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조울증이 나에게 주는 의미

시련을 지나 빛으로 이끄는 길

by 손송민


하느님은 우리가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시련을 주신다.


그리고 그 시련을 끝까지 견뎌낸 사람에게는


더 큰 행복을 선물하신다고 믿는다.


조울증을 겪으며 나는 신앙을 얻었다.


그리고 감사와 겸손이라는 두 가지 마음도 배웠다.


이 병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내 능력과 외모에 취해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오만하고, 세상밖을 모르는 사람으로.


하지만 병원에 입원하면


나는 한없이 작아지고 초라해진다.


그 순간에 의지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느님뿐이었다.


새벽마다 병원 창문 너머로 떠오르는 햇살을 보며


그분의 현존을 느꼈다.


이 병은 나를 벌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나를 보호하고, 나를 겸손하게 하기 위한 길이었다.









처음 발병은 스물두 살 때였다.


리튬 부작용으로 갑상선 기능이 떨어져


몸무게가 16kg이 늘었다.


그때는 절망이었지만, 지금은 안다.


그 시절의 변화가 나를 다른 길로 인도했다는 걸.


그때 몸이 망가지지 않았다면,


나는 외모에만 집착하며


더 큰 교만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하느님은 나를 지켜보며


“겸손히 살아라”라고 말씀하신 것 같다.









나는 오랜 시간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나에게 이 병이 찾아왔을까?”


이제는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죄책감.


나는 천주교 모태신앙으로 자랐다.


‘혼전순결’이 교리에는 없지만


내게는 당연한 규칙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첫사랑과의 관계는 내게 큰 죄로 남았다.


그 죄책감이 마음 깊숙이 쌓여


불안과 우울을 키웠던 것 같다.


두 번째는 애정결핍.


나는 유복하게 자랐지만,


어머니는 내가 백일 때부터 한복집을 운영하셨다.


늘 바느질을 하시던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자랐다.


나는 혼자 놀기를 잘했고,


이야기를 해도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게 내 안의 작은 결핍이었다.


세 번째는 유전적 요인.


아버지 역시 조울증 약을 드셨다.


입원은 없으셨지만,


잠을 거의 안 주무시고


감정 기복이 심하셨다.


그런 모습을 보며 자란 나는


언제나 불안정한 리듬을 몸에 새긴 채 컸던 것 같다.









조울증은 내 인생의 낙인이 아니라,


내가 사람으로 성장하게 한 도구였다.


입원과 약물, 불안과 고통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내 삶을 사랑한다.


그리고 믿는다.


하느님이 내게 주신 이 병은


나를 무너뜨리기 위함이 아니라,


나를 빛으로 이끌기 위한 과정이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병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조울증은 나의 일부이고,


그 덕분에 나는 겸손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이 짧은 글이


나와 같은 조울증 환우들,


그리고 그 가족들에게 전하고 싶다.


우리도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다.


조울증이 있어도,


하느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신다.








이전 10화10장 엄마 인생에 더 이상 입원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