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식이지만 처음 뵙겠습니다.

by 송희운


언젠가 내가 좋아하던 웹툰에서 이런 내용을 본 적 있다. 내 아이이지만 만난 지 얼마 안 되어서 아직 잘 모른다는 내용이었다.(난다 작가님의 [어쿠스틱 라이프] 212화 中) 이전까지 '내 자식을 만난다'는 개념을 상상해본 적이 없던 나로서는 상당히 충격적인 말이었다. 내 자식을 만나다니. 내 자식은 그냥 태어날 때부터 내 자식인게 아닌가? 남편, 친구, 직장 동료 등 모든 이들에게는 나와의 관계를 시작한 첫 만남이 있지만 내가 낳은 자식도 만난다는 개념을 가질 수 있다니 참으로 충격적인 말이라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었다. 이후 아기를 갖고 나서 아기가 나올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어머니가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보신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을 했던 것 같다.


처음 만나니까 긴장돼


이 말을 들은 어머니와 남편이 모두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던 기억이 난다. 머릿속으로 오랫동안 생각하고 나온 답변은 아니었는데, 막상 아기를 갖고 나니까 나도 모르게 저런 대답이 나왔던 것 같다. 내 아이지만, 한 번도 세상 밖으로 나오지는 않은 말 그대로 처음 세상에 태어나는 존재. 내가 뱃속에서 열 달 동안 품고 있었지만 어떤 성향을 갖고 있는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낯선 존재였다. 그저 초음파를 통해서 아기가 정상적으로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는 사실만 알 수 있었다.


9월 8일, 드디어 아기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자연분만이 아예 불가능해서 어쩔 수 없이 제왕절개로 아기를 낳았는데, 제왕절개에도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는 부분마취만 해서 아기가 나오는 것까지 본 뒤 이후에 수면마취를 하는 방식이었고, 하나는 아예 처음부터 수면마취를 하는 방식이었다. 수술 전날까지 고민이 너무너무 많이 되었는데 결국 수면마취를 하는 것을 선택했다. 뱃속에 있던 아기를 바로 보고 싶다는 마음도 잠깐 들었지만, 아기를 꺼내기까지 하는 수술을 맨 정신으로 기다린다는 것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결국 아기가 세상에 처음으로 나오는 순간 아기를 만나지로 못하고 수술이 끝난 뒤 회복실에서 깨어났다. 아침까지만 해도 분명 배 속에 아기가 있었는데, 이제 내 뱃속에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병원에서 그리고 산후조리원에서 아기를 봤지만, 그것은 정말로 아기를 만난 것은 아니었다. 아기의 수많은 여러 모습 중에서 내가 본 아기의 모습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다. 하루에 5분~10분 정도밖에 아기를 볼 수밖에 없었던 병원에서는 마치 강아지처럼 아기를 귀여워하며 하루라도 빨리 아기를 안고 싶었고, 산후조리원에서는 낮에만 아기를 보고 밤에는 신생아실에 맡겼다. 내가 잠깐 동안 본 아기의 모습은 정말 스쳐 지나가는 모습들에 불과했지만, 나는 그것이 아기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어머니에게 "우리 아기는 정말 순한 것 같아."라고 말했다. 이 얼마나 순진무구한 생각이었던가!


드디어 대망의 퇴소일. 답답했던 산후조리원을 벗어난다는 마음에 들떠서 그날 내게 찾아올 진짜 만남을 예측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신생아는 통잠을 자지 않는다. 아기는 거의 한 시간 혹은 두 시간에 한 번씩 깨서 밥을 달라고 울음을 터뜨렸고, 워낙 전부터 잠이 많았던 나는 졸린 눈을 겨우 뜨고 아기에게 밥을 주었다. 아기가 신생아였던 시절 부모님이 거의 매일 와서 아기를 봐주셨지만, 밤에 아기를 돌보는 것은 오로지 나만의 몫이었다. 아기와 함께 집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아기를 보는 것은 정말 너무 힘들었다. 그저 아기를 보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던 병원에서의 마음과 잠깐 동안 보면서 나름대로 우리 아기가 순해서 예쁘다고 생각했던 산후조리원에서의 마음은 정말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할 수만 있다면 다시 뱃속으로 집어넣고 싶었고 정말 하루라도 푹 쉬면서 밤에 마음 편히 통잠을 자고 싶었다. 울 때도 아기가 대체 왜 우는지 감을 잡기 어려워 땀을 뻘뻘 흘렸고 아기가 백신이라도 맞고 오는 날이면 하루 종일 칭얼거려서 그날 밤은 거의 잠을 못 잔다고 생각해야만 했다. 남편도 함께 아기를 돌보고 부모님께서 정말 많은 도움을 주셨지만, 신생아 기간에 아기를 돌보는 것은 멘붕의 연속이었다. 이러한 결과를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성급히 임신했다고 기뻐만 했었나 하는 후회마저 들기도 했었다.


시간이 조금 흘러서 내가 아기에게 어느 정도 적응되고 난 뒤, 그때서야 비로소 아기를 마주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거의 4개월이 되어가는 우리 아기는 내가 처음에 착각했던 것처럼 아주 순하지는 않았지만 여러 번 수면교육을 하고 나니 금세 잠이 잘 들기도 했고, 책을 읽어주면 눈을 반짝이며 집중해서 듣고 있는다. 내가 놀아주면 방긋방긋 웃다가 까르륵하고 신나게 웃을 때도 있었고 막 자지러지게 울다가도 안아주고 조금만 달래주면 울음을 잘 그치고는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보다 내가 놀아줄 때 더 신나게 웃는 것을 보니까 확실히 나를 엄마로 인지하고 알아보는 것 같다. 아직 아기를 만난 지 4개월밖에 되지 않았고 앞으로 아기에 대해 알아가야 할 것들이 훨씬 더 많다 보니 아기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많이 없지만, 이제 아기와의 만남에 적응했으니 앞으로 아기에 대한 모든 정보들은 내 안에서 계속 쌓여갈 것이다.


그저 아기가 내 뱃속에만 존재했을 때와, 세상에 나온 아기를 마주한다는 것은 참으로 다른 개념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임신 때는 뱃속에 분명 무언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정말 말 그대로 감각일 뿐이었다. 임신했을 당시 아기가 내 말에 반응하듯 발로 차기도 하고 꾸물텅하고 움직이면서 뱃속에서 자기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내게 끊임없이 어필해왔고 나도 아기에게 태담을 해주기도 하고 책도 읽어주기도 했지만, 사실 그것은 마치 내 속에 다른 신체기관이 하나 더 있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내 안에 있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살아 움직이는 기관이라는 느낌? 아기가 태어나고 오로지 감각으로만 느껴졌던 아기가 실제로 내 눈앞에 존재한다는 것을 보는 순간, '아 진짜로 내 뱃속에 저 애가 있었구나'는 확신을 받을 수 있었다. 집으로 와서 아기를 돌보고 키우면서 아기의 진짜 모습을 만나게 되었을 때, 이 아기가 나와 다른 삶을 가진 또 다른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것을 더욱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애초부터 아기는 살아있는 존재인데, 왜 새삼스럽게 이런 생각을 하는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열 달 동안 내가 품고 살아왔던 아기다 보니 나 자신도 모르게 아기와 나를 동일시하고 있었던 듯하다. 나와 아기를 동일시하지 않고 분리했을 때, 그리고 아기의 귀여운 모습이 아니라 아기가 자라나기 위해 무수히 필요한 과정들을 하나씩 경험해 나가기 시작했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내 아기를 진짜로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아기를 키우면서 겪은 일보다 앞으로 아기를 키우면서 겪게 될 일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발달 과제를 하나씩 해나가면서 아기는 어릴 때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성격을 찾아나갈 것이다. 그 과정이 정말 녹록지는 않겠지만, 아기의 새로운 모습을 만나는 것을 기뻐하면서 아기를 최선을 다해 키워나가고 싶다.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 삶 평생에 걸쳐 끊임없이 깨달아가는 것처럼, 뱃속에서 나온 내 아기도 살아가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고 거기서 오는 기쁨을 만끽하고 살기를 바라본다. 마지막으로 늦었지만, 내 아기에게 정식으로 이렇게 인사해주고 싶다. "처음 만나서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