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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청춘회상

그냥 주절주절

by 쏭나

난데없는 글태기를 겪고 있다. 내 글을 어디에다가 두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아 이리저리 두었다가 구석에 두었다. 나의 창작물들은 나만 바라보고 있는데 주인인 내가 방향을 못 잡으니 애석게 방치되어 있다.


시작하는 것도 어려워 몇 줄을 썼다 지웠다 되돌렸다한다. 예전에는 어떤 글을 썼더라- 도움이라도 될까 싶어 오랜만에 예전에 쓰던 노트앱에 들어갔다.


2016년부터 2017년까지의 빛나고 찬란했던 기록. 별거 없는 한 줄 문장부터, 만약 이러면 재미있겠다-라고 써둔 소재들, 다른 플랫폼에서 썼던 단편소설들과 끝내지 못한 장편들 등등 그 속에 글 하나하나에 애정을 담던 내가 있었다. 새벽에 영감이 생긴다며 꼭 어둑어둑한 시간에 타이핑을 해서 부모님 단잠을 깨웠었던 시절의 나. 과거를 그리워하며 글을 읽었고 쓸만한 것들을 옮겼다.


열정이 있는 사람들은 참 뜨겁게 반짝인다. 그러므로 한 달 전만 해도 나는 빛났다. 근데 그럼 열정이 다 타버려서 재가된 사람은 어떡하지. 그대로 바람에 흩날리고 형체를 잃어가는 걸까. 결과가 뻔함에도 재를 또 태우는 걸까.


무언가를 놓게 되는 것에는 확실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좋아서 시작했던 일을 그만둘 리 없으니까.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냥 어느 순간 싫증이 났으면서- 사실은 어떤 사건도 사고도 없었으면서 정당화할 핑곗거리를 찾고 찾다가 발견한 작은 것들을 앞으로 내세운 것에 불과하다. 그것이 보통의 우리. 대부분의 나.


나는 글을 왜 좋아했더라. 읽는 건 어릴 때부터 좋아했는데 글을 쓰기 된 계기는 아이돌 덕질이었다. 한 때 빙의글이라는 아이돌을 대상으로 글로 쓰는 유사연애가 붐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점점 파이가 커지면서 나중에는 작품을 써놓고 여주, 남주 이름만 빌려 쓰는 사람들까지 생겼는데 대부분이 순정 로맨스였다. 내가 원하는 캐릭터와 스토리가 없어서 블로그에 자급자족을 하다가 독자가 생기고 동료가 생기면서 글 쓰기에 재미를 느꼈더라.


옛 기록들을 보면서 다시 소설이 쓰고 싶어 졌다. 문학적인 문장 구조 이런 건 다 모르겠고 그냥 입체적인 캐릭터가 살아 숨 쉬는 내 취향의 글.


이 작은 움직임들이 내 도피처가 되었으면 좋겠다.

삽질이어도 좋으니까 조금만 도망 갈 구멍을 내어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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