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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나 Dec 10. 2024

어린 사수와 중고 신입 EP 2

EP 2 : 연륜은 무시를 못한다.

2. 연륜은 무시를 못한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나는 젊은 꼰대임을 인정한다.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고 꽤 순수했던 낭만의 시절도 있었다. 그건 차차 이야기하기로 하고. 그때의 나는 아직 사회의 때가 덜 묻었었기 때문에 후임이 들어온다는(띠동갑 넘긴 하지만) 설렘과 부담감에 정신을 못 차린 상태였다.


후임이 생기면 잘해줘야지 늘 생각했다. 입사했더니 사수가 없어 인수인계서만 너덜거려서 찢어질 때까지 봤던 그 기억을 되풀이하게끔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으로 인수인계서를 20p나 만들고 정말 잘해줘야지 생각을 했는데요.


입사한 지 며칠이 지나도록 멀뚱멀뚱 앉아서 휴대폰만 하는 이무기 씨의 모습에 젊은 꼰대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어요.


입사 첫날? 그럴 수 있어. 둘째 날? 그럴 수 있어. 적어도 셋째 날 정도면 인수인계서를 정독하던지 배우려는 열정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잡일 좀 하고 그러는 거 아닌가? (꼰) 분명 경력상 막내인데 나이가 많다 보니 다들 함부로 못 대하는 분위기였다. 이무기씨는 부장 다음으로 나이가 많았고, 나는 조직에서 제일 어렸다.


깨끗한 인수인계서에 머리가 지끈. 점점 하는 짓들이 미워 보이기 시작했다. 말도 없이 있다가 부장님 계실 때만 찾아오고, 담타는 꼬박꼬박 나가고. 점심도 교대로 먹는데 혼자 시간을 다 쓰고. 사회생활을 잘하는 거라고 표현을 하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죽을 지경. 분명 사람이 늘어났는데 +효과가 아니라 -효과인 것처럼 느껴졌다.


내 업무를 넘기고 다 죽어가는 대리님을 도와야 하는데, 정작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은 의욕도 열정도 없어 보이니 난감했다. 결국 떠넘기지 못하고 기존 업무+데스크 관리+인사업무+부장님 짬처리+대리님 도움으로 과로하게 되는데... 이러다가 정말 쓰러지겠다 생각이 들었다.


나부터 좀 살아야지. 일손이 없어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정말 기본인 접수/수납부터 알려주기로 했다. 이무기씨의 멍한 동태눈을 바라보며 나는 자 이게 클릭이라는 거야~ 입이 바싹 말라가도록 속성 강의를 했고, 그래도 잘 풀리고 있다고 생각하며 잠들었던 그다음 날.


 부장 놈은 이무기씨와 같이 담배를 태우고 오더니 나를 불렀다.


"(이)무기가 일에 적응하기 너무 힘들대. 쏭주임이 좀 잘해줘."


이런 시발.


부장놈의 나불거리는 주둥이를 쥐어뜯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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