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을 지나 빛으로 이끄는 길
하느님은 우리가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시련을 주신다.
그리고 그 시련을 끝까지 견뎌낸 사람에게는
더 큰 행복을 선물하신다고 믿는다.
조울증을 겪으며 나는 신앙을 얻었다.
그리고 감사와 겸손이라는 두 가지 마음도 배웠다.
이 병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내 능력과 외모에 취해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오만하고, 세상밖을 모르는 사람으로.
하지만 병원에 입원하면
나는 한없이 작아지고 초라해진다.
그 순간에 의지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느님뿐이었다.
새벽마다 병원 창문 너머로 떠오르는 햇살을 보며
그분의 현존을 느꼈다.
이 병은 나를 벌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나를 보호하고, 나를 겸손하게 하기 위한 길이었다.
처음 발병은 스물두 살 때였다.
리튬 부작용으로 갑상선 기능이 떨어져
몸무게가 16kg이 늘었다.
그때는 절망이었지만, 지금은 안다.
그 시절의 변화가 나를 다른 길로 인도했다는 걸.
그때 몸이 망가지지 않았다면,
나는 외모에만 집착하며
더 큰 교만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하느님은 나를 지켜보며
“겸손히 살아라”라고 말씀하신 것 같다.
나는 오랜 시간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나에게 이 병이 찾아왔을까?”
이제는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죄책감.
나는 천주교 모태신앙으로 자랐다.
‘혼전순결’이 교리에는 없지만
내게는 당연한 규칙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첫사랑과의 관계는 내게 큰 죄로 남았다.
그 죄책감이 마음 깊숙이 쌓여
불안과 우울을 키웠던 것 같다.
두 번째는 애정결핍.
나는 유복하게 자랐지만,
어머니는 내가 백일 때부터 한복집을 운영하셨다.
늘 바느질을 하시던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자랐다.
나는 혼자 놀기를 잘했고,
이야기를 해도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게 내 안의 작은 결핍이었다.
세 번째는 유전적 요인.
아버지 역시 조울증 약을 드셨다.
입원은 없으셨지만,
잠을 거의 안 주무시고
감정 기복이 심하셨다.
그런 모습을 보며 자란 나는
언제나 불안정한 리듬을 몸에 새긴 채 컸던 것 같다.
조울증은 내 인생의 낙인이 아니라,
내가 사람으로 성장하게 한 도구였다.
입원과 약물, 불안과 고통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내 삶을 사랑한다.
그리고 믿는다.
하느님이 내게 주신 이 병은
나를 무너뜨리기 위함이 아니라,
나를 빛으로 이끌기 위한 과정이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병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조울증은 나의 일부이고,
그 덕분에 나는 겸손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이 짧은 글이
나와 같은 조울증 환우들,
그리고 그 가족들에게 전하고 싶다.
우리도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다.
조울증이 있어도,
하느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