서울의 한 대학에 입학했다.
SKY는 아니었지만, 부모님은 나를 자랑스러워하셨다.
공대 1학년 시절, 긴 생머리에 하얀 피부였던 나는 나름 인기가 있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웃으며 봐주시길 바란다.)
복도를 지나가기만 해도 “점심 먹었어? 내가 사줄게.” 하는 말들이 이어졌고,
그 덕분에 한 학기 내내 점심 약속이 끊이지 않았다.
전공보다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더 즐거웠다.
댄스부, 여행동아리, 농구소모임까지 세 개의 동아리를 동시에 하며
‘청춘’이라는 단어 그대로를 살아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이 내 인생의 리즈였다.
2학년 1학기 – 학점도, 연애도 물거품
1학년은 그럭저럭 버텼다.
하지만 2학년이 되자, 전공 수업은 마치 외계어 같았다.
‘4대 역학’이라 불리는 기계공학의 핵심 과목들 앞에서 나는 완전히 무너졌다.
그런데도 여전히 놀았고, 연애도 했다.
결국 학점은 2점대, 남자친구는 군입대.
그렇게 2학년 1학기는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끝났다.
2학년 2학기 – “이젠 뭐라도 해야 해”
나는 다시 일어서야 했다.
무너진 학점을 올리고 싶었고, 승무원이 되겠다는 꿈도 있었다.
그래서 새벽 첫차를 타고 인천에서 종로까지 영어학원을 다녔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수영장으로 달려갔다.
그 시절의 나는 ‘바쁘면 괜찮아질 거야’라고 믿었다.
잠을 줄이고, 아침은 에스프레소 한 잔으로 때웠다.
점심은 김밥 한 줄, 저녁은 건너뛰기 일쑤였다.
그렇게 몸과 마음은 조금씩 무너져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이미 조울증의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긴 우울의 터널
군대에 간 남자친구를 기다리며 매일 울었다.
휴가 때까지 100일을 기다려야 한다는 게 견딜 수 없었다.
성시경의 〈거리에서〉를 들으며 스스로를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만들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을 사랑했다기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나 자신’을 사랑했던 것 같다.
그 시절의 나는 슬픔 속에 빠져드는 걸 낭만이라 착각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가 조울증의 첫 시작이었다.
1주일의 과몰입, 그리고 도파민의 폭주
그 우울이 끝나자, 갑자기 세상이 환해졌다.
잠도 안 자고, 밥도 안 먹은 채 며칠 밤을 새워
‘쇼핑몰 사업’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건 현실적 사업 아이디어라기보다 조증의 전형적인 증상이었다.
나는 단 1주일 만에 ‘대한민국을 대표할 패션기업’을 만들 계획을 세웠고,
회사 이름까지 정했다. “The K.”
도파민이 폭발하듯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했다.
말은 빨라지고, 생각은 쉴 새 없이 튀었다.
모든 게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투르먼 쇼의 주인공이었다
어느 순간, 내가 짐 캐리의 〈투르먼 쇼〉 주인공처럼 느껴졌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방송하고 있다는 망상이 시작됐다.
아파트 방송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나를 겨냥한 것 같았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나를 몰래카메라로 지켜보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엄마는 놀라며 “제발 집에서 나가지 말라”라고 했다.
그리고 곧 나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곳이 ‘국가 연구소’라 믿었다.
‘특별한 사람들만 보호받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정신건강의학과 폐쇄병동이었다.
그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멀쩡히 살던 내가 정신병자라니,
나를 가장 사랑하는 엄마가 나를 입원시키다니.
정신이 서서히 돌아오면서 깨달았다.
그곳은 천재들의 연구소가 아니라,
조울증 환자들이 회복을 배우는 병원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의 긴 싸움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