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 : 어느 날 3n 신입이 후임으로 들어온 건에 대하여
pro.
직장 내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고 아는가. 어딜 가나 같이 일 하는 사람들 중 또라이는 있기 마련이라 우리는 삶에서 그들을 피해 갈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방법은 두 가지. 끝까지 버티던가, 둘 중 하나가 나가던가.
때는 작년 여름
"안녕하세요. 이무기입니다."
모두의 정적 속에서
"병원 일은 처음이고 나이는 3n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띠동갑이 넘는 후임이 들어왔다.
1. 어느 날 3n 신입이 후임으로 들어온 건에 대하여
병원에서 일을 하다 보면 주기적으로 사람들이 예민해지는 시기가 오는데 그것이 바로 병원인증평가 시즌이다. 작년에는 그 인증평가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주 위태로운 시기였다.
본인증을 대략 8~9개월 정도 남겨두고 슬슬 인증 준비를 시작하려 하는데 정말 제로에 가까운 완성도에 한숨만 나왔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려 푹푹 쉬던 나날. 그 어느 날이었다.
여김 없이 아침 회의를 하던 도중 원무부장님이 기획본부장으로 승진하게 되었다는 말을 꺼내셨다.
오 축하드립니다. 근데 그럼 저희는요? 다급하게 과장님을 쳐다봤는데 과장님도 모르던 눈치였는지 같이 벙쪄있었다. 과장님이 그러시면 저희는... 충격적인 발언을 이어서 다음 주부터 새로운 원무부장이 오기로 했다며 원무부장님, 아니 기획본부장님은 타들어가는 속도 모르고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시더라.
갑자기 새로운 상사를 맞이하게 생긴 직원들. 일단 자리부터 만들라고 하셔서 부랴부랴 컴퓨터 설치하고 테이블 구매하고 내선 바꾸고 난리가 났는데 이게 몇 시간 만에 벌어진 일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사실 이건 시트콤이고 촬영 중인 게 아닐까? 트루먼쇼에 이은 쏭나쑈? 드라마도 이렇게 급전개 하면 욕먹어요.
그리고 등장한 new 원무부장. 올빽머리와 쫙 빼 입은 정장과 구두. 입사 4개월 만에 3명의 퇴사자를 만들어낸 모든 일의 원흉 되시겠다.
맨 처음 퇴사자는 송주임. 불같은 성격에 원무부장이랑 대판 싸우고 입사 3개월 만에 퇴사.
두 번째 타자는 안쌤. 데스크 직원으로 같이 1년 반을 근무했다. 여린 성격에 못 버티고 퇴사.
사람은 탓하지 말고 상황을 탓하자고 굳게 마음을 먹었건만 자꾸 사람을 탓하고 싶어졌다. 부장이 해야 할 일을 과장이 하고, 과장이 해야 할 일을 사회복지사가 하고 자꾸만 꼬여버리는 업무의 순환 속에 진절머리가 나서 7월에 퇴사를 하겠다 결심을 했다. 퇴사를 결심하고 과장님께 미리 말씀드렸는데 이상하게 얼굴이 새하애지 더니 조용히 나를 끌고 가시는 게 아닌가.
"쌤. 지금 힘들 수는 있는데 요양병원에서 인증경력 무시 못해. 여태까지 버틴 게 아깝지 않아?"
치사하게 경력을 무기로 삼았다. 미래를 생각해서 한번 꾹 참기로 하고 더 다니기로 했는데. 근데요. 바로 다음날에 과장님이 2주 뒤에 퇴사하신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런 시부랄. 이때 이후로 저는 사람을 믿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게 과장님이 마지막 타자로 떠나가게 되고 안쌤자리에 새로운 신입이 들어왔다. 아직도 과장자리가 공석인 와중에 신규샘 뒤처리에 과장님 일을 사회복지사님이랑 나랑 나눠서 처리한다고 매일 같이 야근을 하던 시점.
갑자기 회식을 하자고 하더니 사회복지사님이랑 저를 원무대리, 원무주임으로 승진시키고 제 자리에 데스크 직원을 더 뽑겠다는 거예요? 이게 말이야 방귀야 설사야. 설사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원무과장을 뽑는 것보다 데스크 신규를 뽑아서 굴리는 게 낫다고 판단한 듯싶다. 윗분들이란...
아무튼 승진은 좋지만, 허울뿐인 직책이었다. 그 뒤로 정말 개같이 일만 했거든. 아무튼 그 얘기는 뒤로하고
데스크 자리에 남자직원을 뽑아서 시설과 같이 돌리겠다는 큰 그림을 부장님은 세우게 되는데.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데스크 남자직원이라 함은 보통 젊고 잘생긴 사람을 기대하기 마련인데(물론 제가 기대함), 시설+사회복지사+남자+데스크로 구인공고를 내니 정말 40-50대 어르신들이 대거 지원을 하셨다. 면접 오는 사람들 보고 이제는 원무대리가 된 사회복지사님이랑 전우애를 다지며 개같이 일을 하던 도중이었다.
면접을 보러 왔다는 30대 후반의 남성이 부장님과 담타를 가지더니 대뜸 다음 주부터 출근하기로 했다는 것이 아닌가. 인생은 학연, 지연, 흡연이라고 했는데 그 사람은 지연, 흡연이 겹쳤다.
내 직속 후배가 띠동갑이 넘다니. 이건 거짓말일 거야. 꿈이야.
그렇게 내 지옥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