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찰나의 순간에 대하여

<라이크 크레이지> 속 무수한 사랑의 얼굴들

by 송희운

※ 이 리뷰는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영화를 관람하고 작성하였습니다.

※ 이 리뷰에는 <라이크 크레이지>의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라이크 크레이지>라는 영화의 제목은 사실 매우 강렬한 제목이다. ‘Like Crazy’라는 말 그대로 ‘미친 듯이’ 사랑에 빠졌던 그 순간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 영화는 매우 냉철한 영화이기도 하다. 찬란하게 빛나던 사랑의 시작부터 나도 모르게 차갑게 식어버린 사랑의 끝까지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모든 것을 담아낸다고 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사랑에 빠지는 순간 느끼는 그 찰나의 감정일 것이다. <라이크 크레이지>에서 두 주인공이 느끼는 대부분의 감정들은 모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면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들이다. 그 감정이 기쁜 것이든, 슬픈 것이든 너무나도 찰나의 순간이라서 오직 그때만 느낄 수 있는 순간의 축복과도 같다.



<라이크 크레이지>는 바로 그런 순간들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사랑을 다루는 세상의 모든 영화들처럼 쉽게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에 빠지면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전부 다 보여주지만 그와 동시에 사랑이 지나가고 난 뒤 느껴지는 처절함과 슬픔에 대해서도 동시에 다룬다.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늘 그러하듯 언제나 강렬하면서도 단순하다. 나와 완전히 다른 존재를 마주한 순간 느끼는 짜릿함. 그리고 그 짜릿함 속에서 찾아오는 설렘과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까지. 영화의 첫 시작에서처럼 영국 여자 ‘애나’와 미국 남자 ‘제이콥’은 모든 사랑의 시작이 그러하듯 처음 본 순간 첫눈에 서로 반하고 뜨겁게 사랑에 빠진다.




<라이크 크레이지>가 다른 멜로, 로맨스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이들 사이에 현실의 장벽이 놓였을 때 발생한다. 서로 너무나 사랑했기에 단 한순간도 떨어지고 싶어 지지 않았던 연인들. 현실을 넘어선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기에 이들은 제대로 된 현실 감각을 느끼지 못하고 자신들 세계 속에 갇혀 산다. 사실 연인들이 사랑에 빠지고 서로의 눈에서 콩깍지가 벗겨지기 전까지는 오직 둘만의 세계에만 살고 있다. 애나와 제이콥의 이러한 모습은 영화 속에서 이야기가 흘러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그와 동시에 서로의 세계 속에만 살고 있는 연인들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온전히 연인들만이 살고 있던 비눗방울과도 같은 세계는 곧 현실이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는 순간 부서지고 만다. 영국 여자인 애나가 학생 비자 기간을 어기면서 애나가 미국으로 더 이상 들어오지 못하게 되고, 이로 인해 발생되는 모든 현실적인 문제들로 이들의 사이는 점점 멀어지기 시작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서로 함께 있으면서도 부족했던 연인들이었기에 환상 속에 있던 이들의 사랑은 현실이란 장벽에 더욱 크게 부딪힌다. 너무나 보고 싶어 하지만, 자신들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현실’ 때문에 각자의 나라에 있을 수밖에 없는 잔인한 ‘현실’. 연인들은 한번 위기를 맞이하지만, 아직 이들의 열정은 식지 않았기에 한번 헤어졌어도 다시 서로를 찾아 헤매고, 서로의 결속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결혼’을 택한다. 이들의 사랑이 이렇게 행복하게 끝이 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서로 잠시 헤어졌던 동안 그들은 서로의 곁에 누가 있었는지 의심한다. ‘과연 이 사람이 정말 나만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을까? 이 사람에게 누군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러한 머릿속 불안감은 서로를 미묘하게 잠식하기 시작하지만, 아직 이 불안감보다 서로에 대한 열망이 더욱 크기 때문에 이들의 사랑은 아직 꺼지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 가슴속 왠지 모를 찜찜함을 남긴 채.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의 사랑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바로 제이콥이 선물한 의자이다. 서로를 너무나 아끼고 사랑했기에 제이콥은 자신의 사랑의 증표로 자신이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으로 의자를 만들어 선물한다. 처음에는 사랑의 증표로 비치던 이 의자는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간다. 얼마 되지 않았던 사랑의 설렘에서부터 시작해 두 사람을 여전히 이어주는 사랑의 증표로 마지막에는 서로에 대한 미련 혹은 과거와 같지 않지만 내 삶의 일부와도 같이 되어버린 상대방의 흔적까지. 영화 속에서 잠깐씩 모습을 비추던 의자가 이렇게 두 사람에게 다른 의미로 변해갈수록 관객들은 사랑이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도 모르게 안타까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애나가 자신의 집에서 소중히 여겼던 의자를 애나의 새로운 여인이 창고 속으로 넣어버리고 새로운 의자를 선물해주었을 때, 관객들은 직감할 수 있다. 두 사람의 사랑이 더 이상 과거와 같이 찬란하게 빛날 수 없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 사랑이 변한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우리는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연인들의 문제에 ‘현실’이 끼어들었을 때, 과연 그 사랑은 어떻게 바뀔까? 왜 사랑하는데 현실을 바라봐야 하는가? 영화는 이렇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들을 아주 어린 시절 들었더라면 단순 명료하게 대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서로 사랑하니까 괜찮아요” 하지만 서른이 넘고, 살아가는 시간이 더욱 많아질수록 어느 누가 ‘현실’을 바라보지 않고 단순히 사랑만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라이크 크레이지>는 찬란했던 사랑의 기록인 동시에 우리가 살면서 언제든지 마주할 수 있는 현실의 또 다른 얼굴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 두 연인의 사랑은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마주하는 평범한 연애인 동시에 오직 이들만이 겪을 수 있는 특별한 연애이다. 서로 강렬하게 빠지고 그 사랑 속에서 행복해한다는 점에서 모든 이들이 똑같이 겪는 사랑이지만, 너무나 머나먼 장거리 연애를 해야 하고 그 장거리 연애가 남들이 겪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점에서 다른 이들의 연애와는 상당히 다르다. 즉,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연애는 남들이 다 하는 평범한 것인 동시에 오직 이들만이 겪고, 다른 이들이 겪을 수 없는 특별한 사랑인 것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엔딩은 어떤 멜로 영화의 엔딩보다 더욱 슬프다. 모든 영화에서 연인들이 만났을 때, 관객들이 궁금해하는 지점은 ‘과연 이들은 이어질 수 있을까?’이다. 이 질문에 대해 영화는 표면적으로 ‘그렇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시간과 수많은 상처와 수많은 고통스러움이 지나간 뒤, 이 두 연인은 결국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함께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과연 이들의 사랑이 처음 사랑에 빠졌던 순간과 같을까? 엔딩에서 그들이 함께 있는 그 순간, 그들의 감정을 과연 사랑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 몸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까이 있지만, 그들의 감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멀다. 서로 함께 있지만 절대 예전과 같을 수 없는 어찌할 수 없는 변화. 어쩌면 이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사랑의 얼굴일지도 모른다. 빛나던 사랑의 순간도 변해버린 사랑의 흔적도 모두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의 현실일 것이다. 언젠가 변해버릴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언젠가 또다시 그렇게 사랑에 빠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