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매일 자란다.

by 송희운


얼마 전 아기의 돌 사진을 촬영하고 왔다. 50일, 100일 이렇게 짧은 주기로 아기의 스튜디오 사진을 찍다가 약 8개월 만에 재방문해서 스튜디오 사진을 찍으려니 기분이 남달랐다. 그전에 스튜디오를 방문했을 때는 작고 힘이 없어서 바둥거리던 아기가 이제는 사람들의 칭찬에 따라 신나게 웃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아기가 정말 참으로 많이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매일 아기를 키울 때는 잘 몰랐는데, 불과 한 달 전쯤 사진만 보더라도 아기가 잠깐 사이에 쑥쑥 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전까지 아기는 그저 내가 돌봐야만 하는 약한 존재로만 인식해왔었는데, 아기가 자라면서 자신의 주장이 생기기 시작하자 이제 아기는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존재가 되기 시작했다. 아기가 아주 어릴 때 배고파하면 밥을 주고, 소변이나 대변을 보면 기저귀를 갈아주고 졸려하면 재워주는 단순한 아기의 루틴에 정말 많은 것들이 추가되었다. 아기의 식사는 분유를 타주는 것에서 삼시세끼 이유식을 해줘야 하는 것으로 복잡해졌고, 졸리면 찡얼거리다가 잠들었던 아기는 이제 자기 싫다고 생떼를 쓰면서 버티다가 지쳐서 잠이 든다. 물론 그전까지 아기가 떼를 쓰면 달래주고 아기가 심심해하면 놀아줘야 한다. 아기가 큰다는 것은 매일매일 아기가 새롭게 변화한다는 것을 의미했지만, 이전 아기의 패턴에 슬슬 익숙해져 있던 나로서는 정말이지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그만큼 내가 누릴 수 있는 나의 시간들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기가 뒤집기 전에는 잠깐이라도 쉴 수 있었던 나의 휴식 시간은 완전히 뒤집어져 아기로부터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이유식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만드는 과정이 단순했지만, 아기가 자라면서 영양소를 맞춰 챙겨줘야 하는 것들이 늘었고 심지어 요즘에는 예전에 잘 먹었던 이유식을 조금씩 가려먹기 시작해 다른 데로 가버리려는 아기를 잡으러 가야만 한다. 특히 내가 밤에 잠을 잘 못 잔 다음날에는 아기를 보는 것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점점 줄어든 나의 개인 시간이 너무나 아까워 밤에 부득부득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다가 잠을 제대로 못 자 그다음 날 아기를 돌보는 게 더 힘들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기도 했다.


물론 아기가 크는 성장과정을 보는 것이 기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기가 조금씩 커가면서 나와 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이 늘어갔다. 그전에는 내가 오로지 아기에게만 주는 일방통행이었다면, 이제는 드디어 아기가 나와 놀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아기를 웃기는 행동을 하면 아기가 나를 보고 방긋방긋 웃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아기와 손을 마주대고 하이파이브를 하는 데 성공하거나 침대에서 아기를 놓고 아기의 뒤를 천천히 쫓아가면 아기가 신이 나서 꺄르륵하고 웃으며 도망가는 순간들은 머릿속에서 절대로 잊을 수 없는 행복한 기억들이다. 특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직접 공을 넣어야지 움직이는 장난감을 아기가 그저 멍 때리면서 보고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내가 하는 행동을 보고서 자기가 스스로 장난감에 공을 넣어 갖고 노는 것을 터득하는 모습이었다. 아기가 내가 한 행동을 이해하고 내 행동을 모방하는 모습을 보면서 드디어 아기와 무언가 상호작용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이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아기가 자고 난 뒤에는 핸드폰 사진첩에서 아기의 폴더를 열어 오늘 찍은 아기의 사진들을 감상하거나 아기가 지금보다 더 어렸던 시절의 사진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흐뭇해하고는 한다. 아기의 성장은 내게 가장 힘들어진 일이면서도 아기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사실 오늘 하루도 아기를 돌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밖에서 그렇게 신나게 놀다 왔는데도 뭐가 불만인지 계속해서 떼를 쓰는 바람에 나도 지쳐버려서 남편에게 K.O를 외치고 말았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아기의 자기주장이 점점 더 강해지고 거기에 내가 조금씩 지쳐가면서 나는 매일 자책하게 된다. '내가 이렇게 아기가 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들어줄 수 없는 사람인데, 나한테 부모가 될 자격이 있는 걸까?' 이전 글에서도 했던 말이지만, 사람은 이다지도 쉽게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아니,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아기가 자라면서 내가 조금씩 쓸 수 있었던 여가 시간들의 영역이 줄어드는 것이 너무나 힘들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힘들어하는 나 자신에 대해 죄책감이 든다. '내가 정말 엄마가 될 자격이 있는 것일까?'라는 죄책감이 다시금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다. 나는 아직 이런 힘듬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뚜렷한 답을 찾지 못했다. 이전에 썼던 글들에서는 어느 정도 내가 답을 찾은 뒤 쓴 글들이었는데,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의 나는 아직 마음과 감정이 정리되지 않은 뒤죽박죽인 채로의 나이다. 다만, 내가 아기를 돌보면서 느꼈던 내 모든 감정들을 부정하지는 않기로 했다. 감정에 대해서는 수용을 하되, 그 감정을 가진 나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말 것. 아기를 예뻐하는 것도 분명 나이고, 아기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도 분명 나이다. 무엇보다도 절대 변하지 않는 사실은 아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자라며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11개월을 향해 가고 있는 지금 아기는 조금만 있으면 서서 걸어 다닐 것 같다. (걸어 다니면 얼마나 더 힘들지 상상하고 싶지는 않지만...) 사실 자연에서 10개월이면 어떤 개체들은 부모로부터 독립해 자립하기도 한다. 혹은 그보다는 시간이 더 걸리지만 어느 정도 자라 있는 상태이기도 한다. 이에 비해 인간은 참으로 느리다. 아기가 나와 이제 막 상호작용을 시작했지만, 아직 아기는 말도 못 하고 제대로 된 의사 판단도 할 수 없는 정말 말 그대로 '아기'이다. 사회가 정한 어른이란 최소한의 나이로 가기 위해서는 약 19년이란 시간이 더 걸린다. 그 시간을 생각하면 참으로 아득하기만 하다. 하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자라나기에 그 긴 시간 동안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제대로 된 한 사람으로 키워내라는 무언의 뜻이 아닐까. 제대로 된 '사람'으로 키워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여전히 무겁지만, 이렇게 생각하니 아기를 키우는 순간들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듯하다.


아기는 매일 자란다.


내가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언제 이만큼 컸지?' 싶을 정도로 쑥쑥 커있다. 오늘 내가 마주했던 아기의 모습은 오늘이 지나가면 다시 보기 어려울 수도 있는, 아기가 다 크고 나면 내가 나중에 그리워할 찰나의 순간들이다. 아기가 다 커서 '아기'라고 부를 수가 없을 때가 되면 아기는 내가 아기와 함께 나눴던 순간들을 거의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의 내가 어머니가 돌봐 주셨던 나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아기가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다. 아기와 보낸 시간들은 아기의 안에서 차곡차곡 쌓여 아기가 제대로 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금 지나고 나면 절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이 순간들을 힘들어하는데만 쓰지 않고 싶다. 아기의 속에서 '우리가 함께 한 시간'으로 자라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