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내가 아닌 것들의 이야기' 두 번째 이야기
모든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재능을 갖고 있다. 사람마다 갖고 있는 재능은 참으로 다양해서 어떤 사람이 어떤 재능을 갖고 있는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때도 있다. 또한 사람마다 재능이 드러나는 시기는 모두 달라서 어떤 사람이 언제 그 재능을 꽃피울 수 있는지 예측조차 되지 않을 때도 있다. 어떤 이들은 조금 빠르게 재능을 파악하여 굉장히 어린 나이부터 그 재능을 꽃피우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자신의 재능을 비로소 알아차려 나이가 어느 정도 든 뒤 그 재능을 펼쳐 보이기도 한다. 나 같은 경우 조금 이른 시기에 재능을 알아차렸지만, 그 재능의 방향성을 잡아가는데 시간이 걸린 케이스라고 말할 수 있다.
내가 갖고 있는 재능은 '글을 쓰는 것'이다. 사실 글을 쓰는 것에도 다양한 분류가 있는데, 어린 시절에는 글 쓰는 것=무조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만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렇기에 글을 쓸 때 창작하는 것에 많이 집중을 했었는데, 어린 시절에는 소설을 써보자고 마음이 막 일었다가도 소설을 끝까지 완성시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첫 시작은 항상 흥미를 갖고 시작하다가도 거의 한 두 페이지 정도만 쓰고 나면 소설을 쓰는 것에 대한 흥미가 급격히 떨어지고 지쳐서 '이걸 어떻게 완성시키지?'하고 쉽게 포기를 하고는 했었다.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하는데 국한되었던 글쓰기로 인해 '내가 정말 글에 재능이 있는 것이 맞나?'하고 나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에 대해 의심하고 자신감이 많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조금 더 크고 나서 대학교 입시를 준비할 무렵, 국어 선생님으로부터 우연히 추천을 받아 영화과 입시를 준비하게 되었다. 학교마다 다르기는 했지만 영화과 입시는 주로 단편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것이었는데, 이 역시 마찬가지로 '창작'을 해야 하는 것이다 보니 여전히 글을 쓰는 것은 내게 있어서 즐겁지 않고 주눅 들게 되는 일이었다. 그 당시 내가 쓴 글에 대해 받았던 피드백은 "어딘가 모르게 답답해 보인다"는 평이 대부분을 차지했었다. (누군가는 내 글을 보면 화장실을 갔는데 볼일(?)이 잘 나오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피드백을 받은 적도 있었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내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보니 나의 재능에 대한 믿음은 점점 사그라들어만 갔었다.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만 집착했던 그 시절, 내 재능에 대한 의심은 내 존재 가치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졌다. 재능을 나 자신의 존재와 연결 짓는다는 것이 과장되어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게 있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쓸모 있게 만드는 조건 중 하나는 바로 나의 재능이었다. 나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그 당시의 나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내가 갖고 있는 재능을 잘 펼쳐 보여야 하는 사람이었고, 그러한 가치들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면 나는 한없이 작아지는 사람이 되고만 했었다.
내가 쓰는 글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입시로 나를 힘들고 어렵게 했던 대학교에서였다. 대학교를 합격한 후 들었던 수업 중 영화를 보고 레포트를 써야 하는 수업들이 있었는데, 그 수업들에서 내가 쓴 레포트를 보고 교수님들께서 좋은 피드백을 주셨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나는 글을 쓰는 것이 단순히 '창작'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비평'이라는 다른 영역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수업들을 재미있게 들으면서 나중에는 대학원 진학까지 결심을 하게 되었다. (물론 논문은 완전히 또 다른 영역이었지만 말이다.) 이후부터 다른 이들이 만들어낸 창작물을 보고 내 나름대로의 시선을 담은 글을 주로 쓰게 되었다. 이러한 글들은 모두 100% 완전한 창작은 아니고 다른 이들이 만들어낸 창작물에 기대고 있는 글들이지만, 그 작품을 보고 다른 사람들과 내가 다르게 느낀 감정들을 온전히 써 내려가고 있다는 점에서 이제야 내가 쓰는 글의 유형이 완성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내 재능, 내가 쓴 글들과 내 존재를 연결 지어 생각한다. 어떤 공모전 같은 것에 도전했을 때 그 공모전에 당선되지 못하고 떨어졌을 때의 감정은 단순히 내가 그 공모전에서 추구하는 방향성과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그치지 않고 나 스스로의 재능을 의심하면서 내가 가치 있는 존재인가라는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사실 내 재능이 어떻게 보면 공모전에 도전하기에는 부족했을 수도 있다. 거기까지 도전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을 하고 정진을 하면 되는 부분들을 내 안에서 우울감으로 깊이 파고 들어가 내가 어떤 것에 도전을 하려고 해도 어차피 내가 해봤자 안될 텐데라는 생각으로 쉽게 방향성을 돌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 자신을 깊이 좌절시키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재능의 종류가 다른 것처럼 각 사람들이 갖고 있는 재능의 한계란 분명 존재할 것이다. 어떤 이들이 너무나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어서 금방 유명세를 탈 수 있지만, 어떤 이들이 갖고 있는 재능은 아직 덜 다듬어지거나 상대적으로 다른 이들의 재능이 압도적이라 그 재능이 빛을 발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재능의 한계가 정해져 있다고 해서 이것이 절망적이고 존재 가치의 빛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하고 싶다. 재능의 한계를 인정하고 이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온전히 한 개인이 만들어나갈 수 있는 몫이다. 재능의 한계를 인정하고 나의 존재와 분리시킬 때, 내가 갖고 있는 재능을 객관적으로 볼 때,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스스로의 재능을 펼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들이 눈에 보인다. 이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방법을 찾아 다른 방식으로 새롭게 도전할 수도 있고, 스스로는 알아채지 못했던 새로운 재능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재능이 완벽하다고 해서 한 개인의 존재가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다. 재능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당신은 그 자체로 이미 완전한 존재이다. 그렇기에 스스로 재능이 부족한 지로 인해 고민되고 마음이 어려워질 때, 자기 자신이 재능과 자신의 존재를 연결 지어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해주고 싶었다. 다른 사람에게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