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이 원작 웹툰을 재현하는 방식에 대하여
※ 본 리뷰에는 <지옥>의 일부 회차 및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반기에 공개되는 넷플릭스 작품 중에서 가장 기대된 작품은 <지옥>이었다. 워낙 원작 만화를 인상 깊게 보고 원작 만화 자체가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고 생각되었기에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기대가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드디어 11월 19일 넷플릭스에서 <지옥>이 공개되었고 공개된 그날 전편을 모두 감상하였는데 기대했던 것보다는 조금 덜 미치는 작품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모든 부분이 아쉬운 것은 아니었으나 완벽한 완성도를 갖고 있는 원작에는 덜 미친다는 느낌이 강했다.
<지옥>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이 원작 자체에도 참여되어 있는 만큼 누구보다도 원작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지옥>은 웹툰 원작과 거의 다른 지점 없이 원작의 흐름을 그대로 이어나가는 방식으로 연출되었다. 사실 <지옥>에 대해 아쉽다고 느끼는 부분은 이 부분이다. 원작이 있는 작품을 연출할 경우 원작을 그대로 따를 것이냐 혹은 원작에 새로운 해석을 더할 것이냐 이 부분이 가장 고민스러운 지점 중 하나일 것이다. <지옥>은 안전한 선택으로 원작을 고스란히 재현했는데, 이 부분으로 인해 <지옥>만이 갖게 되는 차별점이 잘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세계관도 확실하고 원작 자체의 소재와 주제가 너무나 좋은 만큼 이 부분에 있어서 <지옥>만의 또 다른 차별점을 갖고 갈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계속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옥>에서는 인상 깊은 몇몇 지점들이 존재한다. 원작을 영상으로 재현해낼 때 사람들이 기대하는 바는 얼마나 뛰어난 연기자들이 원작 속 인물들을 연기해내는지, 원작 속에서 묘사된 부분들이 얼마나 시각적으로 잘 구현되는지를 기대하면서 볼 것이다. <지옥>은 캐릭터의 재현, 장면의 재현이라는 측면에서 이러한 부분들을 충족시킨다. <지옥>은 원작에서 1부, 2부로 나눠지던 이야기를 각각 3화 내에서 모두 풀어냈다. 원작의 1부를 담고 있는 1화에서부터 3화까지는 새진리회의 정진수 의장과 진경훈이 주축이 되어 이야기가 진행된다. 원작을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는 <지옥>에서 눈에 띄게 달라진 거의 유일한 지점이라면 아마 진경훈의 자식이 아들에서 딸로 변경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부모 자식 간 관계의 단절을 더욱 효과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아버지와 다른 성별을 가진 딸로 변경된 것으로 보인다. 이 역할에는 이레 배우가 캐스팅되었는데, 이 드라마를 통틀어서 가장 뛰어난 캐스팅이라고 할 만큼 돋보이는 연기를 선보인다. 인간의 자율성을 시험한다는 명목으로 정진수는 진경훈의 아내를 살해하고 심신 미약으로 풀려난 범인을 그의 딸인 진희정과 같이 사로잡는다. 범인이 마치 신에게 예고를 받고 지옥에 간 것처럼 꾸미기 위해 진희정이 그를 소각기에 밀어 넣고 정진수 의장이 소각기의 불을 붙이는데, 이때 소각로에서 불에 타는 범인을 쳐다보는 진희정의 표정은 상상 그 이상이다. 원작 내에서 이 장면은 거의 아들의 표정을 보여주지 않고 불에 탄 시체가 발견되는 장면으로 바로 전환되는데, 드라마에서는 소각로 속에서 불에 타 고통스러워하는 범인을 바라보는 진희정의 모습을 클로즈업으로 오랫동안 비춘다. 이 장면에서 바로 이레 배우의 연기가 돋보이는 지점은 이중적인 감정을 한 얼굴 안에서 모두 담아낸다는 점이다.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남자에 대한 분노와 그를 드디어 자신의 손으로 처단했다는 울분에 찬 희열이 모두 담긴 표정은 원작에 느껴졌던 서늘한 감정과는 정반대의 격렬한 감정이 응축되어 드러난다. 이는 원작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드라마 <지옥> 만이 전달할 수 있는 감정선이다. 이레 배우 외에도 1부에서 시연을 선고받은 박정자를 연기한 김신록, 정의감 넘치는 변호사 민혜진을 연기한 김현주 등 다양한 배우들이 연기하는 캐릭터들은 단순히 원작을 재현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 캐릭터 자체가 됨으로써 보는 이들에게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지옥> 원작과 드라마 모두를 관통하는 큰 모티브는 인간 집단의 광기이다. 처음 오프닝에서 정체불명의 괴물들에게 남자가 시연을 당하는 모습은 언뜻 이 이야기 내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처럼 보이나, 사실 이 이야기 내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집단 광기의 민낯이 드러나는 장면들이다. 처음 이 광기가 묘사되는 순간은 단순히 도시전설처럼 치부되던 '신의 심판'을 모든 이들이 두 눈으로 직접 보게 된 박정자의 시연 장면이다. 자신들의 눈앞에서 처참하게 시연당한 박정자의 모습이 드러나자 인간의 범주에서는 상상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의 등장에 공포감을 느낀 사람들은 세 괴물이 사라진 지점을 향해 절을 하기 시작한다. 이 장면은 '지옥'의 세계 속에서 인간들이 자신들의 이성을 마비시킨 채 두려움에 사로잡혀 공포에 모든 것을 맡겨버리는 광기의 순간이다. 그 속에서 절을 하지 않고 있는 사람은 오직 소도의 변호사들 뿐인데 이들은 나중에 전국적으로 신상이 공개되어 신에게 경배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무차별적인 폭행을 당해 사람들의 광기에 희생당한다. 장면 자체가 갖고 있는 충격도 만만치 않지만 이 장면은 특히 웹툰에서 보았을 때와 드라마 속에서 연출되어 드러났을 때 느껴지는 충격이 사뭇 다르다. 단순히 그림으로 묘사된 것과 다르게, 드라마 속에서 연출되는 장면들은 이것들이 모두 '허구'임을 알고 있음에도 마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유사하게 보여 현실 속에서도 얼마든지 이런 상황을 목도할 수 있다는 불안감마저 느껴지게 한다. 이 장면을 기점으로 <지옥>에서 인간들의 광기는 더욱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는데, 진경훈이 정진수를 잡기 위해 그가 살고 있는 고시원으로 찾아갔을 때 사람들이 그를 에워싸 폭행하는 장면이라던지 민혜진이 화살촉에게 폭행당한 자신의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왔을 때 모두들 그와 그의 죽어가는 어머니를 외면하는 장면 등은 심플하게 묘사된 원작보다 더욱 큰 충격을 주는 장면들이다. 이 뿐만 아니라 과격하고 폭력적인 화살촉의 행동들이 영상 내에서 그대로 재현되는 장면들도 단순히 그림으로 묘사된 것 이상으로 두 눈으로 보는 것 같은 생생함을 전달해 더욱 끔찍한 장면들로 완성되었다. 이러한 장면들을 모두 공포가 인간들을 통제하는 상황 속에서 극한으로 치달은 인간들의 광기를 현실적으로 재현함으로써 원작에서 연출된 것 이상으로 소름 끼치는 감정을 선사한다.
위와 같이 캐릭터의 재현, 장면의 재현이라는 측면에서 <지옥>은 흥미로웠지만 그 외 부분들에서는 여전히 아쉬운 지점들이 많다. 1부의 주축을 이루는 정진수, 진경훈을 연기한 배우들의 연기가 기대했던 톤과는 많이 달라 이질감이 들었고, 원작 속에서는 동일하게 묘사된 신의 심판 즉 세 괴생명체에게 사람들이 시연을 당하는 장면들도 어떤 캐릭터는 누구보다도 잔인하게 죽음을 맞이했지만 정진수에게 집행된 시연의 수위는 약해 보일 정도로 시연의 묘사가 일정하지 않았다. 특히 제일 아쉬웠던 지점은 원작 웹툰에서 가장 강렬한 감정을 선사하는 마지막 장면의 연출이다. 사실 원작 엔딩이 큰 감동을 줄 수 있었던 이유도 신생아가 고지를 받아 시연당하는 극한의 상황에서 자칫 신파로 빠질 수 있는 부분들을 최대한 자제하고 깔끔하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특성상 감정적으로 최고조로 달하는 부분 대한 연출을 강하게 넣을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나 오히려 너무 길어진 엔딩에 대한 묘사는 원작에서 느꼈던 감정 비슷한 것도 느껴지지 않게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지옥>은 기대가 컸던 만큼 그 기대에는 살짝 못 미치긴 했으나 아쉬운 지점들, 좋은 지점들이 여러모로 공존하고 있는 복합적인 작품으로 기억될 듯하다. 엔딩 이후 쿠키 영상에서 이번에는 원작에 아예 없던 새로운 내용이 등장한 만큼 시즌 2를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한데, 이 새로운 설정을 시즌 2에서는 어떻게 풀어나갈지 이번에 한번 더 기대를 걸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