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 러브’에 이르는 머나먼 길 <롱 샷>
※ 이 리뷰는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영화를 관람하고 작성하였습니다.
※ 이 리뷰는 <롱 샷>의 엔딩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롱 샷>은 아무 생각 없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이면서(로맨틱…이라고 하기에는 분명 하드한 부분들도 존재하지만) 동시에 동시대를 살고 있는 여성들이 수없이 마주하는 불편한 시각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하이퍼리얼리즘 영화이기도 하다. 차기 대선후보로 지목되고 있는 최연소 국무장관임에도 불구하고 샬롯이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TV 프로그램에서는 그에 대한 성희롱을 멈추지를 않고, 그에 대한 지지도는 그가 주장하는 정책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샬롯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으로 결정된다. 또한 한 부호는 그를 만나기 위해 어떠한 수단과 방법조차 가리지 않고 치열하고 옹졸한 방법으로 샬롯을 압박해온다. 이렇게 샬롯을 둘러싼 모든 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샬롯은 상당한 피로도를 느꼈을 것이다. 그를 둘러싼 모든 상황들은 그를 있는 그대로의 존재가 아닌, 항상 누군가의 액세서리 혹은 심지어 그의 측근에게조차 보기 좋은 '대상'으로만 존재하게 했고, 그의 내면에 있는 본질 그대로 봐줄 수 있는 사람은 샬롯 주변에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를 둘러싼 상황들이 점차 심해지면서 피로도가 누적되는 동안 마치 영화처럼 샬롯의 앞에 플라스키가 나타난다. 그는 외양부터 언행까지 다른 이들의 호감을 얻기 어려운 사람이고, 거기다가 바로 얼마 전에는 실직까지 했다. 우연한 만남처럼 둘은 몇십 년 만에 재회했고, 두 사람은 거짓말처럼 사랑에 빠졌다. 그들의 사랑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아니 엄밀히 말한다면 그들이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아무도 상상하고 싶지 않았을 결과였다. 어떻게 이들은 사랑에 빠질 수 있었을까? 그것은 플라스키만이 그녀의 진심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린 시절에 그에게 말했던 환경 보호 정책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고, 그 정책을 실행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했다.(그 정책 때문에 플라스키가 샬롯에게 삐져서... 둘이 틀어질 뻔하기도 했지만) 사실 플라스키도 샬롯에게 접근한 것은 순수한 목적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또한 진심을 알아보기 때문에 외면은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사람들이 그동안 너무나 많이 외쳐온 말 이기 때문에 그 속에서 제대로 된 진심을 느끼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롱 샷>은 이를 뻔하게 전하지 않는다. 플라스키의 권유(?)에 따라 약을 하고 나서 급하게 중요한 협상을 하게 되었을 때 그는 거칠지만(?) 정공법으로 밀고 나가 인질을 구해낸다. 이로써 그는 모든 미국이 응원하는 영웅이 되는데, 어떻게 보면 샬롯은 이 순간 다른 이들의 배경이나 다른 이들의 권력을 이용한 것이 아닌 자신의 진짜 모습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뤄낸다. 약간 뒤틀린 방향으로 모든 이들을 폭소케 만들 정도로 독특하게 전달하기는 했지만,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꽤나 분명하다.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있는 진정성은 사람이 말로 했을 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닌, 머리에서 마음으로 내려왔을 때 그 진심을 느낄 수 있다. 모두가 샬롯의 아름다운 외양만을 칭찬하며 그녀가 자신들이 바라는 기준을 벗어나는 순간 난리 치고 비방할 때, 플라스키는 그녀를 아무런 걱정 없이 웃게 만들었다. 누군가 자신에게 씌워준 껍데기가 아닌 샬롯이 그 껍데기를 모두 벗어버리고 어린 시절부터 갖고 있었던 자기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게 만든 것이다. 샬롯이 갖고 있는 모든 지위, 명예, 권력은 그녀의 것임이 분명했지만 그 모든 것들이 그녀 자체는 아니었다. 그것은 샬롯을 둘러싼 수많은 껍데기 중 하나였고, 그것들은 결코 샬롯 그 자체가 될 수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샬롯의 껍데기를 찬양하고 그 껍데기를 더욱 견고하고 만들어갈 동안 플란스키 단 한 사람만이 그 껍데기를 모두 벗어버리게 만들고 그 속에 있는 샬롯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게 한 것이다.
사랑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나의 것’이라는 껍질을 벗어버리는 순간, '인간'으로서의 진짜 사랑이 시작된다. 목표가 아닌 목적을 위해서 자신에게 다가올 좌절을 감당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달려갈 수 있는 것. 그리고 남들의 시선에 두려워하며 숨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사랑하는 사람 앞으로 다가갈 수 있는 것. 영화가 보여주는 마지막 엔딩은 판타지에 가까울지라도 서로 사랑하는 사람 옆에서 당당히 서 있을 수 있는 샬롯과 플란스키의 모습은 우리가 현실에서 살면서 만나기를 바라는 ‘트루 러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