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않는 아기는 없다

by 송희운


만약 누군가가 "아기를 키우면서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한다면 나는 단 한순간도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아기가 우는 것"이라고. 아기가 신생아였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게 있어서 아기의 울음은 정말 너무나도 어렵고 두려운 것이다. 아기의 울음은 마치 난이도 높은 퀴즈와도 같다. 문제는 이 퀴즈가 객관식이 아닌 주관식이라는 점이다. 아기가 어느 정도 자란 100일 시점에는 나름대로 경험치가 쌓여 여러 가지 보기 중에서 골라 답을 맞힐 수 있었다. 하지만 200일이 지난 지금, 아기가 내는 퀴즈는 더욱 복잡해지고 정교해지면서 이제는 내가 아는 보기 중에서도 답이 아닌 경우들이 너무 많아져 버렸다. 심지어 어떤 때는 답이 하나가 아닌 복수일 때도 있다. 정답을 맞히지 못한 퀴즈는 그 답을 다시 찾을 때까지 계속 반복해서 풀어야만 했다. 이런 과정에서 아기도 우느라 지쳐버리고 아기를 달래는 나도, 남편도 지쳐버리기 마련이었다. 특히 다른 어떤 때보다 괴로운 순간은 밤에 잘 자다가 깨서 갑자기 우는 순간이다. 신생아 시절 아기가 한두 시간 정도 자다가 깨서 울 때는 정말 말 그대로 미쳐버리는 노릇이었다. 어머니가 내게 말했던 "너도 똑같은 딸을 낳으면 알게 될 거야"라는 말씀이 바로 이런 고통을 의미하시는 건가 생각하기도 했었다.


아기는 왜 우는 것일까? 이 질문을 인터넷 검색창에 쳐보면 나만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아기 개월 수별로 왜 우는지 검색하면 이와 연관된 게시물이 주르륵 나온다. 이것을 어떻게 알았냐면 나도 아기 개월 수 별로 왜 우는지 검색을 해봤다는 소리이다.) 기저귀가 찝찝해서, 밥을 제때 맞춰 주지 않아서, 누워있으려니까 심심해서, 집안에만 있으려니 답답해서 등등등. 아기가 우는 이유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정말 다양하고 아기가 커가면서 더욱 늘어만 갔다. 검색 결과를 보면서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 위안이 되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뚜렷한 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참으로 답답하기만 했다.


아기를 처음 키워 본 나는 울음이 아기의 유일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라는 것을 이해하는데 정말 오래 걸렸다. 아기의 울음은 자신에게 불편한 상황이 생겼을 때, 자신을 돌봐주는 부모에게 그 불편함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아기의 울음이 어떤 의미를 지닌 지 이해하면서 동시에 아기의 울음이 왜 내게 있어서 더욱 힘든 것인가를 깨달았다. 어른인 내게 우는 것은 슬픈 일이 있을 때 달래줘야 하는 부정적인 것으로만 느껴졌다. 그렇기에 아기가 우는 순간 내가 아기에게 제대로 못해줬나, 아기를 제대로 돌봐주지 못했나 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면서 아기가 우는 이유가 모두 나로 인한 것인지 자책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기의 울음이 나 때문에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아기의 유일한 의사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아기의 울음이 조금씩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아기의 행동 위에 불순물처럼 나의 다른 생각들을 덮어 씌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아기를 받아들이는 이해가 필요했다.


아기의 울음은 내가 얼마나 미성숙한 존재인지 돌아보게 하면서 동시에 스스로 미성숙하다고만 생각한 나를 억지로 성숙하게 만들었다. 비록 그 성숙이 내 의지가 아닌 강제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그 강제가 없었다면 결코 이뤄질 수 없는 성숙이었다. 우는 아기를 이해하기 위해 수없이 인내해야 했고, 그 인내에는 아기가 울음을 그치도록 달래주는 것 외에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기에게 화를 내지 않는 연습이 포함되어 있었다. 내가 느낀 감정을 타인에게 쏟아붓지 않고 내 안으로 삼키고 받아들이는 변화가 필요했다. 아기는 아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이지만, 나를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유일한 존재였다.


앞으로도 아기는 우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말을 배우기 전까지 아기는 계속 끊임없이 울음으로 자신의 의사를 드러낼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아기가 하는 일이니까. 물론 나도 아기가 우는 이유를 알았다고 해서 아기가 울 때마다 마음 편히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내가 바라는 것은 아기가 울 때 좌충우돌하더라도 그 순간 아기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서투르고 모자를 수밖에 없는 나이지만, 그래도 아기가 어엿한 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는 것.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아기도 나를 이해할 수 있는 때가 오기를, 내가 나의 어머니에게 그렇게 느꼈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