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 선의와 무례 사이

by 송희운


아기가 점점 커가고 데리고 돌아다닐 곳이 많아지면서 이전에는 겪어보지 못했던 일들을 겪게 되었다. 그것은 아기에 대해 타인들이 건네는 말들이었다. 아기에 대해서 이쁘다고 칭찬해주시는 경우들이 주를 이루기는 했는데, 나와 생전 처음 보는 타인들이 나와 아기에 대해 하는 말들 중에 칭찬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겨울이 끝나가고 조금씩 봄이 다가왔을 때, 아기가 춥지 않도록 단단히 입히고 산책을 나간 적이 있었다. 겨울 내내 집에만 있다 보니 아기가 집안에만 있는 것을 갑갑해했을 것 같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내가 집에서만 아기와 놀아주기 어렵기도 했다. 봄에도 코로나가 위협적이었다 보니 아직 어린 아기를 데리고 카페나 식당을 들어가 있기도 애매했고, 그때는 공동육아방의 존재도 몰랐다 보니 내가 아기와 밖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은 산책이 거의 유일했다. 주로 산책하는 코스는 집 근처에 있는 하천이나 시장이었는데, 장소를 불문하고 마주치는 아저씨 혹은 아주머니들이 아기를 데리고 있는 날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아우~~~ 아기 춥겠다~~~~~ 이런 날씨에 왜 데리고 나왔어~~~~" 그럴 때마다 나는 한 마디도 지지 않고 "제 아기니까 제가 알아서 할게요~" 이러고 말하고 사라지는데 아줌마, 아저씨들은 주로 약간 어이없다는 반응을 하셨다. 처음 만난 타인의 입장에서는 그냥 건네는 말이겠지만, 사실 듣고 있는 입장에서는 썩 기분 좋은 말은 아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아기이고, 내가 아기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니까 내가 알아서 어련히 잘 입혔을 텐데 왜 꼭 한 마디씩 거드는 거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오른다. 물론 이들의 말이 단순히 '오지랖'이고, 이것이 다른 이에게 간섭하고 싶어 하는 한국인의 특성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나도 물론 그런 경향이 있으니까) 한 두 사람이 건네는 말이 아니라 여러 명이 나에게 건네는 말들이 쌓일 때는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짜증이 솟구친다. 타인은 나에게 별 의미 없이 던지는 말이겠지만, 타인의 경계를 아무렇지도 넘어버리는 그 태도가 참으로 무례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아기에 대해 들었던 여러 말들 중에 단순히 '오지랖'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말은 얼마 전에 들었던 "아기는 꼬집어서 울려야 한다"는 말이었다. 아기를 데리고 산책하다가 남편과 함께 주스 가게에 들어갔는데, 거기 일하고 계시는 아저씨가 아기를 귀여워하시더니 살짝 만졌다. (사실 물어보지도 않고 만지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그러고 나서 우리가 시킨 주스가 나와 남편이 가지러 갔는데, 아저씨가 갑자기 저렇게 이야기를 한 것이다. '아기를 꼬집어서 울려야 한다니...??? 잘 놀고 있는 아기한테 대체 왜???' 머릿속에서 수만 가지 물음표가 떠올랐는데, 막상 그 순간에 저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당황해서 뇌가 정지해버렸다. 아저씨에게 별말도 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아저씨의 그 말이 계속 생각나 점차 화가 나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다고들 하지만 상식이란 것을 벗어난 사람들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고, 왜 그 순간 아무 말도 못 했을까 하는 후회마저 들었다.


물론 아기를 데리고 나가서 안 좋은 말들만을 들은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기가 이쁘고 귀엽다고 해주시고 그 말을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기쁘고 기분이 좋아진다. 아기에 대해서 들었던 좋은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놀이터에 계신 어떤 할머니가 해주신 덕담이었다. 아기를 데리고 산책하다가 시소를 태워주고 있는데, 옆에 벤치에 앉아계신 할머니께서 아기가 딸인지 아들인지 물어보셨다. 아기가 아들이라고 말씀드리자, 할머니께서 "아들이 엄마 닮았네. 아들은 엄마 닮으면 잘 살고, 딸은 아빠 닮으면 잘 산다."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칭찬은 들어봤지만, 이런 종류의 덕담은 처음 들어본지라 얼떨떨하면서도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의 아기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시는 것도 좋은데, 나중에 먼 미래에도 아기가 잘 살 것이라는 말까지 해주시니 뭉클한 마음마저 들었다. 어떻게 보면 이것도 '오지랖'이겠지만, 이런 선의를 갖고 있는 '오지랖'이라면 아무리 예민한 나라도 정말 감사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때로 아기에 대한 오지랖은 '말'에서만 끝나지 않고 직접 아기를 만지는 것으로까지 확장된다. 아기를 안고 나가다 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아기를 만진다. 발이나 손은 기본이고 어떤 때는 볼까지 만지고 가는 경우들도 있다. 타인이 만지려고 하는 움직임이 보일 때 나는 안된다고 뒤로 물러서서 의사를 표시하기는 하는데, 어떤 때는 진짜 생각지도 못하게 불시에 만지고 지나가서 내가 제대로 대응을 못하는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아기'와 연관된 것은 누구나 관여해도 되는 공공재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임신했을 때 모르는 사람이 내 배를 만지려고 하는 것도 너무 불쾌했는데, 이제는 처음 보는 사람들이 아기가 귀엽다고 내게 물어보지도 않고 아기를 만진다. 어불성설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아기에게도 인격이 있기 때문에 사실 아기에게 만져도 되는지 묻는 게 먼저이겠지만, 아기가 어려서 다른 이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없으므로 아기의 보호자인 나에게 먼저 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아기를 데리고 다니면서 아기를 만져도 되냐고 물어본 적은 정말 손에 꼽았다. 누군가는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지나치게 예민하게 군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내가 이 부분에 대해서 예민하다는 것은 부정할 마음이 없다. 다만 언제 어디에서 코로나에 감염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가득한 세상이고, 더군다나 과거와 다르게 타인과 나에 대한 경계선이 뚜렷해지고 있는 세상에서 처음 보는 타인의 영역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타인에게 그 의사를 물어보는 것은 당연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나에게 예민하다고 말한다면 그 말이 맞기 때문에 나는 예민한 엄마가 될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오지랖'이라는 단어가 좋은 뜻을 가진 단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어떤 순간에는 그 단어 속에 선의가 포함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오지랖이 선의를 넘어선 무례함이 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다른 이들이 나에게 유난 떠는 엄마라고 뭐라고 할지언정, 나는 내 아기를 지키기 위해서는 언제든지 그런 존재가 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