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청춘에게 탈출구는 있을까?

<엑시트> 단평

by 송희운

※ <엑시트>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지 않았던 <엑시트>가 700만 관객을 돌파했다. 한국에서 쉽게 만나볼 수 없는 '재난물'이 개봉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이 영화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엑시트>가 이렇게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얻을 수 있었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엑시트>는 관객 중 어느 한 사람 불쾌해하지 않고, 모두가 웃으면서 즐길 수 있는 '건강한 영화'라는 점이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희생을 가벼이 여기지 않고, 누군가 꼭 반드시 비극적으로 죽어야만 하는 절절한 K-감성이 아닌 깔끔한 스토리라인, 재난에 대해 대처하는 올바른 방식까지. <엑시트>의 장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이 시대의 청춘을 그려내는 방식이다.


사실 <엑시트>의 청춘은 서글프다. 아직 취업을 하지 못한 채 어머니 칠순을 맞이한 용남, 연회장 부점장으로 취직했지만 극한 상사 밑에서 일하고 있는 의주. 이 두 사람을 둘러싼 사회적인 배경뿐만 아니라 이들이 탈출하는 과정 속에서 마주하는 여러 상황들마저도 서글프다. 용남이 죽을힘을 다해 옥상문을 열어 탈출 경로를 뚫었지만 나이가 많은 어른들, 결혼하여 가정을 꾸린 사람들, 그들의 자식까지 '가족' 중심의 사람들에게 먼저 배려해주느라 용남은 자신의 생명을 위한 권리를 포기했어야만 했다. 또한 헬기가 지나간 뒤, 부점장으로서 고객들의 생명을 먼저 생각했어야만 했던 의주는 자기 자신도 모르게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이들이 애써 다른 건물로 탈출한 뒤, 우연히 학원 아이들과 마주쳤을 때도 용남과 의주는 자신들의 목숨보다 자신들의 몸을 던지면서까지 아이들을 먼저 구하는데 집중한다. 항상, '자신'이 아닌 다른 세대들을 위해 먼저 애를 썼어야만 했던 청춘들.


용남과 의주는 밑에서부터 차오르는 가스를 피하기 위해 끊임없이 높은 곳으로 솟아올라가야만 했다. 영화 속에서 비록 웃긴 장면으로 소화되었지만, 용남이 높은 빌딩을 손으로 가리키며 "내가 여기서 나가면 저런저렇게 높은 건물로 된 회사에만 원서 낼 거야!!!"라고 울며불며 이야기하는 장면도 지금 취준생들에 대한 웃픈 우화이다. 고학력, 고스펙, 이제 막 취업 준비를 시작했지만 몇 년 차의 경험을 갖고 있어야 하는 신입들까지. 이들은 사회로부터 늘 높은 곳에 있어야만 한다고 강요받는 세대이다. 취업을 못했다면 사회 속에서 제대로 된 '사람' 취급조차 받지 못한다. 대학교를 졸업한 뒤 취업을 꿈꾸었지만 조카로부터 바보 취급당하는 용남, 취업은 했지만 하루 종일 서서 일하며 손님들이 갈 때까지 퇴근도 못하는 퍽퍽한 현실 속 직장인 의주. 갑작스럽게 살포된 가스는 마치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의 부정적인 기운처럼 이들을 자꾸 그 아래로 끌어당기려고만 한다. 이들은 이러한 현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계속 위로만 올라가야 했다.


어두컴컴한 나락처럼 <엑시트> 속 청춘은 얼핏 보면 끝없이 추락하는 것만 같이 보인다. 그들을 둘러싼 모든 것들은 그들에게 도움이 단 하나도 되지 못한다. 하지만 용남과 의주는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마지막 절정의 순간 그들은 우연한 기회 속에서 살아남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고, 크레인까지 타고 올라가 스스로 살아남았다. 영화는 이들에게 새로운 취업의 기회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되었다면 이들이 영화 속에서 했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을 정도로 '작위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 영화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청춘들에게 너희의 힘으로 알아서 살아남아라 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는 대중영화의 틀을 통해 선을 넘지 않고, 지금 자신들의 힘으로 열심히 살아남고자 애쓰는 청춘들을 있는 그대로 지켜봐 주자고 이야기하는 것만 같다. 그렇기에 우리는 용남과 의주가 주인공이기에 영화 속에서 살아남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들이 고군분투하는 장면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응원을 보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