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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희운 Nov 08. 2020

더 나빠지지 않을 세상을 위해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단평



2020년 개봉한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속 1995년의 모습은 우리가 생각했던 이상으로 '차별'이 가득했던 시대이다. 임신하면 더 이상 다닐 수 없게 되는 회사, 상고 출신들과 일반 직원들을 구분하기 위한 유니폼,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상사들의 커피 취향을 맞춰 일일이 타주는 모습, 상고 출신 직원들이 전화를 받기 전까지 아무도 그 전화를 받지 않는 모습들까지. 그 당시 시기를 실제로 지나왔던 분들이라면 현실적인 고증에 꽤나 놀랄 수도 있고,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2030 세대라면 '저 당시에 저렇게나 차별이 심했었다고?'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세 주인공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는 꽤나 뭉클하다.


주인공인 자영, 유나, 보람은 영화 제목인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부터 이들의 직장 동료, 상사들의 태도까지 일반 직원들과 철저히 분리된다. 토익 600점을 넘으면 대리를 달 수 있다는 말에 아침부터 열심히 모이는 상고 출신 직원들. 그렇게 아침에는 열의를 불태우지만 업무로 복귀하게 되면 사정이 조금 달라진다. 상사들을 위한 커피뿐만 아니라 상사들이 구두방에 맡겼던 신발, 그리고 각기 다른 담배 종류까지 챙겨줘야 하고 회의실에서 담배 재떨이는 비워줄 수 있지만 회의에는 참여하지 못한 채 병풍처럼 서있어야 하고, 올림피아드 수학천재이지만 유흥업소를 가느라 펑크 난 영수증을 처리해야만 하는 그들. 영화 속에서 이 세 명은 삼진이란 그룹에 속해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이 삼진에 속하지 못한 주변인이나 다름없다. 이들은 실질적으로 업무에 바로 들어갈 수 있는 유능함을 갖고 있지만 상고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무도 실무를 하지 못한다. 이들은 단순히 삼진에서만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삼진 밖에서도 삼진과 구분된다. 페놀 사건이 터진 후 직원들을 심문하던 검사마저도 자영을 그저 담배 심부름시키는 '아가씨'로 치부하고, 서울대학교 검사 센터에 간 자영이 정보를 얻기 위해 명함을 내밀었어도 교수가 자영을 믿지 못하고 회사로 직접 전화를 걸어 확인하려고 하자 그 명함을 낙아채듯이 들고 도망가버린다. 겉으로는 항상 선배님이라고 하면서 생글생글 웃던 후배인 대리도 자영이 자신에게 위협적인 질문을 던지자, 존대를 버리고 험악한 태도로 그녀를 대한다. 그들은 삼진에 속했지만, 그 테두리 안에서 보호되지는 못하는 유령이나 다름없는 존재들이었다.


이러한 구분은 영화를 이끌어 나가는 주요한 원동력이 된다. 처음에는 이들이 얼마나 이 세계 속에서 차별을 받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지만, 나중에는 이들이 이 세상 속에서 구분되어 있기에 세상의 관성에 물들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영의 오지랖이 있었기에 공장에서 페놀을 몰래 방류했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보람의 두뇌가 있었기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를 발견했다. 실마리가 보이지 않던 순간 실질적인 조언을 해주는 유나가 있어 이들이 작전을 짜고 뭉칠 수 있었다. 처음에 이들은 자신이 명분상 속해있는 곳에 어떻게든 '진정한 구성원'이 되고 싶어 했지만, 하나둘씩 회사의 가려진 진실을 알게 되면서 회사가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좋은 곳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좌절의 순간을 겪고 나서는 자신들의 머리 위로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이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하지만, 거기서 그들은 안주하지 않는다. 인간이기에 잠깐 동안 절망할지언정,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세상과 그들이 구분되는 지점이다. 세 명이서 할 수 없다면 다른 상고 출신 직원들과 다 같이 모여서, 그것이 안된다면 회장을 동원해서, 그것이 안된다면 다른 주주들을 동원해서 어떻게든 그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모두 해내고 만다.


이것은 마치 "세상은 점점  나빠지는 걸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인 것만 같다. 모든 것이   좋아 보이고 어두컴컴해 보이는 터널 속에서  어둠에 녹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과 함께 손을 잡고 나아가는 . 세상이 점점  좋아지기는 힘들더라도, 더욱 나빠지게 하지 않기 위해서 '' 물들어 혼자 가지 않고 서로의 도움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 이런 희망을 가득 심어주는 엔딩은 현실적인 초반 묘사와 달리 모든 것이 쉽게 해결된 것처럼 보여 맥이 빠지는 느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지지하고 싶은 것은,  어떤 어려움이 온다고 하더라도  영화의 메시지를 기억한다면 우리는 마냥 주저앉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의 '잘못된 것' 구분되어 서로의 손을 잡으면서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앞으로  나빠지지 않을 세상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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