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수>,<아이 엠 어 히어로>로 본 일본 만화 원작 영화 신화(神化)
※ 만화 기생수, 아이 엠 어 히어로, 영화 <기생수 파트1>, <기생수 파트2>, <아이 엠 어 히어로>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근 들어서 일본 본토는 물론 중국, 그리고 국내에서까지 폭발적인 흥행에 성공했던 <너의 이름은>을 계기로 일본 애니메이션은 수면 위로 올라와 대중들이 쉽사리 받아들일 수 있는 하나의 기호로 완벽하게 자리 잡았다. <너의 이름은>이 300만을 돌파한 시점부터 일본 애니메이션은 이제 ‘오덕’들만 즐길 수 있는 전유물이 아닌 것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좋아하는 지브리부터 일본 애니메이션이 대중문화 속에 서서히 스며들어 왔다면, 일본 만화를 토대로 한 일본 영화들은 우리나라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까.
솔직히 이야기한다면,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들은 국내에서 찬밥 신세나 다름없었다. <간츠>, <20세기 소년> 등 일본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쟁쟁한 작품들은 대부분 일본 내서 영화화되었지만 만화의 상상력을 제대로 구현해내지 못했다는 혹평을 들으며 우리나라 개봉 당시에도 관객들로부터 외면을 당했다.(<20세기 소년>의 경우 1편은 18만 관객을 동원했지만 이후 개봉한 시리즈들의 성적은 정말 좋지 않았다.) 이런 과거의 좋지 못한 기억들은 이와 유사한 영화들이 개봉하려는 움직임만 보이면 모두 기대감보다는 우려를 먼저 내보이게 만들었다. 최근 들어서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 관객들의 기대(?)를 배신하는 놀라운 결과물을 보이고 있다. 그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한 작품은 바로 <기생수> 시리즈와 <아이 엠 어 히어로>이다. 국내에서 1년이란 시간 차이를 두고 개봉한 두 영화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만화책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뿌리를 같이 하고 있다. 특히 여러 만화 원작 영화들 중에서도 이 두 영화를 꼽은 이유는 적게는 4점대에서 많게는 6점대까지를 기록하고 있는 살벌하고 잔혹한 네이버 영화 평점의 세계에서 무려 7점대 후반을 기록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대중들로부터 나름의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먼저 <기생수> 시리즈는 이와아키 히토시의 ‘기생수’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영화이다. 방대한 원작을 한편에 담기에는 무리였기에 <기생수 파트1>, <기생수 파트2> 두 편으로 나뉘어 개봉했다. 사실 ‘기생수’ 시리즈 자체는 영화화하기에 엄청나게 까다롭고 어려운 작품 중 하나다. ‘간츠’나 ‘베르세르크’처럼 방대한 상상력과 잔인하고 섬뜩한 장면들 , 여기에 심도 깊고 철학적인 메시지까지 갖춘 만화는 할리우드에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탐을 내고, (결국 제임스 카메론은 <총몽> 제작으로 참여하며 그 한을 풀은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박찬욱 감독, 김지운 감독까지 영화화하고 싶은 만화 원작 1순위로 꼽은 작품이니 그만큼 매혹적이면서도 위험도가 높은 작품이었다. 이처럼 매력적이면서도 까다로운 ‘기생수’가 할리우드가 아닌 일본에서 영화화된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소식을 듣는 순간 코웃음 치기 바빴을 것이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기생수> 시리즈는 놀라운 성과를 이룩해냈다. <기생수 파트1>는 일본 내에서 박스오피스 1위 점령은 물론 18만 관객을 기록하였다. 수많은 이들이 걱정해 마지않았던 ‘기생수’들의 모습을 스크린 속에서 유려하게 재현되었고, 미기(오른쪽이)와 신이치 간의 유대감을 통해 인간 존재를 탐구해나가는 원작의 메시지도 훼손되지 않고 나름 진중하게 담아냈기에 이룰 수 있었던 결과물이었다.
하나자와 겐코의 동명 원작 만화를 영화화한 <아이 엠 어 히어로>는 사실 1권의 지루함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본격적인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만화이다. 할리우드에서 이미 너무나 흔해져 버린 ‘좀비’라는 공포영화 특유의 장치를 가져왔지만, 좀비를 완벽하게 일본 사회 속으로 녹여낸 작품이다. <아이 엠 어 히어로>는 영웅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한 만화가가 모든 이들이 좀비로 변하기 시작하는 일본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스토리인데, 사실 기승전결의 법칙을 따르지 않고 어떤 이야기가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것이 이 만화가 가진 최대의 매력이지만 이런 설정을 그대로 녹여내지 못하는 대신 영화는 좀비 영화의 장르적인 특성을 적절하게 섞어 넣는다. 언제 어디서 좀비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숨 막히는 공포감은 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등장하는 좀비 떼와 속도감 넘치는 전개로 인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히데오가 택시를 타고 급하게 도쿄를 빠져나가기 전 몰려드는 좀비들의 모습과 문명의 흔적을 찾을 수 없이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도쿄의 모습은 마치 <월드워Z>에서 압도적인 물량 공세를 보이던 좀비들을 보는 것 같은 충격을 선사한다. 오직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인간들의 군상에 대한 소름 끼치는 묘사는 영화 속에서 살짝 무뎌졌지만, <아이 엠 어 히어로>는 매끈하게 잘빠진 장르 영화의 외향을 갖추는 데 성공했다.
언뜻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내용을 읽었을 때, “그래서 두 영화가 다른 영화들과의 차이점이 무엇인데?”라고 생각할 것이다. 가장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이야기의 선택과 집중', 그리고 '수준 높은 CG'이다. 먼저 두 영화의 스토리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이 두 영화는 원작을 영화화하는 모든 영화들이 안고 갈 수밖에 없는 방대한 스토리 문제에서 뺄 부분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필요한 부분만을 취하는 전략을 선택한다. 소설, 만화를 불문하고 모든 원작들은 영상화하기 매력적인 상상력을 갖고 있지만 그만큼 비례하는 방대한 스토리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원작을 영화화하기로 결심했을 때, 창작자들은 두 가지의 갈림길에 놓이는데 하나는 원작의 스토리를 최대한 다 살리는 것이고 하나는 원작의 스토리 중 중요한 부분들만 살리는 것이다. 어떤 것이 더 좋은 선택이냐의 문제는 각 작품마다 다를지라도, <기생수> 시리즈와 <아이 엠 어 히어로>는 모두 스토리의 포인트만 살리자는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은 곧 두 영화의 장점이 되었다.
<기생수> 시리즈는 만화 원작에서 중요한 캐릭터인 카나와 우다 마모루를 과감하게 삭제하고, 미기와 신이치의 관계 즉 기생수와 인간의 관계에 좀 더 초점을 맞췄다. 덕분에 미기와 신이치가 서로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과 인간에게 호기심을 갖고 있는 료코와 신이치의 관계에 집중하여 기생수와 인간 사이에서 방황하는 신이치의 고뇌를 관객들이 유치하다고 느끼지 않고 충분히 수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아이 엠 어 히어로>에서는 주인공 히데오 캐릭터를 설명하는 초반 1권을 거의 통으로 압축하였고, 극한의 상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그리는데 집중했다. 나와 다른 종류의 인간이 아닌 나와 비슷한 평범한 인간이 최악의 상황 속에서 생존하려는 모습은 관객들이 어렵지 않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캐릭터로 다가왔다. 이러한 두 영화의 선택은 원작을 이미 알고 있는 원작 팬들에게도 납득할 만한 설득력을 갖추게 되었으며, 영화를 통해 이를 새롭게 접하는 관객들까지 충분히 매료시켰다.
스토리라는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도 일본 만화 원작 영화들에게는 아직 또 다른 산이 남아있다. 바로 상상력을 스크린으로 옮겨올 수 있는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다. 기존의 만화 원작 영화들이 욕(?)을 먹었던 수만 가지 이유 중에서는 CG문제도 있었다. 펜과 종이만 있으면 만화 속에서 얼마든지 구현될 수 있었던 풍부한 상상력들이 실사 영화 스크린으로 넘어오는 순간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게 되는 이유는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CG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일본 만화 원작 영화에서 CG가 나오는 순간 사람들은 이것이 영화라는 사실을 잃어버리고 실소를 머금을 때가 많았는데, <기생수> 시리즈와 <아이 엠 어 히어로> CG는 수준 높은 퀄리티를 선보이며 영화 속에 괴리감 없이 녹아든다.
<기생수> 시리즈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인 미기는 소메타니 쇼타가 연기한 신이치와 함께 완벽한 한 몸이 되어 영화 속에서 살아 움직였고, 폭발적인 스피드로 인간들을 위협하는 좀비들의 모습은 <아이 엠 어 히어로>에서 하나의 완벽한 미장센이 되었다. <기생수> 시리즈를 대표하는 잔혹한 비주얼 특히 맨 처음 영화 오프닝에서 기생수에 감염된 남성이 여성의 머리를 통째로 먹는 장면은 정말 말 그대로 만화를 찢고 나온 듯이 재현되었고, 미기와 다른 기생수들 간의 목숨을 건 격투씬들도 위화감 없이 영화 속에서 살아 움직였다. (원작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시청의 대학살 장면이 재현되지 않은 아쉬움은 어쩔 수 없지만)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아이 엠 어 히어로>에서 좀비에게 감염된 뒤 혼란스러운 도쿄의 모습을 담아낸 초반 시퀀스는 마치 내가 히데오가 되어 아비규환 살육 현장 속에 있는 것 같은 리얼함을 선사한다. 또한 좀비만큼 잔악한 인간들의 본성을 그린 쇼핑몰에서 시선을 사로잡은 일명 높이뛰기 좀비는 만화 속에서보다 생동감 넘치는 모습으로 등장인물들과 관객들 모두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만화라는 나와 분리된 세계 속에서 진행되는 것만 같았던 공포스러운 이미지들은 영화를 통해 스크린 속에서 최대한 사실적으로 재현되었고 관객들은 이미지들이 더 이상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실제로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으며 더욱 영화에 몰입해 큰 공포감을 느끼게 된다.
일본 영화계에서 만화 원작 영화라는 것은 더 이상 마이너스 요인이 아닌 하나의 경향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상상력이 스크린에서 어디까지 재현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흔히들 이야기해온 ‘그들의 상상력은 높이 산다’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만화 속에서만 통용되지 않고 영화를 통해 살아나고 있기에 어쩌면 이 영화들이 일본 영화계를 이끌어나갈 새로운 축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마치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피터 잭슨이란 감독을 만나 영화로 구현되면서 영화계 걸작으로 올라섰던 것처럼 머지않아 일본의 새로운 감독이 만화 그 이상의 영화를 만들어내며 새로운 마스터피스를 만들어낼지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