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회사'/ '일'

'나와 내가 아닌 것들의 이야기' 첫 번째 이야기

by 송희운


20, 30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내는 곳은 어디일까. 그것은 굳이 오랜 시간 동안 생각하지 않아도 금세 답을 찾을 수 있다. 많은 이들이 먹고살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해 삶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 출근하는 순간부터 퇴근하기 전까지 지금 이대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내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하는 곳, 회사. 20, 30대의 사람들이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보내는 회사에서는 일을 하고 있다 보면 어느새 '나'는 자연스럽게 회사 속으로 녹아버리는 것만 같다.


대부분 직장인들 인생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듯한 회사에서 나와 회사, 일을 분리하지 않고 사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우리의 삶은 회사, 일과 정말 밀접하게 붙어있는 것처럼만 보인다. 사실 '나와 회사, 나와 일을 분리하지 않고 사는 것이 가능할까?'에 대한 질문의 답은 이미 나와있다. 하지만, 이 "가능하다"라는 대답을 실제로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부분 자신과 회사 그리고 자신과 일을 동일시하고 있는 것조차 모르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인지조차 되지 않을 때도 많고 설사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실제로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흔히 말하는 뼈를 깎는 노력보다도 훨씬 더 많은 정신과 에너지를 소모하는 엄청난 노오력이 필요하다. 나처럼 무언가를 이루는 '성취'가 중요한 사람은 특히나 그 일련의 과정들이 힘에 겨울 때가 많았다.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해서 일을 시작한 지 총 10년 차 정도 되어가는데, 아무리 오랜 시간 동안 일을 했어도 나라는 존재와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 내가 하는 일을 분리하는 것은 아직도 내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그럼 나는 어떻게 나와 회사, 나와 일을 연관 지어 생각할까. 우선 나와 '회사'간의 관계는 내가 얼마나 좋은 회사를 다니고 있는지와 연관된다. 내가 얼마나 유명한 회사를 다니고 있는지, 내가 얼마나 높은 직급을 받고 있는지 등등등. 회사 내에서 나를 둘러싼 수많은 조건들은 나라는 존재를 더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요소들이 된다. 내가 얼마나 좋은 회사를 다니는지에 따라, 내가 얼마나 좋은 연봉을 받고 있는지에 따라, 내가 얼마나 높은 직급을 달고 있는지가 내가 이 회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를 알 수 있는 기준점들이 되고, 그러한 기준점들이 내 마음속에서는 나라는 존재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는 기준으로 자리하게 된다. '나'같은 경우, 서른 살도 되기 전에 과장을 달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과장'이라는 직함을 표면적으로는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속마음에서는 내가 능력이 좋고, 회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이른 나이에 '과장'을 달 수 있었다고 생각했고 겉으로는 크게 내색하지 않았지만 이 직급을 단 것에 대해서 나도 모르게 자부심을 느끼고 은근하게 자랑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뒤돌아보고 나니 온전히 나의 중요성으로 인해 과장 직급을 단 것이 아니라 회사가 나보다 더 경력이 있는 사람을 뽑는 것이 어려워 나에게 무리하게 직급을 주었다는 것은 깨달았다. 그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보게 되자, 그것이 남들의 눈에는 얼마나 가소롭고 웃겨 보였을까 생각이 들면서 민망해지기도 했다.


나는 특히 다른 어떤 것보다도 나와 '일'과의 연관성에 크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 다른 사람들보다 평가에 예민한 타입의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업무와 나를 구분 짓는 것이 정말 어려웠다. 누군가 나에게 일을 잘한다고 해서 칭찬을 하면 그 자체로 너무나 기분이 좋았고(물론 기분이 좋을 수는 있겠지만, 나는 다른 이들보다 더 크게 강하게 기분이 좋고는 했다.) 내가 진행하고 있는 일에서 어떠한 이슈가 발생하면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어마어마하게 받았다. 특히 외부에서 발생한 요인으로 인해 벌어진 이슈가 아닌, 내가 실수를 해서 이슈가 발생하게 되었을 때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엄청난 스트레스에 휩싸였다. 사실 일을 하면서 언제든지 이슈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보니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면 어떻게든 이슈는 해결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해서 해결되지 않은 이슈는 없었지만 이슈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누군가의 피드백을 듣는 것이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안 좋은 피드백을 받게 되면 기분이 안 좋아지는 것은 사람이라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나는 내가 한 실수와 나 자신의 존재를 다른 누구보다도 강하게 결부시키는 사람이었다. 누군가 내게 이러한 일이 벌어지게 된 것에 대해서 "왜 이렇게 했어요?"라고 묻는다면 "아 이것은 제 실수이고, 앞으로 이렇게 해서 이렇게 해결을 해보려고 합니다."라고 말하고 해결 방법에 대해 제시를 한다면 간단하게 끝날 일이나 나는 누군가 저 질문을 할 때 소위 멘붕에 빠져버리고 만다.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끊임없이 되새기면서 이슈를 해결하게 위한 첫 단추를 꿰기 전, 엄청나게 마음을 졸이고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으려고 노력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아니 왜 저렇게까지 안절부절못하지?' 할 정도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나의 마음속에서는 한 마디로 전쟁이 치러지고 있었다.


이를 해결하는 답은 이미 머리로는 잘 알고 있다. 나와 회사 / 나와 일을 구분하여 바라보고 내가 지금 사람들에게 듣고 있는 피드백이 사람들이 나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피드백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다니는 회사,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피드백을 준 것이라는 구분하는 것. 하지만 이 답을 얻기까지 그리고 이 답을 직접 실행하기 위해서 머리에서부터 마음으로 내려오는 길은 멀었고 이 길을 가기 위해 넘어서야 하는 과정들은 내게 극악의 난이도였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다른 이들로부터 도움을 받고 스스로 마음을 다듬은 뒤에서야 겨우 멘붕 하지 않고 '아 내가 또 내 존재를 회사 / 일과 연관 지어 생각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는 것은 아직도 이슈가 터졌을 때, 아무렇지 않은 척 해결하는 것이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아마도 어쩌면 내가 회사를 다니는 동안 평생 겪어야 할 일인지도 모르겠다.


최근 들어서는 회사에서 이러한 이슈가 발생했을 때 최대한 내색하려 하지 않았으나,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티가 났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아직도 나는 과정 중에 있는 사람인데 어떻게 하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조금씩 고쳐나가려고 하는 내 모습만으로도 위안을 삼고 싶다. 그렇기에 나와 똑같은 경우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다니는 회사, 직급이 초라하게 보일 때 혹은 업무를 하던 중 어떤 이슈가 벌어져서 상사나 다른 이들이 말하는 부정적인 피드백을 듣는 것이 너무 괴로울 때 나의 이야기를 한 번쯤은 떠올려보면 어떨까. 모두 다 같을 수는 없겠지만 누군가가 '사람들이 회사 /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나도 이 사람처럼 회사 / 일과 나를 동일시해서 그것을 내 존재에 대해 평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힘들었구나'라고 잠깐이라도 생각하게 된다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 아무리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라고 해도 그곳과 그곳에서 하는 일이 당신의 존재 자체를 결정지을 수 없다는 것을 잊지 않게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