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이 만들어낸 지옥도에서

웹툰 [지옥]에 대한 짧은 단상

by 송희운

※ 웹툰 [지옥]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처 : 네이버 웹툰


웹툰 [지옥]은 연상호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하여 제작된 웹툰이다. 연상호 감독이 스토리를 짜고 최규석 작가가 작화를 담당한 [지옥]은 어느 날 사람들이 어떤 초월적 존재로부터 지옥을 간다는 고지를 받고 그 고지 날짜에 맞춰 등장한 지옥의 사자들로 인해 산 채로 찢기고 불타 죽는 세계관을 다루고 있다.


[지옥]의 세계는 참으로 암담하다. 죄를 지은 사람들이 죽으면 가는 곳인 '지옥'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라면 대게 그 지옥과 반대 지점에 있는 천국을 잠깐이라도 다루고는 하는데, 이 웹툰 [지옥]에서는 오로지 지옥 만이 존재한다. 영원히 행복한 사후세계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영원한 형벌만 존재하는 말 그대로 꿈과 희망이 없는 참으로 암담한 세계이다. 이 세계에서 가장 암담하고 끔찍한 점은 이 고지를 받는 순간 피할 길은 없다는 점이다.(지옥의 사자들에게 살해당하는 죽음을 피하기 위해 미리 스스로 죽음을 택해도 그 죽은 영혼조차 날짜에 맞춰 다시 불러내 참수시키는 철저한 시스템이다.) 더군다나 이 고지를 받은 사람들은 모두 추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새진리회의 주장이 더해지면서 고지의 시연은 [지옥]의 세계 속에서 실질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가장 끔찍한 죽음이 된다.


[지옥]의 가장 독특한 점은 사후세계에서 벌어질 법한 형벌이 현실에서 직접 이뤄진다는 점이다. 단순히 지옥에서 형벌을 받는다는 말을 듣고 그것을 상상하는 것과 그 형벌이 자신의 눈앞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것을 보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웹툰 초반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남자의 모습과 스토리 중반 고지를 받고 모든 이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시연을 당하는 박정자의 모습은 임팩트가 다른데, 이는 천재지변처럼 여겨졌던 사건이 피할 수 없는 신(초월적 존재)의 심판이라는 의미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1부의 말미에서 이 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새진리회는 모든 이들이 믿을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신의 대리인으로서 자리하게 된다. 새진리회는 박정자가 시연을 당한 곳을 성지화 시키며, 모든 이들이 이렇게 끔찍한 신의 심판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선하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2부의 스토리는 고지와 시연을 둘러싼 인간들의 더욱 끔찍하고 추악한 면모가 드러난다. 소규모였던 새진리회의 세력은 크게 확장되어 대형 종교처럼 변모한다. 이들은 사람들을 선의 길로 이끄는 형태로 교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공포에 의한 통치로 사람들의 평범한 삶을 억압하고 고지를 받은 이들의 삶을 완전히 파탄시켜 버린다. 신이라는 강력한 통치의 무기를 갖고 있는 이들은 정확한 죄가 드러나지 않은 이들의 최소한의 인권조차 무시해버리고 그들의 시연을 만천하에 공개하여 중개함으로써 점점 시연을 하나의 쇼처럼 전시하기 시작한다. 여기에 이들을 맹목적으로 따랐던 광신도 집단인 화살촉은 신의 뜻이라는 미명 하에 자신들과 사상이 다른 이들을 살해하여 그 시체를 전시하는 짓조차 서슴없이 벌이면서 더욱 광적으로 변한다. 이러한 끔찍한 세계 속에서 한 방송국 PD의 아기가 고지를 받는 장면이 드러나면서 2부의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아기가 고지를 받음으로써 죄를 지은 사람만이 고지를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반 사람들이 깨닫기 시작하고, 새진리회는 매우 당황하며 이로 인해 자신들의 통치가 무너질 것을 두려워해 아기를 몰래 빼돌리려고 한다.


웹툰의 여러 장면 중에서도 아기가 고지를 받는 장면은 사뭇 충격적이다. 아무런 흠도 없는 완전무결한 존재인 아기가 고지를 받는 것을 통해 고지가 사람을 심판하기 위한 도구가 아닌 무작위로 벌어지는 천재지변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정확하게 드러나지만, 꿈도 희망도 없는 이 현세의 지옥에서 아기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두려운 장면일 수밖에 없다. 처음 이 장면을 본다면 웹툰의 흘러가는 스토리나 묘사되는 배경들을 보았을 때, 아기의 결말을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지옥]의 엔딩에서 아기는 부모의 희생으로 인해 살아남는다. 이 엔딩이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결국 이 웹툰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주제가 '사랑'이라는 것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웹툰에서 고지를 받는 이들은 모두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맞이했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는 동안 이 고지를 대신 막아주는 사람 혹은 이 고지를 대신 막아줄 생각을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새진리회의 건물에서 시연을 당한 한 남자는 자신들의 가족과 부인이 보는 앞에서 시연을 당했지만 그를 대신해서 시연을 막아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그들은 그 남자의 억울함을 외면하고 오히려 그가 고지를 받았다는 사실을 수치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스토리 상에서 쉽게 연상할 수 없었던 '사랑'이라는 주제는 뜬금없는 등장으로 보이지 않고 인간들의 밑바닥, 어두운 면과 가장 대척점에 위치하며 진정한 구원은 '희생을 통한 사랑'으로만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을 가장 강렬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사랑은 이 지옥 같은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지옥의 사자들이 심판하러 오는 세상, 그리고 이를 이용하는 인간들로 인해 더욱 지옥 같아진 세상. [지옥]에서 이 초월적 존재들의 정체는 끝내 밝혀지지 않지만, 이는 중요하지 않다. 말 그대로 세상이 지옥과 같아졌다면, 당신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스토리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 중에서 당신은 누구의 모습과 가장 닮아있을 것인가. [지옥]은 끔찍한 것을 마주했을 때 드러나는 여러 인간 군상들을 통해 이 질문을 던지며,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한다. 단순히 상상 속에서만 일어나는 허구의 일이라고 치부하지 않고 이것이 정말 내가 사는 세상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했을 때, 우리 각자는 어떤 결말을 맞이할 것인가? 거기에 대한 대답은 쉽게 내리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