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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희운 Jun 29. 2022

어느 베팅 중독자의 운수 좋은 날

<언컷 젬스> 단평

※ <언컷 젬스>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속에는 다양한 주인공들이 존재한다. 영화가 어떤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느냐에 따라 관객들은 영화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서 영화를 관망하기도 하거나 혹은 주인공에게 빠져들어 영화를 더욱 깊게 몰입하기도 한다. 아담 샌들러 주연의 <언컷 젬스>의 주인공 하워드 래트너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가능하게 한다. 주인공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주인공으로부터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양가감정을 갖게 하는 독특한 인물 하워드 래트너. <언컷 젬스>는 바로 이러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관객들을 영화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영화이다.  


<언컷 젬스>는 계속해서 전화에 시달리는 하워드 래트너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뉴욕에서 보석상을 하고 있지만, 보석과 장물을 계속해서 돌려막기 하느라 빚 독촉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빚을 독촉하기 위해 온 사람들과 물건을 사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있는 상점에서 그는 이전부터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오팔 원석을 받는다. 원석을 받고 신난 하워드는 가게에 와있는 NBA 스타 케빈 가넷에게 자신의 원석을 신나게 자랑하고 오팔로부터 신비한 기운을 느낀 케빈은 자신의 경기에 그 오팔이 꼭 필요하다며 자신에게 오팔을 팔라고 말한다. 경매에 내놓을 계획이었기 때문에 하워드는 그의 제안을 거절하지만, 케빈의 계속되는 설득 끝에 하워드는 케빈의 경기 우승 반지를 담보로 받고 오팔을 빌려준다. 케빈의 반지를 받은 하워드는 자신의 눈앞에 닥친 상황들을 타개하기 위해서 케빈의 반지를 저당 잡혀 돈을 빌리고 그 돈으로 케빈과 그의 팀에 베팅한다. 오팔의 힘 덕분인지 케빈은 경기에서 이기는 데 성공하고 하워드는 그동안 자신에게 쌓여있던 빚을 한 번에 갚을 만한 돈을 벌게 된다. 하지만 약속과 달리 케빈은 오팔을 돌려주지 않고 하워드는 케빈을 만나러 간 곳에서 망신만 당하고 쫓겨난다. 설상가상으로 자신의 돈을 빌리고 갚지 않는데 화가 났던 매형 아르노가 하워드가 걸었던 베팅을 취소하면서 하워드는 다시 빚 독촉에 시달리게 된다. 


<언컷 젬스>의 주인공 하워드는 볼 수록 괴로운 인물이다. 그가 하는 모든 일들은 계속해서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처럼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흘러가는데, 이러한 상황을 만든 것은 모두 그이기 때문이다. 오팔을 케빈에게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신의 뜻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들도 분명 있었지만, 그 상황을 가장 최악으로 만든 것은 모두 하워드의 선택이었다. 오팔 대신 받은 남의 반지로 돈을 빌리고, 그 돈을 빌린 사람에게 갚는 것이 아니라 다시 베팅을 하는 등등등 끊임없이 다른 상황들을 만들어내는 하워드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마치 그 상황에 처해있는 것처럼 가슴 한편을 옥죄이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끊임없이 베팅하는 하워드의 모습을 보면 언뜻 베팅에 중독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는 자신의 인생을 베팅하는데 중독되어 있다. 삶을 살고 있는 많은 이들은 때때로 선택의 기로에 놓이고 자신의 선택이 불러 올 미래를 상상하며 조심스럽게 어떤 한 선택지를 고르지만, 하워드는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에서 얼마나 운이 따를지를 가늠하지 조차 않고 결과가 불확실한 일에 자신의 삶을 모조리 걸어버린다. 이를 보는 관객들은 마치 고층 빌딩 사이에서 외줄 타기를 하는 인물을 보는 것처럼 이 사람이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불안감과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인물로부터 최대한 한 걸음 떨어져서 감정을 동기화시키지 않고 싶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사람이 그래서 어떻게 될까?'라는 궁금증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하워드가 타고 있는 위태로운 줄다리기의 끝이 파멸이 될 것임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지만 그 파멸이 어느 정도일지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이렇게 하워드라는 인물에게 더 동조되게 하는 것은 영화 속에서 사용된 사운드트랙들이다. 대부분 영화 속 음악들이 화면 속 소리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드러나는 것과 달리 <언컷 젬스>에서 사운드트랙은 때때로 화면 속 소리를 넘어서 버린다. 인물들의 감정이 극에 달한 순간 화면을 지배해버리는 음악은 내가 마치 그 상황 속에 처한 것 같은 몰입감을 더해 화면으로부터 눈을 더욱 뗄 수 없게 만든다. 마치 내가 베팅을 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겨우 오팔을 손에 넣었지만 경매에서 자신이 원하던 금액에 팔지도 못하고 바람잡이를 위해 급하게 투입한 장인어른에게 오팔이 낙찰되면서 하워드는 완전히 궁지에 처한다. 장인어른으로부터 겨우 오팔을 받아온 뒤 절망하고 있는 하워드 앞에 케빈이 다시 그 오팔을 사겠다고 찾아와 16만 5천 달러의 현금을 건네고 오팔을 사 간다. 그 돈을 받으면 바로 아르노에게 돈을 주겠다고 한 하워드는 자신의 내연녀 줄리아를 이용해 오팔을 판 현금 모두를 다시 케빈의 경기에 올인한다. 화가 잔뜩 난 아르노와 부하들은 돌아가려다가 하워드로 인해 가게의 안전문과 출입문 사이에 갇혀 버리고 어쩔 수 없이 케빈의 경기를 관람하게 된다. 이번에도 자신의 예측을 모두 적중시킨 하워드는 기뻐하며 갇혀 있던 아르노와 부하들을 풀어주지만, 머리끝까지 화가 난 부하에게 총을 맞아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 


두 시간 동안 영화 속에서 재현된 하워드의 인생은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인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순간에는 좋은 일이 일어났다가도 또 어떤 순간에는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매일매일 상승곡선을 타는 것이 바로 인생인 것이다. 이를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영화 속 '오팔 원석'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에는 세공되면 어머아마한 가치를 지니는 오팔이 포함되어 있지만, 다른 쪽에는 어디에도 아무런 가치가 없는 돌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 <언컷 젬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러한 인생의 원리를 독특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항상 타인에 쫓기며 자신의 인생을 아무 때나 걸어버리는 최악의 인물을 통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지는 인생의 법칙을 가장 극단적이고 불안정한 방식으로 재현한다. 그리고 그 재현의 끝은 자신의 인생을 베팅하는데 중독되었던 인물의 죽음 즉, 패배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승리'라고 우승한 케빈의 인터뷰는 최악의 상황에서 최고의 순간을 맞이했지만, 자신이 딴 어마어마한 돈을 만져보지도 못하고 죽은 하워드의 끝과 대조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멈추지 않고 흔들리는 롤러코스터와도 같은 이 영화는 최악의 주인공으로 인생의 부조리함을 다루는 최고의 방식을 만들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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