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플랫폼> 단평
※ 본 리뷰에는 <더 플랫폼>의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더 플랫폼>은 상당히 직관적으로 주제를 드러내는 영화이다. 오프닝에서부터 공을 들여 준비되는 으리으리한 식사는 가장 맨 위층에서부터 시작되고 한 층, 한 층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점 더 인간이 먹을 수 없는 쓰레기로 변한다. 바닥으로 내려갈수록 음식은 하나도 남김없이 사라지고, 인간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기본적인 요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람들은 이성을 잃고 변모하기 시작한다.
<더 플랫폼>에서 각각 나뉜 층별이 의미하는 바는 너무나 명확하다. '계급'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도록 디자인된 세트는 한 칸 한 칸 내려갈수록 사람들이 얼마나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인다. 이는 마치 '계급'의 가장 하위에 위치할수록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삶을 유지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이 보인다. 논문을 완성시킨다는 고상한 이유로 이 잔혹한 곳에 들어왔던 주인공 고렝은 수감시설에서 가장 처음 만났던 트리마가시를 이상하게 바라보고 경멸하지만, 그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타인의 생명을 앗아가면서 결국 그와 자신이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고렝은 자신의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이곳을 관리하다가 들어온 이모구리가 가장 깊은 곳이 200층이라고 말하고 바로 다음날 200층보다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는 사실에 충격받고 자살했을 때에도 그는 인간 최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인육만은 먹지 않으려고 한다. 또한, 수감 시설에 들어간 뒤 가장 높은 층이었던 5층에 도달했을 때 그는 새롭게 만난 동료가 다른 이로부터 모욕을 당했을 때 그를 도우려 하고, 이 시스템 속에서 모든 이들이 공평하게 음식을 먹도록 하기 위해 기꺼이 발 벗고 나서기도 한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 꼭 음식이 필요한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폭력'이 동반되어야만 했다. 공정함이란 이름 하에 폭력이 동원되었지만, 결국 그 본질은 폭력이었다. 그 폭력의 결과로 인해 남은 것은 '선'과 평등한 사회가 아니라, 그 폭력 속에 짓눌려 버린 인간의 상처 받은 육신과 지쳐버린 껍데기뿐이었다. 우연히 만난 현자가 이 수감시설에 음식을 내려보내는 위층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판나코타' 만은 남겨야 한다고 했을 때, 고렝과 그의 동료는 어떻게든 이 메시지를 담은 음식만은 지켜내려고 한다. 영화 속에서 '판나코타'는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존엄성 혹은 고귀함을 의미하는 것 같이 보인다. 하지만 이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를 짓밟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는 행동을 보게 되면서, 관객들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질 것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으로 정해지는가?' 이에 대한 답은 영화의 끝 부분에 다다라서 만날 수 있게 된다.
모든 층의 가장 끝에 도착했을 때, 고렝은 드디어 자신을 도와줬던 미하루가 그토록 찾아 헤맨 아이를 만나게 된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배고파하는 아이에게 결국 유일하게 남은 판나코타를 먹이고, 암흑같이 어두운 가장 마지막 층에 도착했을 때, 고렝은 자신이 아닌 아이를 살려 보낸다. 여기서 앞서 이야기했던 질문에 대한 답이 은연중에 드러난다. 결국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고귀함, 고상함이 아니라 타인을 생각하는 '선'에서 나온다는 것. 분노에 휩싸여 트리마가시를 죽였던 고렝은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자신이 아닌 타인의 목숨을 살리는 것을 선택하고 자신의 죄책감이 만들어낸 트리마가시의 망령과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가장 극한의 상황 속에서 ‘나’를 먼저 살리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지만, 그 본성을 제치고 자신이 아닌 타인을 돕는 것을 선택하는 것. 처음에 고귀함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던 판나코타는 타인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아이 속으로 들어가 진정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인간에 대한 궁극적인 메시지로 변모하며 끝을 맺는다. 인간은 타인에 대한 사랑이 있을 때, 비로소 ‘인간다워 질 수 있다는 메시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