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그래?
"어린 건 알겠는데 그래도 공과 사는 구분을 해야지. 네 사생활이 어떻든 나는 관심이 없어. 일만 잘 돌아가면 돼. 근데 지장이 생기잖아. 개인적인 걸 왜 직장까지 끌고 와서 피해를 주니."
휴게실에 나를 끌고 와서는 말을 꺼내는 고연차 선생님. 그 한심하다는 눈빛을 피해서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나를 욱여넣고 싶었는데, 그저 사방이 꽉 막힌 사각형이더라. 그대로 마주할 수밖에 없어서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공과사를 구분 못한다며 혼나던 그 순간에도 애석하게 눈물이 찼다. 뭘 잘했다고 눈물은 또 나는 건지.
"정신 못 차리는 것 같길래 내가 총대매고 말한 거고. 말투가 이래서 이렇지 널 싫어하는 건 아니니까 오해하지는 말고 힘내."
내 어깨를 두어 번 다독여주고는 먼저 떠나버린 선생님을 뒤로하고 나는 내 속의 감정들을 달랬다.
쪽팔림, 미안함, 슬픔, 괴로움 기타 등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눈물에 쏟아내고, 멍하니 거울 속 나를 봤다.
충혈되고 퉁퉁 부은 두 눈, 그 밑의 다크서클, 갈라진 입술, 우울해 보이는 얼굴.
너 진짜 왜 그래?
정말 어려서 그래?
요 며칠 일 하는 내 모습은 정말 나사라도 빠진 사람처럼 삐걱거렸지. 멍 때리다가 몰래 울고, 계속 실수하고, 한숨만 푹푹 쉬고 웃지도 않고.
충고를 들은 이후에서야 나를 제삼자처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사회생활도 일찍 시작하고 또래보다는 성숙한 편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그냥 멀리서 보니 감정조절 못 하고 있는 대로 표 내고 승내는 애새끼 하나가 있지 않은가.
병원일을 하면서 감정조절에 대한 조언을 정말 많이 들었다. 결론적으로는 겪다 보면 결국에 체념하게 된다-로 끝나더라.
화를 내고 운다고 뭐 하나 달라지는 거 없고, 표현한다고 당장 내 일이 없어지지 않고. 감정에 휘둘리면 본인만 힘들다며 나이가 들면 다 그렇게 변한다고.
사실 아직까지도 힘들면 토로하고 위로받고 싶고,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슬프면 그냥 그 자리에서 울고 싶은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있다.
인간적인 게 뭐가 나쁘냐며 살았지만, 내가 다치지 않기 위해서는 공적인 나와 사적인 나는 분리해야 한다.
일터에서의 일은 일터에 두고 오고, 마찬가지로 사적인 일은 일터로 끌고 오지 않는다.
새로 생긴 삶의 규칙이다. 충고 속에서 사람은 성장한다.
충고는 애정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나를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들의 쓴소리의 기반에는 사랑이 있다.
좋은 말만 해주는 관계는 생각보다 이롭지 않고 그 달콤한 말속에는 성장도 없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