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장> 단평
※ 이 리뷰에는 <주전장>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위안부’를 다루고 있는 다큐멘터리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많다. 이러한 작품들은 때로는 인권에 호소하기도 하고, '위안부 할머니'라는 대명사 속에 갇힌 것이 아닌 그저 한 인간으로서 할머니의 삶을 담담히 조망하기도 한다. 여러 결을 다루고 있는 위안부 다큐멘터리 중에서도 <주전장>은 조금 특별하다. 그것은 일본계 미국인이 이 작품을 만들었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다른 다큐멘터리들보다 훨씬 더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이 ‘위안부’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같은 한국인으로서 감정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제삼자의 시선으로 ‘위안부’를 바라보게 된다.
‘위안부’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과 일본인들의 인식은 상당히 다르다. 엄밀히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모든 국민들이 ‘위안부’를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일본인들은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고(그 일부라면 거의 우익이겠지만) ‘위안부’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를 가르치는 일본의 역사 교과서가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의도적으로 역사를 은폐하고 의도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자신들이 보여주기를 원하는 역사만을 편집하여 보여주는 일본의 태도는 궁극적으로 그들이 모시는 ‘천황’과 연결된다. 그저 듣고 배운 역사가 아니라, 실제로 그 일을 접했던 그 당시 군인이었던 사람과의 인터뷰에서 나온 말은 가히 충격적이다. “전쟁 전에 여자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인격이 존중되지도 존재하지도 않았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천황’이 지배하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풀 한 포기, 땅 위의 돌 조차 모두 천황의 것이었으며, 인권은 천황이 허락한 범위 하에서만 가능했다. 역사학자의 말처럼 인권은 자칫하면 국가와도 싸울 수 있는 권리를 말하는 것이지만 천황의 허락 하에 인권이 존재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인권이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은 천황의 허락 하에만 살아있을 수 있는 존재였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전쟁 시 위안부로 끌려가야만 했던 할머니들에 대한 처우는 과연 어떠했을까. 그리고 많은 시간이 지난 뒤 지금 그들의 행동은 어떠한가.
‘인류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또는 그 기록’이라는 역사의 사전적인 뜻처럼 역사는 인간의 손으로 기록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인간'이라는 존재처럼 추악한 진실과 밝은 면이 동시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 전쟁의 참혹함을 몸소 겪어야만 했던 참전군인의 말처럼 역사는 좋은 것만을 보여줄 수 없다. 좋은 것들만을 선별하여 역사를 보여주려고 하는 순간, 그것은 역사가 아닌 거짓된 ‘소설’이 되고 만다. 좋은 것들을 통해 자신들이 제대로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고 했던 그들의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명예를 스스로 짓밟고 있는지를 증명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일본이라는 단어에 감정적으로 반응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추악한 것이라도 진실되다면 그것을 받아들이고 나아갈 것인가. 역사는 장밋빛 미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지만, 우리가 모든 진실된 역사를 받아들이고 이어나가는 순간 우리 후손들에게는 장밋빛 미래를 보여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