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랜드>와 샤갈의 ‘와인잔을 든 두 명의 초상화’에 대한 단상
※ <라라랜드>의 결말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이십 대 초반 지금보다는 그래도 어렸던 시절. 운이 좋게도 해외를 여행할 많은 기회를 얻었었다. 특히 대학교 때 학교에서 지원을 받아 유럽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 여행은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도 가장 즐거웠던 추억으로 남아있다.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이렇게 네 곳을 여행했었는데, 나는 그중에서도 프랑스가 좋았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사진으로만 봤었던 예술품들을 눈앞에서 실제로 만나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루브르, 오르셰, 오랑주리, 퐁피두 센터 등 여러 곳의 박물관을 돌아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그중에서도 퐁피두 센터가 제일 좋았는데,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하면서도 신기한 그림들이 많았고 그러한 것들이 내 마음 한 구석에서 예술을 동경했던 기억을 끄집어내어 나를 즐겁게 만들었다. 또한 퐁피두 센터는 내가 잊을 수 없는 ‘예술적 경험’을 했던 날이기도 하다. 전시관들이 꽤 커서 같이 간 언니와 각자 떨어져서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나는 발걸음을 멈췄어야만 했다.
사실 이전까지 ‘어떤 명화를 보고 멈춰 선다…’라는 경험을 이해할 수 없었다.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여 내가 그림을 보는 건지 사람을 보러 온 건지 헷갈리게 했고, 모네의 ‘수련 연작’은 압도적인 크기와 비주얼에 놀랐지만 내게 어떤 특별한 감흥을 불러일으키진 못했다. 그런데, 이 그림을 보고 나서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그 그림은 바로 마르크 샤갈의 ‘와인잔을 든 두 명의 초상화’(Double Portrait with a glass of wine). 그림의 엄청난 크기뿐만 아니라 배경이 온통 노란색으로 가득 차 있는 모습,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샤갈과 부인 벨라의 행복한 미소까지. 어떤 예술품을 보게 되면 그 예술품으로부터 아우라가 느껴진다고 흔히들 이야기하는 걸 듣고는 했는데, 그 그림은 나에게 그런 ‘아우라’를 내뿜고 있었다. 그때 그 순간 느낀 내 감정을 모든 말로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마치 끝없이 솟아오르는 격렬한 감정의 심연을 들여다본 느낌이 아마 그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샤갈의 그림에서도 특히 내 마음을 잡아끌었던 하나의 작은 요소는 바로 샤갈과 벨라의 미소였다. 샤갈이 벨라와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그려졌다고 전해지는 이 그림 속에서 두 사람이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둘의 표정이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마법 같은 순간이 고스란히 담은 그 미소. 그 표정들에 매료된 나는 죽기 전에 이 그림만큼은 꼭 다시 보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라라랜드>를 꺼내기 위해서 먼 길을 빙빙 돌아왔는데, 굳이 왜 샤갈을 먼저 꺼냈을까. <라라랜드>라는 영화를 보면서 2016년 내가 봤던 최고의 영화라 극찬을 하고 그 장면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할 수는 있었지만, 오히려 <라라랜드>가 나 자신에게 있어 어떤 영화인지를 설명하는 것은 어려웠다. 모든 이들이 다 말하는 것들은 나도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정작 이 영화에 대해 받은 내 느낌에 대해서 풀어내는 것은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던 중 아이러니하게도 폴 고갱을 모델로 해서 써진 ‘달과 6펜스’를 읽으면서 문득 샤갈의 그림과 <라라랜드> 두 작품 간의 연관 고리가 떠올랐다. 오직 서로 밖에 보이지 않는 마법 같은 순간. 그런 점에서 두 작품은 사랑을 아주 직관적으로 그려내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라라랜드>에서 가장 먼저 샤갈의 그림이 연상되었던 부분은 세바스찬과 미아가 파티가 끝난 뒤 차를 찾으러 가는 장면이었다. 서로가 자신의 스타일이 아니라고 이야기하지만 결국에는 사랑에 빠지고야 마는 두 남녀. 투닥거리며 언덕을 올라가던 두 남녀가 벤치에 앉아 탭슈즈를 갈아 신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군청색 하늘 아래에서 노란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와 깔끔한 슈트를 입은 남자. 마치 한 쌍의 그림처럼 춤을 추는 두 남녀. 우리는 이 장면을 본 순간 알고 있다. 이들이 머지않아 서로에게 영원한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이 될 것임을. 환상적인 하늘을 배경으로 단 한 명의 군중 없이, 어떤 정해진 맥락 없이 이어지는 이들의 경쾌한 춤은 서로에 대한 탐색전이면서 동시에 말하지 않고 나누는 사랑의 언어이다. 미아를 맡은 엠마 스톤과 세바스찬을 맡은 라이언 고슬링은 서로 각자의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었지만, 이들이 연기한 미아와 세바스찬이 춤을 추며 서로를 바라보는 그 순간만큼은 미아와 세바스찬이 살아있는 인물이 되어 사랑에 빠지는 실재가 된다. 샤갈의 그림에서 색채 하나 미소 하나 선 하나가 생생한 사랑을 전하고 있다면, <라라랜드>의 이 장면에서는 이들의 춤 동작 하나 이들의 스탭 하나 이어지는 음률 하나가 사랑을 표현하고 있달까. 현실과 꿈 어딘가에 걸쳐져 있는 듯한 두 연인의 아름다운 시작이 담긴 순간. 샤갈의 그림을 누군가 연출한다면 바로 이런 비슷한 장면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었다.
사랑은 이처럼 자신과 사랑에 빠진 대상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만든다. 하나의 감정에 온전하게 사로잡혀 그들 외에는 세계를 잊어버리게 만든다. 어떤 단어를 이 사랑의 순간에 담아도 모자라겠지만, 순수한 열정만큼은 이 사랑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라라랜드>에서 이러한 장면이 가장 잘 드러나는 순간이 천문대에서 두 사람이 데이트를 하는 장면이다. <이유 없는 반항>의 실제 촬영지인 그리피스 천문대로 몰래 들어가는 두 사람. 천장에 별이 가득한 가운데 키스를 하려던 두 사람의 손수건이 갑자기 하늘로 떠오르고 두 사람은 자신들만의 환상적인 세계로 날아간다. 언덕 위에서 춤추던 장면이 사랑의 첫 시작이었다면, 마치 노래 가사처럼 머나먼 우주로 날아가는 두 사람의 모습은 사랑에 완전히 빠진 모습이다. 그 세계야말로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고 아무것도 무섭지 않은 오직 둘만이 구축해낸 완전한 세계. 사랑의 황홀함은 서로를 취해있게 만들며 그들이 사는 세계의 풍경조차 바꿔놓는다. 샤갈의 그림도 모든 그림의 법칙을 뛰어넘어 샤갈과 벨라 만의 온전한 세계를 담아낸다. 주변이 온통 기쁨과 행복의 노란색으로 가득 차 있고 여자와 남자의 기본적인 역할을 벗어난 그들만의 자유로운 세계. 사랑을 하는 이들에게 있어 그 세계는 그야말로 그들의 낙원이자 유토피아이다.
<라라랜드>에서 많은 이들이 최고로 꼽는 마지막 엔딩씬에서도 뭔가 샤갈의 그림과 유사한 느낌을 받았다. 샤걀은 자신의 아내 벨라를 사랑했지만, 슬프게도 모든 사랑에는 늘 끝이 있게 마련이다. 샤갈은 29년이라는 결혼 생활을 보낸 뒤 아내 벨라를 죽음의 곁으로 떠나보낸다. <라라랜드>에서 미아와 세바스찬 두 남녀는 현실이라는 벽과 꿈 사이에서 방황하며 자연스럽게 헤어진다. 이러한 이별을 통해 남녀 간의 사랑은 완전히 끝맺은 것 같이 보인다. 하지만, 진정 이별이 사랑의 종착역이라 할 수 있을까. 그들의 물리적인 상태는 서로 떨어져 있지만 그들이 서로 사랑했던 추억은 그들의 기억 속에 남아 눈부시고 찬란하게 살아있다. 벨라를 한 평생 자신의 뮤즈로 삼으며 그녀와의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간을 위대한 예술품으로 그려낸 샤갈, 그리고 서로가 서로의 꿈을 격려하며 누구보다 마법 같은 시간을 보냈던 미아와 세바스찬. 샤갈이 벨라를 사랑했던 시간은 모든 예술품 속에서 고스란히 살아 숨 쉬고 있고, 미아와 세바스찬이 서로를 사랑했던 시간은 영화의 모든 장면마다 그리고 ‘만약에 그러지 않았다면’이라는 가정 하에 되돌렸던 영화의 마지막 엔딩씬에서도 살아있었다.
사실 사랑이라는 것은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주제이기 때문에 진부한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겪게 될 다양한 경험들 가운데서도 ‘사랑’만큼 가장 극적인 경험을 해주는 것이 또 있을까. 서로를 무엇보다도 아끼고 격렬하게 원하면서도 감정의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드는 이 깊은 굴곡 속에서 인간은 가장 ‘인간’ 다운 삶을 산다. 그렇기에 사랑에 빠진 모든 연인들은 아름답다. 그들이 서로 함께 사랑하는 시간도 영화에서 표현되는 만큼이나, 그림에서 표현되는 만큼이나 눈부시게 빛이 난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사랑이라는 꿈. 살면서 한 번쯤 사랑을 겪어본 사람이던, 한 번도 사랑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던, 우리는 사랑하는 연인들을 충분히 열정적으로 사랑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사랑하고 여전히 사랑을 꿈꾸고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