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소마> 단평
※ <미드소마>의 엔딩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리 애스터 감독의 <미드소마>는 개인적으로 봤을 때는 공포 영화가 아니었다. 한창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힐링물(?)이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여태까지 수많은 영화들이 다뤘던 '트라우마'에 대해 가장 호쾌한 태도를 지닌 영화였다. 물론 <미드소마>는 기존의 공포 영화들의 갖고 있는 뼈대들로부터 시작한다. 외부인이 정확하게 어딘지 알 수 없는 낯선 타지로 가서 그곳의 사람들에게 하나씩 끌려가서 살해당하는 클리셰적인 부분들은 그대로 유지하지만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들을 이런 '공포'가 아니다.
대부분의 공포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극한의 상황 속에서 발버둥 치고 살아나기 위해 애쓰지만, <미드소마> 속 대니는 다르다. 대니도 처음에는 마찬가지로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대니는 이곳이 자신이 바깥세상의 현실에서 겪은 것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이해해주지 않는 남자 친구, 여동생이 자신의 부모님을 살해하고 자살한 끔찍한 트라우마까지 바깥세상의 현실 속에서 대니가 겪은 것은 창자가 끊어질 것만 같은 끔찍한 고통과 슬픔이었다. 바깥세상 속에서는 온통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것 밖에 없었고 가장 가까운 사람마저 자신에게 안식은 커녕 공감조차 해주지 못했다. 하지만 <미드소마> 속 마을 공동체는 다르다. 그들은 대니가 느끼는 모든 고통과 슬픔을 외면하지 않고 자신의 것처럼 느끼며 같이 슬퍼하고 울어주었다. 그들이 나누는 감정은 비록 정상적인 것들은 아닐지언정, 오히려 대니는 그곳에서 안식을 취하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메이퀸'으로서 그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기존의 영화들이 트라우마를 극복해야만 하는 대상으로 여기거나 혹은 피해서 도망가야 하는 것으로 만들었지만, <미드소마>는 트라우마에 대해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한다. 그 트라우마의 근원이 되는 것들을 모두 불살라 없애버리는 것이다. '메이퀸'이 되어 성대한 축제를 완성시킬 마지막 희생 제물을 택할 때 대니는 분명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받았다. 자신의 남자 친구 혹은 전혀 모르는 타인 중 선택할 기회를. <미드소마>에서는 주인공을 극한을 몰아넣지만 그와 동시에 주인공에게 자신의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비록 억압된 환경 속에서 하는 선택이라고 해도, 대니는 자신을 괴롭히는 것들을 없애버릴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가짐으로써 자신의 트라우마를 불구덩이로 던져 태워버린다. 그렇기에 마지막 엔딩 장면에서 온통 인상을 구기고 슬퍼하던 대니가 환하게 웃는 장면은 트라우마를 다뤘던 모든 영화 속에서 단 한 번도 느껴볼 수 없었던 가장 통쾌한 장면일 것이다.
트라우마가 있으세요?
그렇다면 불태워버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