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 인 할리우드> 단평
영화를 전공했던 대학교 시절 문득 학교 전공 수업을 들으면서 한 가지 궁금증이 떠올랐던 적이 있었다. “이렇게 수없이 많은 영화감독들 중에 왜 여자 감독들은 거의 없을까?” 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그로부터 약 십여 년이 지난 뒤 찾을 수 있었다. 여성 감독들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그들은 영화사 속에서 선택적으로 지워졌고, 그 자리에는 수없이 많은 남성 감독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는 것을.
<우먼 인 할리우드>는 ‘여배우’로서 할리우드를 살아가야만 했던 배우들과 아무리 뛰어난 작품을 만들었어도 투자를 받지 못하거나 제작사를 찾지 못해 오랫동안 차기작을 만들 수 없었던 여성 감독들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사실 우리는 영화를 보기 전에도 피상적으로는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할리우드 속에서 얼마나 많은 남성 감독들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으며, 얼마나 많은 여배우들이 살아있는 캐릭터가 아닌, 단순히 남성 캐릭터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대상물’로서 자리하고 있었는지. <우먼 인 할리우드>는 우리가 그저 그러려니 하고 느꼈던 생각들이 할리우드 영화 산업 속에서 얼마나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자리 잡고 있는 현실인지 낱낱이 드러낸다.
십 대에 불과했던 클로이 모레츠에게 가슴을 더욱 강조해야 한다고 말하던 제작사. 감독에게 자신의 무릎에 앉아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샤론 스톤 등등등. 여배우, 이들은 자신의 연기에 자부심을 갖고 프로의식을 갖고 일하고 싶었던 ‘배우’였으나, 이들이 현장에서 받은 대접은 주류 백인 남성들이 원하는 성적 대상화였다. 할리우드가 여배우들을 성적 대상물로 만들었다면, 여성 감독들에게는 아예 일할 기회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소년은 울지 않는다>로 세계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던 킴벌리 피어스 감독은 차기작을 연출하는데 8년이란 시간이 걸렸고, 그다음 작품 <캐리>를 연출하는 데는 6년이란 시간이 들었다. 여배우와 여성 감독에 대한 할리우드의 상이한 태도는 얼핏 보면 다른 것 같아 보일지는 몰라도 그 밑면은 모두 동일하다. 이러한 인식들은 모두 여성을 제대로 된 주체로 인지하지 못하게 만든다. 할리우드 산업은 그 한계가 바로 자신들의 눈 앞에 있는 데도 그것을 외면해왔고, 결국 이런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인 인식들은 하비 와인스타인이라는 괴물을 만드는데 일조해왔을지도 모른다.
숫자와 통계를 통해 자신의 주장이 단순히 감정적인 것이 아님을 증명한 지나 데이비스처럼 영화는 공감을 통해서 분노를 억지로 끌어올리려고 하지 않고, 차분하게 진실을 전한다. 무성영화 산업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던 시절 어떻게 유능한 여성들을 지워왔는지,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 두 명 이상의 여성이 대화를 나누는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영화가 몇 편이나 되는지. 이러한 역사와 통계를 보고 나면 개방적이고 진보적이라고 생각해왔던 할리우드 영화계가 우리가 생각했던 그 이상으로 성차별적이었다는 것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그 성차별적인 태도에 얼마나 무감각하게, 무디게 살아왔는지를 새삼 돌아보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할리우드여, 더 이상 여성들을 차별하지 말라!’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들이 겪고 있는 차별에 대해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여성 감독들의 이야기가 영화 말미에 들어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 눈앞에 있는 한계가 잘못된 것이라면 두려움을 안고 그 한계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는 것. 그 한걸음에는 단순히 한 사람만의 노력이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닌,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실패와 그 걸음을 내딛을 수 있게 해 준 수많은 이들의 지지가 있었다는 것. <우먼 인 할리우드>는 여성이 할 수 있고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연대’와 ‘희망’을 보여준다. 이는 영화의 원제(This Changes Everythig)처럼, 결국에는 모든 것을 바꿔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