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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희운 Dec 12. 2022

처음 만나는 너의 '처음'

을 한지 벌써 두 달이 넘어가는 지금, 벌써 15개월이 넘은 아기는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커간다. 친구가 바로 얼마 전에 올렸던 아기의 얼굴과 최근에 올린 아기의 얼굴이 벌써 달라져 있다며 엄청나게 신기해할 정도이다. 일을 다니고 있는 나도 가끔은 출근했다가 집에 돌아가면 아기의 얼굴이 조금은 커져 있는 느낌마저 들 때가 있다. 아기가 커가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자 그만큼 떼가 엄청나게 늘었는데, 그와 동시에 아기가 할 줄 아는 행동들도 늘었다. 자기를 부를 때 가끔씩 내키면 "응!"이라고 대답했었는데, 듣덛 안 듣던 꾸준히 "네"라고 대답해야 한다고 가르치니까 이제는 이름을 부르면 "녜!"라고 대답한다.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각각 다른 행동들을 알려주면서 해보라고 하니 그 행동들을 다 따라 하면서 본의 아니게 엄청난 애교를 부리기도 한다.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있기만 하던 아기가 나 혹은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따라 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언제 이렇게 컸지?' 하는 놀라우면서도 아쉬운 마음마저 든다. 


그저 집에만 있던 육아를 벗어나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나'라는 개인에게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좋은 시간임에는 분명했지만,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기를 둔 엄마 입장에서 마냥 좋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게 있어서 가장 아쉬운 점은 업무 시간 동안 아기의 모습을 못 보는 것이 아니라, 아기가 처음 보여주는 모습들을 내가 제일 처음 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이전에 육아 휴직을 하고 아기를 키울 때는 내가 제일 먼저 남편과 부모님에게 아기가 나에게 처음 보여준 행동들을 공유하고는 했었다. 아기가 조금씩 목을 가누기 시작한다던지, 나와 조금씩 눈을 마주치고 웃기 시작한다던지, 아기가 조금씩 기기 시작한다던지 등등 내가 가장 먼저 처음으로 본 아기의 새로운 모습들을 남편에게 공유하거나 부모님에게 사진을 찍어서 보여드리고는 했었다. 아기와 나, 오롯이 둘만 있었던 시간은 아기를 전적으로 내가 돌봐야 한다는 부담감은 존재했지만, 아기가 태어나서 세상에 처음 보여주는 것들을 내가 제일 처음으로 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기쁨도 분명히 존재했다. 


하지만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모든 것이 달라져 버렸다. 아기의 첫 순간들을 보는 것은 이제 내 몫이 아니라 가장 많은 시간 동안 아기를 봐주시는 부모님의 몫이 되었다. 부모님이 아기의 첫 모습들을 보고 이야기를 해주시거나 사진을 찍어서 공유를 해주시고는 하는데, 이를 회사에서 보는 것도 물론 기쁘고 즐겁고 흐뭇한 일이지만 아기의 '처음'이 내가 되기 힘들어졌다는 사실은 엄마의 입장으로서는 한없이 아쉬운 부분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피곤해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반차를 쓰고 집으로 돌아와 아기와 함께 육아방을 간 적이 있었다. 남편이 아기와 간 육아방에는 2층에 그물 모양으로 통로를 만들어서 아이들이 지나다니면서 놀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아기가 아직 걷지도 못했던 시절, 그 육아방에 가서 아기와 함께 자주 놀았었다. 아직 걷지도 못하고 세상에 두려운 것이 많았던 아기는 그 통로 입구에서 몇 번 왔다 갔다 하기는 했지만, 그 통로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남편과 아기가 같이 갔을 때 아기는 그 통로를 걸어 다니고 있었다. 남편이 보내준 영상 속에서 아기는 능숙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천천히 한 걸음씩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 아기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뭉클해졌다. 정말 별것 아닌 영상일 수도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겁에 질려있던 아기가 못하던 것을 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감동받았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내가 살면서 아기의 처음을 보는 것은 줄어들 수밖에 없겠지만, 내가 못 보는 순간에도 아기는 자신이 자라는 만큼 더 넓은 세상을 마주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해볼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었다. 아기의 '처음'은 그저 아기가 세상을 마주하는 첫 순간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기가 자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감에 따라 자신이 세상에서 못해봤던 것들을 향해 조금씩 나아갈 수 있게 만드는 '도전'이었다. 


내가 앞으로 아기의 '처음'을 볼 수 있는 순간들을 얼마나 될까. 그 순간들이 점점 줄어들고 쉽게 볼 수 없어지겠지만, 그래도 앞으로 내 아기가 세상을 향해 시도하는 '처음'들은 무수히 존재할 것이고 그것을 통해 아기가 더욱 자라날 것이라는 사실은 엄마로서 기쁜 일이다. 그 도전들이 실패하고 때로는 좌절되는 순간들이 올 때도 있겠지만, 내가 엄마로서 그 옆을 지켜주고 잘 다독여준다면 아기는 그것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배우고 경험하며 더욱 성장해 나갈 것이다. 또 나와 함께 있을 때 우연과도 같이 그 처음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면, 마치 선물 받는 것처럼 기쁜 마음으로 그 처음을 충분히 누릴 것이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만나는 '처음'만큼 기쁜 것도 없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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