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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희운 Dec 27. 2020

만날 수 없는 시대 속 희망이란

<미드나이트 스카이> 단평 

※ 본 리뷰에는 <미드나이트 스카이>의 결말 및 주관적인 평이 담겨 있습니다. <미드나이트 스카이>를 관람하고 읽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조지 클루니가 연출한 <미드나이트 스카이>가 넷플릭스를 통해 12월 23일 공개되었다. <미드나이트 스카이> 속 멸망의 위기에 처한 지구의 모습은 코로나가 창궐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여러모로 유사한 풍경을 자아내는 것 같이 보인다. 언제 닥칠 줄 모르는 위험을 피해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의 모습은 코로나 발병 초기 해외에서 발이 묵여있다가 전세기를 타고 국내로 돌아오는 자국민들의 모습과, 모든 사람들이 위험에서 대피한 뒤 홀로 남아 밥을 먹고 있는 어거스틴의 모습은 연말임에도 서로 함께 모여 만남을 가질 수 없는 요즘 시대 사람들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비록 지금 뚜렷한 멸망의 징후가 보이지는 않더라도, 어쩌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우리의 끝이 이르게 다가와있을지도 모른다는 현실과의 접점을 자아내며, <미드나이트 스카이>는 시작된다.  


<미드나이트 스카이>는 멸망을 다룬 영화들 중에서도 가장 잔잔한 흐름에 속하는 편이다. 여러 영화가 섞였다는 누군가의 평처럼 독창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설원에서 잔잔하게 펼쳐지는 끝이 없는 절망의 모습은 일반적인 영화 속에서 보이던 모래사막 속 삭막한 재난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며 묘한 이질감을 선사한다. 모두가 지구의 멸망을 피해 떠난 기지에 홀로 남아 병으로 인해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있던 어거스틴은 미처 대피하지 못했던 어린 여자아이 아이리스를 발견한다. 홀로 남는 것을 항상 선택해왔던 어거스틴에게 아이리스는 귀찮고 번거로운 존재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거스틴은 자신의 곁에 있어주는 아이리스에게 점점 더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영화 속에서 새로운 전환점이 생기는 시점은 어거스틴이 유일하게 남아있는 우주선 에테르를 발견하면서부터이다. 지구가 멸망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어거스틴은 우주선과 통신을 시도하지만, 자신이 있는 기지에서는 에테르에게 어떠한 연락도 취할 수 없다. 결국 어거스틴은 지구가 멸망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어린 아이리스를 데리고 에테르에게 연락을 취할 수 있는 하젠 호수로 먼 길을 떠나기 시작한다. 사실 과거 속에서도 비치는 것처럼 당장 눈 앞에 있는 자신의 일밖에 집중하지 못하는 어거스틴이 목숨을 걸고 하젠 호수로 가는 지점은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야 비로소 드러난다. 


몇 번을 죽을 뻔한 위기에서 벗어나 드디어 하젠 호수로 도착해 에테르 호와 연락을 취하는 어거스틴. 어디와도 연락이 닿지 못하다가 드디어 지구의 현실을 알게 된 대원들은 깊이 좌절한다. 이들 중 두 명은 자신들이 발견한 사람이 살 수 있는 행성으로 돌아가려고 하고, 다른 두 명은 다시 지구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한다. 이러한 대원들의 선택과 어거스틴이 하젠 호수로 간 선택은 모두 '인간성'이라는 동일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의 행동은 모두 생존이라는 측면을 생각했을 때 절대 합리적인 것이 아니다. 생존을 위해서였다면 어거스틴은 어떻게든 자신이 있던 곳에 머물러야 했고, 두 대원들은 이미 멸망에 다다라 아무도 살아있는 확률이 없어 보이는 지구에 내려가지 말아야 했다. 하지만, 이들은 인간이기에 자신들의 생존을 우선시하지 않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을 택했다. 아무런 희망도 없었지만 어거스틴이 자신이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딸을 위해 어린 시절 딸의 환상이라는 희망을 만들어 내서 어떻게든 지구 밖에 있는 딸에게 새로운 삶이라는 희망을 주고 싶었던 것처럼, 기다리고 있겠다는 가족의 메시지를 받고 어딘가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가족을 위해 떠나는 것처럼, 임무 중 사망한 대원을 집으로 돌려보내 주기 위해 친구를 따라 지구로 내려가는 것처럼, 이들은 삶을 영위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을 택했다. <미드나이트 스카이>는 한 밤 중 어두컴컴한 하늘 아래 내가 서 있다고 해도 내 존재는 지워지지 않는 것처럼 멸망이라는 어둠 속에서도 희망이라는 빛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서정적인 화면 속에서 덤덤하고 잠잠하게 그려낸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미드나이트 스카이>의 단점이 단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미드나이트 스카이>의 연출은 그것을 잠잠히 지켜보고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과도하게 활용해 "이 장면에서는 이러한 감정을 느껴야 해"라고 말하고 그것을 바로 느끼도록 유도한다. 모든 영화가 이런 연출이 맞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서정적이고 정적인 분위기로 전개되는 영화 속에서 이러한 연출은 영화를 오히려 더 감상주의에 젖게 만들어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드나이트 스카이>는 꽤나 마음에 와 닿는 영화였다. 익숙해 보이고 지나치게 감상적인 순간들 속에서도 <미드나이트 스카이>가 빛나는 지점은 바로 지금 모두가 힘든 시기에 '멸망의 순간에서도 어디선가는 인간의 존엄성으로 빚어진 희망이 있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이다. 아이리스가 어거스틴과 교신이 끝난 뒤 자신들이 탐험했던 새로운 행성으로 돌아가는 엔딩에서 관객들은 어거스틴이 이미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는 비록 자신의 아버지가 지구에서 홀로 죽었다는 사실을 평생 알 수 없겠지만, 자신의 아버지 덕분에 멸망의 시기를 지나 자신의 남편과 그리고 자신이 뱃속에 품고 있는 새 생명과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시기에 당도한 <미드나이트 스카이>는 어쩌면 마지막 엔딩 속 어렴풋한 희망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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