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하는 것들에는 출구가 없다.

욕망으로 둘러싼 <특별시민>의 캐릭터들과 우리의 현실에 대하여

by 송희운

** <특별시민>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를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슈라면 ‘대선’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바로 작년까지만 해도 우리는 한 나라를 대표하는 책임자를 뽑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막대한 임무였는지 뼈저리게 느꼈기에, 모두들 “이번 선거에서만큼은 제대로 된 대통령을 뽑아야겠다”는 마음을 갖고 선거에 임할 것이다. 이렇게 한 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선거’가 더욱 특별해진 상황 속에서, 그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아주 특수한 상황 속에서 영화 <특별시민>이 개봉했다.



사실 <특별시민>에서 보이는 것들은 우리가 이미 현실 속에서 너무나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에 그다기 신선할 것도, 새로울 것도 없다. 화려해 보이는 선거판 뒤에 숨어있는 치열한 투쟁들. 너무나도 달콤한 ‘권력’을 움켜쥐기 위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피를 뒤집어 쓰며 역사를 만들어내고 있는가. 이는 굳이 이 <특별시민>을 통해 곱씹어보지 않아도 우리가 두 발을 디딛고 서 있는 땅에서 얼마든지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딱히 새로운 것도 없는 이 시대에 왜 지금 당도했을까.





먼저 이 질문을 하기 전에 이 영화만이 갖고 있는 특별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특별시민>이 일반적인 혹은 대중적이라 지칭되는 다른 한국영화 다른 지점은 뻔하디 뻔한 권선징악의 구조가 아니라는 점, 그리고 다른 영화와 달리 캐릭터들 간의 충돌이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점이다. 그 정점에 서있는 두 캐릭터는 바로 영화의 메인 캐릭터인 변종구와 그의 선거 홍보팀에서 일하는 박경이다.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던 젊은 피 박경은 자신이 존경했던 정치인 변종구의 청춘콘서트에 참석하여 위선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그를 향해 묵직한 팩트를 던진다. 그 팩트 속에서 그녀의 빛나는 재능을 알아본 변종구는 자신의 선거 홍보팀에 그녀를 투입시킨다. 열정과 꿈으로 가득 찬 새파랗게 젊은 청년이 정치판에 뛰어든 뒤, 그 정치판이 얼마나 더러운지 현실을 깨닫게 된다는 것. 이 흔한 스토리라인 속에서 변종구, 박경 이 두 캐릭터는 다른 캐릭터들이 범접할 수 없을 만큼 뜨겁게 빛이 나고 있다.



어느 영화 든 캐릭터 간의 충돌이 있어야 스토리가 진행될 수 있다. 이 불가피한 충돌 속에서 캐릭터를 눈부시게 만드는 공은 거의 배우들의 몫이라 할 수 있는데, 이 <특별시민>을 야생적인 에너지로 밀고 나가는 것이 바로 배우 최민식이 가진 힘이다. 변종구라는 캐릭터는 사실 특별할 것이 없는 캐릭터이다. 오로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이용하는 정치인. 언뜻 입체적인 인물로 보이지 않던 캐릭터는 최민식이라는 배우를 만나는 순간부터 아주 특별해지는데, 최민식은 변종구 캐릭터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하여 그가 가진 ‘욕망’ 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이 욕망은 변종구가 죄를 저질렀을 때 특히 빛을 발한다. 사실 변종구는 그렇게 비이성적인 인간은 아니다. 단지 그 욕망이 이성의 모든 것을 뒤덮어버릴 뿐이다. 그렇기에 그가 딸의 차를 몰고 나갔다가 음주운전으로 탈영병을 치어 죽였을 때도, 그가 그 죄를 자신의 딸에게 덮어 씌울 때도, 딸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찬 자신의 아내를 대할 때도 그의 눈빛은 광기 어린 미친 인간의 눈빛이 아닌 오로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맹목적인 눈빛일 뿐이다. 최민식은 이 변종구라는 인물을 표정 하나, 주름 하나에 모두 담아낸다. 우리는 <특별시민>을 보는 순간 이 영화가 다른 누구를 위한 영화가 아닌 오로지 최민식을 위한 영화인 것을 알고 있지만, 우리는 배우 최민식이 아닌, 변종구라는 캐릭터를 뇌리 속에 남기게 된다. 자기 자신의 모습을 지우고 변종구가 된 최민식은 이 캐릭터를 대체할만한 다른 배우를 상상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마치 <파이란>의 송해성 감독이 “눈가의 주름조차 연기의 디테일로 사용하는 배우”라고 지칭했던 것처럼 최민식은 눈가의 주름까지 멈출 수 없는 욕망으로 뭉친 변종구가 되어 살아 숨 쉰다.



영화 속에서 ‘변종구’라는 인물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지독한 인물이지만, 생각보다 영화 속에서는 그렇게 악한 인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평소에 쉽게 볼 수 없었던 정치인들의 ‘인간적’인 모습들이 보인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소에 다양한 매체와 언론을 통해서 정치인들의 가식적인 모습만을 본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누군가에게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다분히 ‘의도’가 점철되어 있는 친절.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그 친절의 가면을 벗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특별시민>에서는 이러한 ‘맨 얼굴’을 쉽게 볼 수 있다. 영화의 첫 시작 청춘콘서트에서 박경에게 질문을 받고 순간적으로 얼굴이 어두워지는 모습이라든지, 양진주 후보와 엘리베이터 앞에서 신경전을 벌인 뒤 순식간에 표정이 변하는 모습은 우리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고 실제로는 볼 수 없었던 모습들이었다. 최민식은 그런 순간의 표정 변화를 능숙하게 만들어낸다. 굳어진 그의 얼굴 속에서 우리는 정치인 ‘변종구’의 진짜 민 낯을 접하고, 그 순간적인 표정 변화 속에서 우리는 그가 드러내지 않았던 본심을 읽는다. 그의 표정 변화에서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정치인들의 진짜 얼굴을 자연스럽게 연결 지을 수 있게 된다.





<특별시민>은 변종구라는 인물의 욕망 일대기이면서도 동시에 정치에 입문했다가 현실에 눈을 뜬 젊은 세대 박경의 욕망 좌절기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영화가 흥미로워지는 지점들은 주로 변종구과 박경이 부딪히는 순간들인데 이는 변종구가 쉽게 유형을 찾아볼 수 있는 스테레오 타입인 캐릭터인 것과 달리 박경은 한국영화 내에서 비슷한 유형을 찾아볼 수 없는 캐릭터라는 지점에서 그러하다. 말 그대로 ‘정치 초짜’는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그 캐릭터가 여성일 경우는 보기 드문 경우이기 때문이다. <특별시민>이 빛나는 지점과 아쉬운 지점이 공존하는 부분도 대부분 여성 캐릭터들이다. 변종구와 대립하는 후보가 여성이라는 점, 그리고 그녀를 보필하는 주 캐릭터도 여성이라는 점, 정치에 뛰어들어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캐릭터도 여성이라는 점은 분명 <특별시민>이 다른 여타 영화들과 궤를 달리 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지만, 그 장점은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휘발되고 만다. 양진주 후보의 평면적인 모습도 그렇고, 그녀를 보좌하던 임민선도 너무 뜬금없이 사라지고 만다. (사실 임민선이 변종구의 편에 서서 무엇인가를 하는 것을 기대했지만 그 기대마저도 너무 뻔하고, 1차원적인 것이기는 하다.) 이렇게 1차적으로 소모되는 캐릭터들 중에서도 박경 캐릭터는 홀로 빛난다. 박경이라는 캐릭터를 단순히 ‘정치 초짜’라고 보기에는 뭔가 상당히 묘한 지점이 있다. 그녀의 외모에서 풍기는 보이시한 모습 때문만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박경이라는 캐릭터가 자신의 욕망을 위해 움직이면서도 그 욕망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변종구의 피가 욕망으로 흐르고 있다면, 박경은 욕망을 사고하는 타입이라고나 할까? 욕망에 따라 움직이지만 그보다도 먼저 실리를 중시하는 캐릭터. 자신의 그룹이나 혹은 타인의 그룹 내에서도 완전하게 속하지 않고 한걸음 뒤로 물러난 채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려고 하는 이방인과도 같은 캐릭터. 이러한 부분들이 박경이라는 캐릭터를 조금 더 묘하고, 흥미롭게 만든다.



최민식이라는 대배우를 상대하는 데 있어서 <특별시민> 내에서 한 순간도 호흡이 흐트러지거나 기가 죽는 배우들은 거의 없는데, 그중에서도 심은경은 으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심은경이라는 배우는 워낙 <써니>와 <수상한 그녀>의 이미지가 깊게 박혀서 그런지 코미디에 특화된 어린 배우라는 느낌이 강했는데, <특별시민>에서는 확실히 자신만의 색을 찾아낸 것처럼 보인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믿음을 가진 캐릭터. 심은경은 그 박경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믿음과 확신을 자신의 목소리 안에 담아내 표현한다. 이전 작품 속에서는 목소리에 앳된 느낌이나 어린 느낌이 가득했던 것과 달리, <특별시민>에서 심은경은 박경이라는 캐릭터에 그 캐릭터가 갖고 있는 신념을 녹여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변종구와 마주한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눈빛, 그리고 변종구가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며 “아니지, 이건 개가 아니라 늑대지”라고 이야기할 때도 단순히 그 위압감에 압도되는 것이 아닌, 자신이 믿는 바를 위해 자신보다 높은 이에 있는 지시를 따를 때에 오는 순종. 단순히 무채색의 투명하고 맑은 배우인 줄 알았던 심은경은 <특별시민>에서 자신만의 색을 획득하는데, 이 색은 뒤의 배경을 여지없이 투과시키는 투명이 아닌, 그 배경을 사라지게 만들 정도의 강력한 힘을 가진 검은색이다.



변종구와 박경. 구세대와 젊은 세대로 대변되는 두 캐릭터들 간의 충돌 은영화의 막바지에 이르러서 절정을 맞이한다. 자신이 욕망하던 세계와 자신이 속한 세계 간의 괴리감을 느낀 그녀는 이제 자기 자신에게서 어쩔 수 없이 피비린내가 난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이 존경했던 정치인에 대한 환상을 다 깨게 된 뒤, 변종구에게 살인 사건의 증거를 넘긴다. 그리고 그녀는 정치인들이 가장 두려워해야 하지만 가장 천대하는 유권자가 되어 복수하겠다고 이야기한다. 관객들은 뒤이어 변종구가 자신의 하수인에게 우악스럽게 상추를 싸서 먹이는 장면을 보면서 그의 강압과 권력으로 위장된 폭력은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렇기에 박경이 복수라고 이야기하는 ‘투표’라는 것은 상당히 유약하고 무력한 결정인 것처럼 보인다. 특히 마지막에 박경이 변종구에게 USB를 건네고 난 뒤, 상추를 싸 먹이는 씬이 이어지는 것은 상당히 의미 심장해 보인다. 이는 캐릭터들 간의 충돌을 넘어서 장면 간의 충돌로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큰 마음을 먹고 변종구에게 선포를 하고 나오는 박경의 모습. 자신이 공장 노동자였던 시절 그렇게도 먹고 싶었던 고기를 구우며 우악스럽게 하수인의 입에 밀어 넣고, 자신의 입에도 고기를 밀어 넣는 변종구. 언뜻 보면 불판에 구워져 있는 고기는 마치 그가 하찮게 생각하는 시민들의 모습으로 치환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력해 보이는 젊은 세대와 권력으로 무장한 구세대. 이 장면은 서로 가진 다른 성질들로 인해 충돌하면서 동시에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환기시킨다. 우리 자신도 모르게 박경에게 감정이 이입되었던 만큼, 영화 속에서 느꼈던 감정은 현실에서도 이어지고 있으며, 그 현실은 단순히 우리가 느끼는 무력함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여기서 우리는 다시 제일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게 된다. 왜 지금과 같은 아주 특수한 시점에 <특별시민>이 개봉했을까? 사실 이 영화는 정치권의 이면을 낱낱이 폭로하는 영화는 아니다. 해외 다른 영화들의(<킹 메이커>와 같은) 한국판 버전 정도일 수도 있고, 영화적인 장치를 위해 조금 더 드라마틱하게 끌어올린 부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 우리가 캐릭터들의 표정 하나하나 살펴볼 수 있을 만큼 타이트한 얼굴 클로즈 업을 보면서 느꼈던 답답한 만큼이나 우리가 지금 현실에서 느낄 법한 정치를 둘러싼 수많은 스캔들과 스토리들의 답답함이 일치되며 우리와 박경은 어느새 같은 위치에 놓이게 된다. 박경이라는 캐릭터가 통쾌한 한 방의 복수를 던질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영화를 보면서 우리도 모르게 자신의 욕망만을 위해 움직이는 변종구를 응원하게 되는 자기 자신을 볼 때도 있었으니. 박경으로서는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원칙인 ‘투표’로 되돌아가는 게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투표’ 가 아무런 힘이 없을까? 자신과 거의 철천지 원수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린 기자 선배가 변종구의 사무실로 들어가면서 느끼는 패배감을 뒤엎을 만큼의 힘을 ‘투표’가 갖고 있지 못한 것일까? 우리는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힘을 흐르는 역사 속에서 직접 체험한 세대이고, 지금도 그 역사 속에서 살고 있다. 이 영화가 훨씬 더 크고 압도적인 정 치적 사실 앞에서는 강도가 덜한 지언정, 비유라는 이야기의 힘을 통해서 우리에게 간접적으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와 멀리 떨어져 있는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닌, 지금 우리에게 얼마 남지 않은 과제를 헤쳐나가기 위해서. 당신의 한 표가 이 세상을 바꿀 찬스 혹은 복수가 될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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