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육퇴(육아 퇴근)'가 아닐까 싶다. 하루의 모든 일과를 마치고 아기가 밤잠에 드는 순간 말할 수 있는 단어 '육퇴'. 하지만 '육퇴'를 한다고 해도 엄마들이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회사였다면 퇴근하고 친구들을 만나러 가거나 쇼핑을 하러 갈 수 있지만, '육퇴'는 그저 집에서만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아니, 육퇴를 한다고 해도 내일 아기를 위한 이유식 혹은 반찬을 만들거나 집안의 밀려있는 살림살이를 해야 하는 경우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아기를 낳고 키우기 시작하는 엄마가 되는 순간, 마음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이런 외침이 들릴 것이다.
넌 자유의 몸이 아냐...
아기를 낳기 전,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했지만 나는 혼자서도 잘 돌아다니는 사람이었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혼자 보러 가기도 했고, 정말 너무 가고 싶은 콘서트였지만 같이 갈 사람이 애매할 때는 혼자 콘서트를 보러 가서 즐기고 오기도 했다. 제주도로 혼자 여행을 떠나 내가 짠 일정을 내 마음대로 바꿔 신나게 돌아다니기도 했다. 심지어 아기를 임신했을 때도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혼자 보러 갔다 오기도 했었다. 하지만 아기를 낳은 순간, 상황은 달라졌다. 아기의 주양육자인 엄마가 된 나는 이제 더 이상 혼자 무엇인가를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혼자라는 단어는 내게 가장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되었다.
아기가 돌에 가까워지기 시작하면서 아침부터 아기가 잠들기 전까지 아기와 밀착되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아졌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기가 울면 아직 제대로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비몽사몽 한 상태로 아침밥을 챙겨주고, 식사 사이에는 간식을 챙겨줘야 한다. 아기에게 밥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아기가 심심하지 않도록 놀아주면서 반응해줘야 하고, 아기를 집에서 혼자 보기 힘들 때는 구에서 운영하는 공동육아방에 데리고 가서 아기와 신나게 놀아주고 바깥에 나갔다 온 뒤에는 아기를 씻기고 옷을 갈아입혀주고 재워줘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이유식이 아닌 유아식을 먹기 시작하는 아기를 위해 밥을 짓고 아기가 먹을 수 있는 반찬을 해줘야 한다. (아기에게 어떤 반찬을 해줘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은 덤이다.) 아기의 엄마인 내가 이 일들을 모두 해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여기에 나는 참으로 감사하게도 부모님께서 가끔 아기를 보러 와 주셔서 잠깐 동안 내가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기기도 한다. 또한 내가 정말 보러 가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남편이 아기를 봐줘서 그 시간 동안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한다. 아기 엄마치고는 나름 여유로워 보이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기를 낳기 전에 누릴 수 있었던 당연한 생활과 순간들이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본다면 누군가를 나를 향해 엄마로서 철이 덜 들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내가 이전의 삶을 그리워하는 것도 어쩌면 이기적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다른 이들보다 내가 가진 감정과 그때의 기분이 중요하고 내가 경험하고 싶은 것들을 직접 겪어보는 것이 중요한 사람이다. 타인보다 나 자신의 삶이 훨씬 중요했던 '나'라는 사람에게 생긴 아기는 내가 살아왔던 모든 방식들을 뒤집어 버렸다. 이제는 내 삶에서 내가 아니라 타인 즉, 아기가 훨씬 더 중요해져야만 하는 것이다.
아기의 등장은 나의 생활방식뿐만 아니라 나의 외적인 모습까지 바꿔버렸다. 예전에는 동네 근처에 나갈 때도 꼭 풀 메이크업을 하고 다니고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하던 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아기를 데리고 외출할 때 집에 있는 가장 편한 티셔츠와 바지를 주워 입고 나선다. 아기가 태어난 뒤 나의 인스타그램에는 쌩얼에 모자를 꾹 눌러쓴 모습들이 가득하다. 외출할 때 또 달라진 것이 있다면 바로 향수이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사주신 향수로부터 시작된 나의 향수 사랑은 밖으로 나갈 때마다 어떤 향수를 골라 뿌릴지 고민하게 만들었는데, 이제 이 향수들은 모두 작은 방 한 구석에 처박혀 버렸다. 아기가 좀 큰 뒤 그나마 화장은 교회를 갈 때 잠깐이라도 하고 지울 수 있지만 향수는 이제 혼자 나갈 때가 아니고서는 손조차 댈 수 없게 되었다.
아기를 키우는 것은 분명 기쁘고 지금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귀한 임무 중 하나이지만, 아기로 인해 이전의 내 삶에서 내가 좋아했던 것들을 더 이상 그만큼 할 수 없다는 것은 솔직히 말해서 약간 아쉬운 일이다. 내 존재가 중요한 내게 있어서 이러한 변화는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만들어왔던 '나'라는 영역이 하나둘씩 떨어져 나가는 느낌을 갖게 만들었다.
결혼 초기 밖으로 나가는 약속이 있으면 그저 남편에게 공유해주면 되었다면 이제는 남편과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야지만 나갈 수 있다. 여유롭고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던 시간에 제약이 생겼고, 다들 편하게 다녀오라고 이야기해주시지만 나를 대신해서 아기를 돌봐주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내가 아기를 두고 나가 집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내가 엄마의 의무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자책감마저 들었다. 집에 돌아오면 아기는 부모님 혹은 남편과 잘 지내고 있었지만, 오늘 하루는 내가 아기를 돌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내 마음속 한구석에 여전히 남아 나도 모르게 나를 괴롭히고는 했었다. 나라는 인간은 나 자신을 위해 쓰는 시간이 너무나도 중요한 사람인데, 이제는 그 시간을 내기 위해서는 타인의 시간을 빌려야만 한다. '엄마'가 되기 전 이 모든 것들을 미리 심사숙고했었다면 아쉽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아직 완벽한 '엄마'가 되지 못했나 하는 자괴감마저 들기도 한다.
이러한 고민과 아쉬움과 자책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난 나를 위한 시간을 완전히 내려놓고 싶지는 않다. 나의 취향, 생활방식 등은 지금까지 살아온 나 자신이자 내 존재의 일부이고, 내가 나 자신으로서 온전히 있을 때 엄마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아기를 키우는 것과 나만의 취향과 행동양식을 가진 ‘나’라는 사람으로서 잘 사는 것 모두 해내고 싶다. 물론 이전의 삶과 같이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엄마로서의 삶과 나 자신의 삶 사이에서 어느 정도 적당한 절충안을 찾으면서 말이다. 엄마로서의 삶을 망각한다면 그것은 나 자신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방종에 불과할 뿐일 것이다.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은 엄마가 너무 이기적으로만 살지 않도록, 엄마이기 이전에 '나'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두 가지 모두 잡는 것이 욕심일지라고 해도 앞으로 살아가면서 내 이름에 걸린 두 삶을 잘 해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