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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희운 Aug 23. 2020

일어날 일은 일어나더라도

<테넷> 단평

※ 본 리뷰에는 <테넷>의 결말 및 주관적인 평이 담겨 있습니다. <테넷>을 관람하고 읽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테넷>은 사실 개인적으로 마음에 확 와 닿은 영화는 아니었다. 일단 '인버전'에 대한 개념은 어렴풋이 이해했지만, 이것을 온전히 머릿속으로 다 받아들이지는 못했기에 영화를 100% 즐기지는 못했고, 이전작인 <인터스텔라>, <덩케르크>에서 느꼈던 엄청난 감동까지는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넷> 인상적이었다. 주인공의 시간과 반대되는 세상  시간의 흐름 속에서 벌어지는 자동차 액션씬은 과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아니면 누가 생각해낼  있을까라는 생각이  정도로 강렬한 경험이었다. 그중에서도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화려한 액션 장면이 아닌 마지막 전투가  끝난 , 닐이 주인공에게 대사를 건네던 순간이었다. <테넷> 속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어 언급되던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대사  마디. 사실  대사는 그동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속에서 무수히 반복되는 모토였을지도 모른다.


시간을 거꾸로 돌아가 마지막 진실에 이르는 <메멘토>의 결말, 시공간을 넘어 책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자신의 딸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던 <인터스텔라>, 영화 속에서 내내 불가침의 영역으로 언급되다가 결국 의식의 가장 깊은 곳인 코브로 빠져들게 되는 <인셉셥> 등 놀란 감독의 영화 속에서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테넷> 속에서 나온 것처럼 그것은 어떤 누군가에게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면서 동시에 현실세계를 뒷받침하는 법칙 중 하나이다.


<테넷>에서도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난다. 캣은 영화 속 내내 이루고자 했었던 소망인 남편을 죽이는 데 성공한다. 주인공은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하는 상황에서 인버전을 통해 캣을 되살려내고, 그녀를 구한다. 닐은 모든 전투가 끝난 뒤, 주인공에게 작별인사를 건네고 떠나려 한다. 그때 닐 가방에 달려있는 열쇠고리가 비치는데, 그 열쇠고리는 전 장면에서 위기의 순간 자신을 구하러 왔던 남자의 가방에 매달려 있는 열쇠고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닐은 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인버전으로 미래에서 과거로 넘어왔고, 그때 공격당해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그것을 깨닫고 주인공은 눈물을 흘리는데, 그런 주인공을 향해 닐은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라고 말을 하고 떠난다.


철학적이면서도 치밀하고 복잡한 설계로 가득 차 있는 냉철한 영화였지만 이 장면에서만큼은 왠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이 찡한 것을 느꼈는데, 그것은 자기 자신이 결국 그렇게 될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거기서 두려워하거나 피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닐의 태도에서였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그것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눈에 뻔히 보이더라도, 거기서 피하거나 물러서지 않고 나에게 주어진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 일어날 일은 일어나더라도 나의 삶을 살아내는 것. 그것은 단순히 <테넷>에서 닐의 태도만을 의미하는 것만 아니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모든 영화 속 공통적인 모토이자 동시에 관객인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바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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