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반윙클의 신부> 속 나나미에게 나도 모르게 이입했던 것들에 대하여-
***이 글에는 <립반윙클의 신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내 나이 20대 후반. 나이가 들어갈수록 생각이나 가치관이 조금씩 변하면서 내가 겪는 경험도 색다르게 느껴진다고 하지만, 최근 들어서 더더욱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 바로 ‘결혼’이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씩 결혼을 하기 시작하면서 결혼이라는 것은 점점 무게를 갖고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고, 특히 올해 들어서 가장 친한 친구가 결혼하게 되면서 내게 다가오는 ‘결혼’은 마치 내가 넘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거대한 산같이 보였다. (심지어 나는 그 친구 결혼식에서 축사까지 하게 되어서 더 그런 것만 같다.)
어린 시절에 ‘결혼’이란 어른으로 들어가는 통과의례만 같았는데 이제 나이가 들고 여러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혼을 하지 않고도 자신만의 삶을 누리며 사는 독신주의자들도 보았고, 결혼하고 나서 아이를 키우느라 너무 힘이 들지만 그 속에서 또 다른 행복을 누리며 사는 기혼자들도 보았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결혼’이 인생의 정답과 목적이 아니라고 조금씩 생각이 바뀌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결혼’을 하고 싶다는 사람이지만)
<립반윙클의 신부>의 나나미에게도 결혼은 굉장히 중대한 것이었다. 소심하고 여린 성격의 나나미는 SNS에서 만난 상대와 결혼을 결심하고 결혼 생활을 하게 되지만 그 속에서 자신의 것을 제대로 주장하지 못한다.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말하지도 못했기에 자신을 제대로 표현할 줄도 몰랐던 나나미는 그저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데 급급했고, 아무로에게 이용당해 결국 남편과 헤어지고 만다. 사실 나나미는 아무로에게 이용당했던 것이었지만, 아무로가 아니었어도 나나미는 늦던 빠르던 남편과 헤어졌을 것이다. 그녀의 결혼 생활은 단지 커스터드 크림 위에 설탕을 코팅한 것처럼 너무 무르고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사실 영화를 본 모든 이들은 나나미가 너무 답답하다고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근데 나는 나도 모르게 나나미에게 이입되고 있었다. 자신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의견에 따라가는 삶. 나나미는 SNS 플래닛에서 만난 램버렐에게, 그리고 현실상에서는 아무로에게 계속해서 의존한다. 친구를 구해달라는 의뢰를 받은 뒤 아무로는 ‘적절한’ 사람을 선택했고, 그게 바로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여는 나나미였다. 이렇듯 나나미는 세상을 살면서 너무나도 표적이 되기 쉬운 여린 여자일 뿐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도 모르게 나나미에게 이입이 되었던 이유는 사실 나의 과거 모습에서 나나미의 그런 흔적을 찾았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의 부탁을 제대로 거절하지도 못하고 마음이 불편한 상태로 그 부탁을 들어주는 것. 과거의 나는 그런 모습을 종종 보였고, 내가 원하는 것과 나 자신의 것을 선택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때때로 그 과거의 흔적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나를 힘들게 하기도 한다.
내가 나의 삶을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나 스스로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언제부터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언제부터 우리는 ‘결혼’을 어른이 되는 관문으로 정해놓은 것일까. 이 영화 속에서 ‘결혼’은 두 가지 방식으로 묘사된다. 하나는 흔히 두 명의 남녀가 만나 이뤄지는 결혼, 또 다른 마시로와 나나미가 웨딩사진을 찍으면서 공유하는 상징적인 의미의 결혼이다. 나나미는 결혼식장에서 비어있게 될 자리를 걱정해 가짜 하객을 불러 모아 채웠다. 이혼한 뒤 홀로 살게 된 그녀는 또 다른 누군가의 결혼식장 자리를 채우러 간다. 영화 속에서 결혼의 모습은 성숙한 두 명의 남녀가 평생 삶을 함께 하기 위한 의식이 아닌 사회 속에서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하는 허례 의식일 뿐이다. 마시로와 나나미가 함께 웨딩드레스를 입고 사진을 찍는 모습은 이런 허례 의식과는 다르다. 누군가를 위한 행사가 아닌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그녀들은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서로를 얼싸안고 사진을 찍으며 자신의 삶 속에서 행복한 순간을 꾹꾹 눌러 담는다.
<립반윙클의 신부>를 본 지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이 장면은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돈다. 이다음에는 맹독을 가진 생물들에게 둘러싸인 채 서로를 향해 사랑을 표현하는 아이러니한 장면이 이어지지만, 그럼에도 나나미와 마시로가 행복한 얼굴을 한 채 웨딩 사진을 찍는 모습 속에는 삶의 기쁨이 가득 담겨 있는 것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차를 타고 가면서 나나미는 바깥은 구경한다. 얼마 전까지 자신이 속했던 허례허식 가득한 세상을 그녀가 관습을 벗어난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 묘하게 가슴을 한 구석을 찌른다.
어쩌면 나에게 놓인 ‘결혼’이라는 주제 때문에 <립반윙클의 신부>에서 이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일 수도 있다. ‘결혼’을 해야지만 삶의 안정적인 궤도에 들어서는 것 같고, 부모님께 눈치 보지 않고 살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 나보다 앞서서 결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초등학교 입학부터 대학교 입학까지 사람들과 비슷하게 출발했지만, 결혼이라는 주제에 당면한 순간부터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 삶. 그리고 결혼하지 않은 이들에게 일일이 잔소리를 하면서 그것을 마치 통과의례처럼 여기는 다른 누군가의 모습들. 나는 이런 관념 속에 사로잡히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는데 그것은 어느새 나의 생각처럼 되어버렸다.
사실 <립반윙클의 신부> 속에서 결혼은 그렇게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나나미가 마시로의 죽음을 떠나보낸 뒤 담담하게 다시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결혼과 죽음 모두 삶의 한 일부분이다. 누군가가 죽어도 그것을 애도하는 시간은 필요하지만 그래도 삶은 계속되는 것처럼, 신데렐라의 이야기처럼 “결혼해서 행복해서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결혼한 이후 새롭게 삶이 시작되는 것처럼. 결혼 그리고 삶 속에서 일어나는 다른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해 너무 작게도 너무 크게도 얽매이지 않는 것. 그것이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등장하기 전 나나미의 삶처럼 결혼하거나 결혼하지 않아도 계속될 나의 삶이 계속해서 잔잔하게 흘러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