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나이'

'나와 내가 아닌 것들의 이야기' 세 번째 이야기

by 송희운


당신이 만약 새로운 사람을 소개받는다고 가정해보자. 상대방의 이름, 직업, 사는 곳 등등과 더불어 가장 필수적으로 따라오는 질문은 무엇일까? "그분 나이가 어떻게 돼?" 혹은 이런 질문을 하기 전 주선자가 당신에게 상대방을 소개해주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나이를 이미 이야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어떤 사람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 나이는 이름처럼 없어서는 안 될 기본 정보 중의 하나이다. 한국에서 특히 나이는 사람을 대할 때 굉장히 중요한 지표 중 하나이다. 직장에서든 혹은 어떤 사적인 모임에서든 나이를 알고 나서부터 그 사람에게 사용해야 할 말들이 달라지기 때문에 일단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 사람의 나이부터 파악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하다. 누군가를 존중한다는 개념에서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나이는 개인의 가치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단순히 직장에서 어떤 사람을 채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만이 아니라 "나이에 맞게 행동해"라는 말처럼 한 개인이 사회에서 어떤 행동을 하기 위해 용인될 수 있는 나이가 어디까지인지에 따라 사회에서 받는 대접 혹은 대우가 달라지는 것이다.


때로 나이는 사람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십몇년 전 내가 대학교를 다닐 때 많이 들었던 "여자 나이 25살은 크리스마스 케이크와 같다"는 말이다.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더 이상 특별하지 않고 쓸모 없어지는 크리스마스 케이크처럼 여자도 25살이라는 나이가 지나면 예전 같은 가치(?)는 없어지고 별 볼 일 없어진다는 의미로 많이 사용되고는 했다. 나이가 들수록 여자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비하하는 말인데 처음에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무엇이 잘못된지도 모른 채 '아 여자는 25살 때 가장 빛나는구나'라고 단순히 생각을 하고 끝내고는 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25살이란 나이가 다가올 때 나도 모르게 '25살이 넘어가는 순간 내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닐까'라고 허무맹랑한 결말을 상상했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이것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생각인지 알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저 말 자체가 하나의 진리라고 믿었던 시절이었다. 25살이란 나이가 객관적으로도, 상대적으로도 얼마나 어린 나이인지도 모른 채 나이가 곧 내 가치를 증명해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만 같아서 아직 내가 사회에서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초조하고 부끄러워지고는 했었다. 아니 애초에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서 나이는 어떤 가치와도 연결되지 않는 사람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것을 깨닫기에는 고리타분한 시대였다.


사실 나이는 딱히 어떤 노력을 하거나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를 나라는 존재와 연결시키는 것이 나와 내가 아닌 것들의 수많은 요소들 중에서 가장 웃기고 말이 안 되는 일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막상 사회로 나가게 되면 이러한 사실 자체를 망각해버리기 쉽다. 26살쯤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에는 "이 정도 나이에 이 일을 시작하는 것이 너무 느린 건 아닐까?"라고 눈치를 보았고, 이제는 "이 정도 나이가 되어서 이러한 일조차 해결을 못해서 어떻게 하지"라고 스스로를 위축시키게 만들기도 한다. 단순히 내 무의식 속에서만 벌어지는 일들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사회에서 정해놓은 나이 대에 충분히 해내야 한다고 하는 일들을 하지 못하게 될까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다.


나이는 단순히 회사를 다닐 때만 적용되는 문제는 아니었다. 나 스스로 무언가를 새롭게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내 나이가 이런데 해도 되는 것일까? 누군가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를 위축시키게 만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정도가 나이가 되었으면 취직해야지, 이 정도가 나이가 되었으면 이제 결혼해야지 등등과 같이 사회는 각 나이대의 사람이 꼭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들을 만들어 내 각 단계들을 이뤄내지 못했을 경우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된 사람들로 만들어버리는 경우들이 많았다. 이따금 온라인 상에서 '30살인데 결혼하지 못한 나', '20대 후반인데 친구가 없어요'라고 올라오는 수많은 글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 혼자만 그런 생각을 갖는 것이 아니구나라고 안심하게 되다가도 대체 나이가 무엇이길래 사람들이 나이라는 기준점을 두고 고민을 하게 만드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각 나이대마다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은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일과 성인이 할 수 있는 일을 구분 짓는 요소일 뿐, 지금 같은 시대에 성인이 된 모든 이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기준점은 아닌 듯하다. 나이는 정말 말 그대로 나이일 뿐 나에 대한 가치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없다. 그렇기에 나 자신도 나이가 관계에서 우위를 선점하는 기준점이 되지 않도록 말 그대로 '꼰대'가 되지 않도록 무수히 돌아보려고 한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나 자신의 존재 가치가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내가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함부로 조언을 하거나 평가를 할 수 있는 지위를 얻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무수히 내 안에서 되새김하려고 한다. 이를 반대로 생각한다면 누군가 나에게 조언을 가장한 훈수를 둔다고 해서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 내가 어떤 것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사회가 정한 안전한 테두리에서의 나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정해나가는 것이다. 이것을 조금만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내가 나이에 연연하지 않고 해 볼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후회에 묶여 지금 이 나이를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 내 인생에서는 '나 자신'이 제일 중요하고 내게 중요한 것은 내 나이가 아니라, 어떤 시기에 내가 무엇을 하고 싶느냐가 중요하니까. 그러니까 당신에게 나이가 많고 적고를 이야기하며 당신이 하려고 하는 일을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있다면 가볍게 무시하시길. 그 사람은 '나이'로만 자신의 가치를 판단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