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내가 아닌 것들의 이야기' 다섯 번째 이야기
개인 간의 관계에서 '나이'는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정의하는 지표가 되지만, 사회는 이러한 '나이'에 각 나이에 따라 수행해야 할 통과의례들을 부여한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는 것이 바로 '결혼'이다. 매해 명절을 맞이하면 일가친척들이 서로 모여 근황 토크를 하는데, 그중에서도 결혼이란 주제는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제는 "결혼 언제 하니?"라는 질문을 하면 유머를 가장한 조롱으로 취급되어 명절 잔소리 메뉴판에서 가장 비싸게 책정되는 질문 중 하나지만, 그 이전에 결혼은 적정 나이가 다다랐으면 꼭 수행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의식 중의 하나였으며 그 의식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때 받는 눈초리는 마치 이 사회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마련이었다.
결혼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희한하게도 결혼은 앞서 말한 것처럼 꼭 나이와 결부 지어 거론된다. 시대가 많이 바뀌긴 했지만, 보통 어른들이 "이 시점에는 꼭 결혼을 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시기는 서른에서 서른 다섯 즈음이다. 보통 서른이란 나이는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그 시기쯤에는 무언가를 이뤄냈어야 하는 나이로 언급되고는 하는데, 그 시기는 대학을 졸업해서 취업을 하고 어느 정도 직장에서 자리를 잡은 뒤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게 되는 결혼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내 경험상 주변의 지인 및 친구들이 결혼을 하게 되는 시점은 빠르면 27살에서부터 30살 즈음이 가장 많았다. 한창 결혼 적령기(이 결혼 적령기라는 말도 조금은 웃기는 말이지만)에 접어선 사람들이 무수히 결혼을 하는 것을 보면서 이전까지 '언젠가는 결혼하겠지'란 막연한 생각이 '나도 빨리 결혼을 해야 하나?'라는 초조한 감정으로 바뀌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러한 생각의 이면에는 '남들 다 하는 결혼, 내가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가장 컸고, 사회가 규정한 시기에 결혼을 하지 못하게 되면 내가 사회에서 제대로 된 사람임을 증명하지 못하는 것만 같은 압박이 느껴졌다. 딱히 그 시기에 결혼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이러한 마음 이면에는 내가 영영 결혼을 하지 못한다면 사회에서 뒤처져 쓸모없는 존재가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내 인생에서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사건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마치 내가 세상에 태어났으면 꼭 이뤄내야 하는 성과같이 느껴져 이 성과를 이뤄내지 못했을 때 결국 사회에서 '루저' 취급을 받게 될 것 같은 공포가 나를 사로잡았었다.
하지만, 막상 결혼하고 나서 이러한 모든 생각들을 뒤돌아보니 '결혼'이라는 것은 어떤 내 상태의 변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물론 결혼을 하면 내가 몇십 년 동안 살아왔던 모든 삶이 다른 방식으로 바뀌는 것은 맞다.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마치 무로 자르듯이 바로 다음 날, 남편과 함께 살 집으로 이동하였고 부모님과 맞춰졌던 생활 패턴은 이제 완전히 달라져 모든 생활 패턴을 남편과 서로 맞추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결혼한 지 약 2년이 되어가는 지금은 오히려 부모님과의 생활이 낯설고 남편과 함께 하는 생활이 더욱 익숙하다. 결혼하기 전 가장 많이 신경 쓰였던 결혼식도 코로나로 인해 힘들게 하기는 했지만 신혼여행도 해외로 다녀오고 결혼을 하기까지의 모든 과정들은 생각보다 무난하게 잘 지나왔던 것 같다. 모든 것을 스무스하게 끝내고 나니 이제야 '결혼'에 대해 가졌던 모든 생각들은 부정적인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확실히 겪어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긴 한데 이러한 것들을 결혼하기 전에 깨달았다면 조금은 마음이 편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지금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그때 당시 내가 고민했던 모든 것들이 쓸모없거나 필요 없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모든 고민들의 중심에는 항상 그래 왔던 것처럼 '나 자신'이 있었다. 내가 사회가 정한 적정 시기에 결혼을 못하면 남들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내가 한 결혼식으로 인해 남들이 수군거리면 그것이 '나'에 대해 뭐라고 하는 것처럼 들릴까 봐 하는 마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에 나 스스로의 존재를 연결 지어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이 주관적으로 봤을 때는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객관적이 되니 그제야 얼마나 기이한 일인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모든 수많은 고민들이 지나가고 그 사건을 직접 몸소 겪고 나서야 이 모든 고민들이 어쩌면 '나'라는 존재를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수없이 헤매었던 미로 중의 하나는 아니었을까 비로소 생각할 수 있었다.
지금 내 주변에는 결혼을 한 사람도 있고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옛날 같은 시대였다면 꼭 결혼을 해야 제대로 된 사회 구성원 중 하나로 인정받는 시기였지만, 그것은 너무 오래 전의 이야기이다. 결혼을 하던 혹은 하지 않건 그것은 말 그대로 개인의 사적인 영역에 불과하며 이 '결혼'으로 인해 한 개인이라는 존재가 완전히 뒤바뀌거나 달라질 일은 전혀 없다. 결혼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과 어떻게 결혼에 이를 것인지 그 과정도 중요하겠지만 내가 갖고 있는 본질을 바꾸지 않는 선에서 결혼을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다른 이들의 시선 때문에 결혼을 하고 싶은 건지 본인이 본인 스스로의 진짜 마음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이 질문들을 거치고 난 뒤, 정말로 결혼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그것이야말로 사회가 결혼을 하라고 정해주는 마음이 아닌, 정말 본인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이라는 것이 내 의견이다. 한 개인을 둘러싼 모든 환경이 바뀌지만, 한 개인이 갖고 있는 본질 즉, '나'라는 존재가 갖고 있는 특성을 바꾸지 않고 할 것. 이것이 '결혼'에 대한 나의 정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