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그레시브 레츠코 시즌 3] 단평
※ 본 리뷰에는 [어그레시브 레츠코 시즌 3]의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넷플릭스의 다양한 작품들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보는 장르는 표현의 한계가 없는 애니메이션들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애니메이션을 꼽으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어그레시브 레츠코] 시리즈를 꼽을 것이다. 평소에는 아주 고분고분하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OL이지만, 노래방에만 가면 자신의 숨겨진 자아를 꺼내 보이는 '레츠코'. 굉장히 귀여운 외양과 달리 분노의 순간 머리 위로 그려지는 '烈(열)'자와 함께 돌변하는 레츠코 캐릭터는 그야말로 신선했다. 마치 내 이야기와도 같은 뼈저리게 아픈(?) 사무실 성장담이 귀여운 캐릭터들을 통해 그려지면서 오는 묘한 이질감이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고, 매 시즌이 나올 때마다 챙겨보는 작품이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기대만큼은 아니었던 시즌 2를 뒤로 하고 시즌 3가 드디어 나왔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보았던 시즌 3는 결론만 먼저 이야기한다면 시즌 2보다 훨씬 좋았다. [어그레시브 레츠코 시즌 1]에서 가장 좋은 점이 마치 현실 속 내 이야기와도 같은 점이었었는데, 시즌 2에서는 그 느낌이 사라지고 너무 환상 위로 붕 뜬 느낌이었달까. 그렇기에 시즌 3를 보기 전에도 걱정이 많았지만, 그 걱정은 말 그대로 걱정에 불과하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시즌 3의 내용도 사실 현실적인 내용은 아니다. 가상 남친에 빠져 상상 이상의 금액으로 현질을 하게 된 레츠코는 매일 쫄쫄 굶으면서 회사를 다니다가 우연히 들른 음식점에서 주차를 잘못해 뒤에 있는 차를 박아버리고 만다. 당장 점심 사 먹을 돈도 없는 상황에서, 빚을 갚기 위해 레츠코는 사고를 당한 피해자가 제안한 대로 알바를 해서 갚기로 한다. 여기까지는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처럼 보일 것이다. 다만, 레츠코가 하게 된 알바가 언더 아이돌 프로듀서의 경리부장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처음 레츠코가 언더 아이돌 프로듀서의 경리부장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봤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이 시리즈가 또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네'라는 생각이었다. 제트기(!)를 타고 다니는 상상 이상으로 유명하고 부유한 남자 친구를 만나게 되어 은퇴를 고민하는 두 번째 시즌과 별로 다를 것이 없어 보였지만, 세 번째 시즌의 회차가 진행될수록 첫 번째 시즌의 의외성이 점점 더 드러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범한 회사원이 언더 아이돌의 경리부장이 되고, 거기서 더 나아가 자신의 헤비메탈로 언더 아이돌의 센터가 된다는 이야기. 첫 번째 시즌에서는 모든 사람마다 저마다 다른 면이 존재한다는 캐릭터의 의외성이었다면, 세 번째 시즌에서의 의외성은 서로 각자 다른 특성을 가진 것들이 조합되는 이야기로부터 오는 의외성이었다.
[어그레시브 레츠코]에서 레츠코는 평범한 여성이지만, 그 안에는 남들에게 말할 수 없었던 분노를 표현해내는 헤비메탈 스피릿이 존재했다. 자기를 괴롭히는 직장상사와 미묘하게 엿을 멕이는(?) 직장 후배 사이에서 말 한마디 못하고 오로지 노래방에서만 내면의 분노를 헤비메탈로 시원하게 풀어내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레츠코에게 공감했을 것이다. 누군가 마음속에서 분노를 느꼈지만, 표현하지 못했던 그 분노를. 시즌 1에서 레츠코는 이런 의외성으로 신선함을 주었지만, 사실 레츠코는 굉장히 수동적인 캐릭터이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항상 귀를 혹하고 자신의 의견도 있지만 그 의견을 앞에서는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캐릭터. 시즌 2에서도 그녀는 어떤 선택을 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본인의 의지를 갖고 선택을 했다기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두 가지 상황 중 그나마 나은 길을 골랐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시즌 3에서는 완전히 다르다. 그녀는 이제 스스로 선택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비록 타인에게 떠밀려 시작했지만, 그녀는 다른 이의 조언으로 인해 그곳에서 물러서지 않고 스스로 선택해 언더 아이돌 그룹의 운영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한다. 여기서 더욱 놀라운 점은 항상 노래방과 같은 음지의 공간에서만 불렀던 헤비메탈이 드디어 레츠코의 선택으로 인해 양지로 나왔다는 점이다. 프로듀서의 아이디어로 인해 탄생한 이 헤비메탈 아이돌에서 레츠코는 센터로 자리해 비로소 자신의 본심을 이야기한다. 노래 가사처럼 '더럽게 성실하게 매일매일 모범생 적립금을 쌓아왔던 그녀'는 이제 무대 위에서 자신의 억압되어있던 마음을 비로소 털어놓는다. 무대의 첫 시작은 억지로였을지 몰라도, 그녀가 한 번도 양지에서 해보지 못했던 자신의 속마음을 포효하는 순간 이 애니메이션의 제목처럼 진정한 '어그레시브 레츠코'의 탄생이었다.
물론 그 길도 순탄치만은 않다. 회사 동료에게 아이돌 생활을 들키고 자신의 상사에게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하라는 압박을 받게 되고, 기존 멤버가 아니었다 보니 기존 멤버의 팬으로부터 엄청난 악담을 들어아먄 하는 상황을 겪는다. 결정적으로 레츠코는 OTM Girls의 사생팬으로부터 습격을 받아 쓰러지고 이에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이후 완전히 종적으로 감춰버리는 레츠코. 그런 레츠코를 밖으로 나오게 하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레츠코를 좋아했던 아나이가 나선다. 레츠코를 데리고 나와 노래방으로 간 아나이는 세상이 그녀에게 공격적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쉼터가 되어주겠다고 말한다. 사실 이 장면에서 레츠코가 그대로 아나이와 이어졌다면 매우 실망스러운 결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레츠코가 누구인가. 아나이의 말을 듣자 썩은 표정을 지으며, 다시 어그레시브 레츠코로 돌아가는 그. 영문도 모르고 자신에게 선빵을 날린 가해자를 향해 울부짖는 레츠코의 손을 붙잡고 아나이는 되받아치러 가자고 말한다. 이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좋은 장면은 바로 이 장면이었다. 항상 움츠리고 있어야만 했던 레츠코의 분노와 슬픔을 적정선에서 표현해내었고, 더 나아가 피해자가 움츠리지 않고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레츠코의 등을 밀어주었다. 레츠코는 록 페스티벌에서의 무대를 마지막으로 아이돌을 은퇴하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선택을 한다.
그전까지 레츠코는 항상 자기가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자신이 계속 직장을 다니는 것도 적성에 맞는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했었고 결혼 후 그 직장을 그만두게 된다고 하더라도 크게 그 직장에 대해 미련을 갖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시즌 3에서도 레츠코는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한다. 레츠코가 고민했던 내용 중에는 어디에도 자신이 있을 곳이 없다는 내용이 있었다. [어그레시브 레츠코 시즌 3]의 엔딩은 이런 레츠코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디에도 갈 곳이 없다는 것은 어디에도 속할 곳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한다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성실하고 평범한 모범생인 레츠코이지만, 그의 안에는 분노할 줄 아는 부분도 있고 스스로의 끼를 발산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오로지 노래방에서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줄 알았던 25세 레츠코는 이제 드디어 한정된 세상을 부수고 나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진짜 자신으로 사는 것을 선택했다. 이런 레츠코의 선택이라면, 나는 언제든 그 선택을 응원하고 지지하고 이 시리즈를 계속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