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키우면서 비정기적으로 육아 에세이를 쓰기 시작한 지 1년이 넘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아기를 돌보면서 '이 아기가 대체 언제 크지?'라고 생각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아무것도 못하고 가만히 누워 앉아있던 아기는 이제 스스로 혼자 걸을 줄 알고 나를 향해 뛰어오는 조금 더 큰 아기가 되었다. '나처럼 이렇게 이기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이 어떻게 아기를 키울까?' 걱정되는 마음이 많았었는데, 나도 이제는 내 안의 이기성을 조금씩 이타성으로 바꿀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라고는 해도 여전히 나는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래도 아기에게 완벽하게 다 해주는 퍼펙트한 엄마는 아니지만, 이 정도면 충분한 엄마라고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다.
이건 내가 '엄마'가 되어서 바뀐 것일까? 정확하게 말한다면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다. 나보다 훨씬 더 약하고 내가 항상 지켜주고 보호해주어야 하는 존재를 처음 만나서 그런 것인지 나도 어느 정도 강해진 부분은 있는 듯하다. 아기를 키우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제 여자에서 엄마가 된 걸까?' 결혼하기 전에도, 결혼하고 아기를 낳기 전에도 내가 스스로 여자라는 자각은 그다지 하지 않고 살았지만, 아기를 낳은 뒤에 내가 갖게 된 '엄마'라는 정체성은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체감하게 된 것 같다. "엄마라면 이렇게 해야지", "엄마니까 아기에 대해서 더 잘 알아야지" 등등등 같은 말들은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있는 여성이라는 정체성보다 더욱더 나에게 강력하게 다가왔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엄마'라는 정체성을 거부하고 싶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나의 아기를 낳은 엄마라는 것은 절대로 변할 수 없는 사실이자, 진실이기 때문이다. 다만, 예전에는 아주 어릴 때 여자들은 결혼해서 아기를 낳으면 당연히 엄마가 되는 줄로 알았던 시절에는 나라는 존재가 여자에서 엄마로 넘어가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여자로서 살아온 삶이 자연스럽게 엄마의 삶으로 전환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1년 동안 아기를 낳고 아기를 키우고 회사에 복귀해 일을 하면서 한 인간의 삶이 그렇게 단순하게 흘러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여성, 엄마라는 단어들 이전에는 모두 나라는 한 존재가 있었다. 아기를 키우면서 나는 분명 변했지만, 그와 동시에 변하지 않기도 했다. 아기를 키우면서 내가 조금씩 배운 삶의 순간들은 나를 초보 엄마에서 조금은 성장한 엄마로 변하게 했지만, 내가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었던 나의 본질적인 것들을 여전히 내 안에 있다. 몸도 마음도 미성숙한 아기를 사회에서 살아가는 어엿한 한 존재로 키워내는 엄마로서의 삶도, 일을 하면서 나의 커리어를 쌓아가면서 동시에 시간이 허락할 때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도전해보는 여성으로서의 삶도 서로 평행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아기를 키우는 것은 더욱더 순조롭지 않을 것이다. 이제 곧 다가오는 배변 훈련 시작(내가 과연 아기를 훈련시키면서 화를 내지 않을 수 있을까? 에 대한 두려움...) 좀 더 멀리 본다면 내 기억에도 분명 어머니를 힘들게 했던 공포의 사춘기 시기까지. 육아를 지나 양육하는 시기가 되면 나는 더욱 나이를 먹을 것이고 그때 나의 심정은 지금 나의 심정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달라질 것이다. 앞으로 어떤 길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 두렵지만, 그렇기에 삶은 예측할 수 없는 선물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아주 먼 시간처럼 느껴질 아기가 성장하는 과정에서만 맛볼 수 있는 지켜보는 기쁨을 만끽하면서 내가 몇 살까지 언제까지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살면서 내가 이뤄볼 수 있는 커리어들을 쌓아가면서 나라는 존재를 계속해서 만들어나가보고 싶다. 물론 일도 하면서 아기를 키우는 것은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아기가 처음으로 해내는 것들을 내가 제일 처음으로 볼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이 가장 아쉽지만, 그래도 집으로 돌아와서 아기와 함께 하는 순간들은 여전히 나의 큰 기쁨일 것이다.
아기를 키우는 것으로 시작되었던 이야기가 마지막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더욱 돌아보게 되는 이야기가 되었다. 하지만, 나의 배로부터 태어난 생명, 아기를 키운다는 것은 결국 내가 어떤 또 다른 면을 갖고 있는 인간인지 내 존재를 보다 깊이 알아가는 시간들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내가 아기를 기르는 이야기는 언젠가 아기가 자신의 아기를 갖게 된다면 나의 이야기에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혹은 나의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나의 이야기는 내가 키운 아기 안에서 잘 살아 숨 쉬고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