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똑같은 딸 낳으면 알게 될 거야.
이 말은 대한민국에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딸들이 듣는 말 중의 하나가 아닐까. 나도 그들 중 하나로서 이런 말을 들었지만 아쉽게도(?) 나는 딸이 아닌 아들을 낳았다. 어머니는 내가 나중에 자식을 낳아야지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에서 내게 저 말을 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어머니들도 우리 어머니와 크게 다른 의미를 두고 각자의 딸에게 저 말을 하신 것이 아닐 것이다. 비록 나는 딸이 아닌 아들을 낳았지만, 아기를 낳고 육아를 막 시작한 지금에서야 나는 어머니가 왜 저 말을 하셨는지 한… 1%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아니, 1%도 너무 많고 0.1% 정도 일지도 모른다.
이제 막 아들을 키우기 시작한 3개월이 갓 넘은 시점에서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지금 육아라는 거대하고 긴 터널의 초입에 발을 살짝 걸친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초입도 이런 초입이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엄마이지만 그래도 하나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이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이제는 혼자가 아닌 누군가를 돌보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여 거기에 집중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외동으로 자란 어린 시절부터 나는 이기적인 면이 더 많은 사람이었다.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살아온 만큼 모든 이들의 관심이 나에게로 쏠리길 원했고, 환경적인 면과 성격적인 면이 모두 어우러져 그러한 관심을 통해 나 자신이라는 존재를 증명받고자 애를 썼다. 좋은 인연을 만나 결혼했지만 결혼으로 인해 내 인생 자체가 크게 바뀌었다기보다는 연애를 조금 더 길고 편안하게 하는 느낌에 가까웠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아기가 생겼다. 계획했던 것보다는 조금 더 이르게 가지게 된 아이였는데 걱정도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아기가 생겨서 기쁜 마음이 더 컸다. 회사를 다니면서 너무 바쁘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꿋꿋이 버티면서 이를 악물고 다녔고 겨우 출산휴가에 들어서서 한 달 동안 남은 시간을 재정비하며 아기를 맞을 준비를 마쳤다. 물론 심리적인 마음의 준비라기보다는 환경적으로 아기를 맞이할 준비였다. 임신했을 때 입덧이 많이 올라온 것은 아니었지만 체력 자체가 너무 떨어져서 힘들었기에 빨리 임신이 끝나기만을 바랬다. 그 마음 밑면에는 ‘출산만 하고 나면 예전의 나로 돌아올 수 있겠지’가 있었다. 내 마음은 아직도 어렸다.
그리고 드디어 대망의 아이가 태어났다. 마취에서 깨어난 후 처음에는 남편의 핸드폰으로 아이를 보았고, 그다음 날 겨우 일어나 신생아실 앞에서 아이의 얼굴을 처음 직접 보았다. 잠깐 동안만 아기의 얼굴을 보았기에 너무나 감질났고 하루라도 빨리 아기를 내 품에 안아보고 싶었다. 이후 조리원에 들어가서는 남편과 거의 생이별을 했는데, 남편의 얼굴도 못 보고 작은 방 안에 갇혀 있는 느낌이 들어 더욱 우울해졌다. 이따금 나를 찾는 아이를 안아 내 방으로 데리고 와서 놀고 밤에는 아이를 다시 신생아실로 맡겼다. 이때만 해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만 싶었는데, 지금 와서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그때가 정말 천국이었다고…
집으로 돌아와서 아기와 함께 첫 번째 밤을 거의 뜬 눈으로 보내고 나서 깨달았다. ‘아 나는 다시 예전의 삶으로 되돌아갈 수 없구나.’ 내 마음대로 약속을 잡고 내가 보러 가고 싶을 때 영화를 보러 가고 내가 꾸미고 싶은 대로 꾸미는 삶은 이제 정말 당분간 안녕인 것이다… 외동으로 살면서 하고 싶은 것을 부모님께 지원받으면서 거의 다해왔다. 인생에 있어서 내가 원하는 때에 하고 싶은 것을 못한 경험이 별로 없는 나로서 육아는 정말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경험이었다. 내 개인의 삶보다 아기를 키우는 것이 더욱 중요해지는 삶.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이의 도움이 정말 절실하게 필요해지는 삶. 이런 삶을 살아보지 않은 나에게 육아는 내가 머리로만 결심했던 것 이상으로 더욱 큰 무게가 나가는 거대한 책임감이었다.
SNS에서 누군가 “육아만큼 비효율적인 것은 없다”라고 말한 것을 본 적이 있다. 한 명의 인간을 키우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노고와 수고, 돈 등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들이 들어가고 거기에다가 온전한 인간을 키우기 위해서 시간이 정말 많이 걸리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라는 말이었다. 처음에는 너무 냉정한 말이 아닌가 싶었는데, 아기를 키우면서 보니 그 말만큼 육아를 잘 표현한 말이 어디 있을까 싶다. 모든 것이 효율적으로 돌아가야 하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가장 비효율적인 일이랄까. 이 비효율적인 일을 효율적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찾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아무리 사회와 과학, 기술이 발달한다고 해도 노력으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라는 존재보다 내 자식을 우선으로 생각하며 그 자식에게 온전한 사랑을 쏟아야만 하는 것. 그동안 원하는 것을 먼저 하는 삶에 익숙한 내가 너무 생각 없이 이 길에 들어선 것이 아닐까 걱정되고 아기를 온전한 인간으로 잘 키울 수 있을지 걱정도 태산이지만 그래도 한번 해보려고 한다. 나도 이 비효율적인 사랑으로 커왔고, 내가 받은 이 사랑을 내 자식에게 주는 것이 지금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멋진 길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